대학일반부 대상 - 정낙민
아버지, 막내예요.
봄비가 내리고 있어요.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에 잠깐 짬을 내어 밖으로 나와봅니다. 식당 옆쪽에 있는 작은 화단에 서 있는 나무들도 비에 젖어 몸을 부풀리고 있어요. 그 옆으로 걸려 있는 간판으로 눈길을 줍니다.
'함흥식당' 이름부터 고리타분하고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한 간판이지만 저에게는 가장 소중하답니다. 아버지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래서 아침에 식당 문을 열 때도, 밤에 식당 문을 닫을 때도 한 번씩 올려다보곤 한답니다.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는 것처럼...
아버지, 아버지에게서는 늘 비릿한 냄새가 났어요. 저는 그 냄새가 역겨워 곱창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아버지 곁에도 잘 가지 않았어요. 매일 새벽, 식당 한쪽에 백열전구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곱창을 손질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마치 웅크린 짐승 같았어요. 고무장갑을 끼면 담담하다며 추운 겨울에도 맨손으로 곱창을 손질하느라 아버지의 두 손은 빨갛게 불어 있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아버지가 마치 저와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무심하게 지냈어요. 대신 두 살 터울인 낙훈이가 제 몫을 대신했죠. 툭하면 식당에 나와 잔심부름을 하고,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씩 살살거려 용돈을 받으면 저에게 주기도 하고, 아니 다른 무엇보다 곱창을 잘 먹었어요. 아버지가 만든 곱창이 제일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형을 보며 아버지는 만족한 웃음을 짓고.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틀림없이 형은 꿈이고 뭐고 필요 없이 아버지의 식당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대신 저는 제 뜻을 이루어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식당에서 벗어나, 아니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근사하게 살 것이라는 치기 어린 결심을 하곤 했었답니다.
언제나 후줄근한 옷차림에 앞치마를 두르고 곱창을 주무르는 손님들에게 비굴한 웃음을 보이는 아버지와 달리 저는 말끔한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열정적으로 살 것이라는, 백열전구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곱창을 손질하는 아버지와 달리 환한 형광등 불빛 아래 펜으로 일을 하는. 하지만 세상은, 만만치 않은 세상은 저에게 그런 삶을 허락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형은 기술이 있어 식당과는 무관한 생활로 자리 잡고 살아가는데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어 꾸려가는 생활도 쉽지 않았어요. 다른 무엇보다 전문적인 배움이 없었던 터라 회사에 들어가서도 몇 년을 버티지 못했어요. 설사 버티면 회사가 부도를 맞고, 그렇게 여러 회사를 전전하면서 저는 제 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고, 급기야 두 손을 놓게 되었어요. 결국에는 직접 회사를 차려 사장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뿐,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았죠.
"워저겄냐. 자리 잡을 때까지 내 일 좀 도와라. 나도 이제는 일이 힘에 부쳐서 힘들었는데. 잘 되어 써야. 낼부터는 곱창 손질은 니가 혀라."
그날부터 저는 아버지 식당에서 아버지가 손질하던 곱창을, 아버지처럼 백열전구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손질해야 했어요. 그리고 어거지로 곱창도 먹게 되었고 손님을 상대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어요. 예전에는 죽기보다 싫었던 이 모든 일들이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그래, 민아 잘했다. 아버지 잘 모셔라. 네 아버지가 이 동네는 원조 아니냐. 아버지가 하던 일을 대를 물려하는 것도 좋아. 네 아버지는 자식들한테는 식당일 하지 않게 한다고 했지만 말이다. 식당일이라는 게 워낙 힘들어야지. 그래도 네 아버지는 좋은 일 많이 하고 있어. 저 윗동네에 있는 양로원에도 다달이 돈을 대주고 있잖냐."
김 씨 아저씨 말씀 들으며 저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배운 것이 없어서, 가진 것도 없어서, 당장 먹고살기 위해 식당을 시작했다던 아버지. 우리들에게는 식당일 하지 않게 하려고 공부에 관한 한 무엇이든 해주면서도 정작 아버지는 그 흔한 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한 채 평생을 곱창 주무르는 일을 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사셨던 거예요.
이제 그 모든 것을 제가 대신하고 있어요. 비록 지금 아버지는 식당일을 하지 못하시지만 저는 아버지가 이 식당에서 누렸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윗동네에 있던 양로원이 이사를 가는 바람에 자주 들르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은 꼭 들러 아버지의 손길을 대신하고 있어요.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제가 대신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기쁨이, 슬픔이, 즐거움이, 힘겨움이 다른 누가 아닌 저의 몫이라는 것을 그래서 아버지의 삶이 바로 제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삶은 누구의 삶보다 훌륭하다는 것도.
아버지,
오늘 저녁에는 일찍 식당 문을 닫고 아버지와 함께 오랜만에 술 한 잔 하고 싶어요. 제가 만든 맛있는 곱창을 안주로 아버지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대학일반부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