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동상 - 이승준
할머니! 잘 지내시는지요?
생각보다 고3이라는 바쁜 일상 속에서 전화 한 번 드리기조차 어렵네요. 일 년에 한 번씩 찾아뵙겐 하지만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8년. 마지막으로 찾아뵙고 떠나올 때 홀로 계신 할머니 댁의 덩그런 신발 한 짝이 기억납니다. 제게는 하염없이 슬픈 추억이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평생토록 할머니는 김정숙 이름 석 자를 잃어버리시고 살아오셨습니다. 아무개의 딸, 아무개의 아내, 아무개의 엄마, 그리고 이승준의 할머님으로 평생 살아오셨습니다. 그 세월 동안 언제 한 번, 김정숙 당신의 함자를 가지고 살아오셨던 적이 있었는지요? 얼마 전 고모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을 그만두시며 쉬신 다는 말씀을 듣고, 이제야 할머니 자신을 위해 살아가시게 된 것이 이 손자는 정말 기뻤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벌써 저희 가족이 베트남으로 이주한 지가 10여 년이 지났네요. 시간은 지나도 어쩜 고국을 향한 그리움은 커져만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베트남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지만 함양 뱀사골 계곡에서 할아버지, 할머님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등 양가가 다 모여 어우러지며 놀았던 그 기억, 코끼리 보고 싶다고 찡찡거리던 저의 손을 잡고 제가 좋아하는 동물원에 갔던 기억, 손자가 놀러 왔다며 제가 원하던 로봇 장난감을 사주셨던 기억 모두 시간은 지났지만 메밀꽃의 향기처럼 항상 뇌리에 아련합니다. 항상 손자가 한국에 들어간다고 하면 재국을 저한테 먹이려고 며칠 전부터 열 정거장 멀리 있는 자갈치 시장에 가셔서 재첩국뿐더러 베트남에 없는 전복 등의 해산물을 사놓으시며 한입이라도 저에게 더 먹이려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의 사랑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만약 할머니가 한국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제 기억 속의 고국이 지금만큼 아름답고 그리웠을까요? 할머니야말로 제가 고국을 그리워하는 이유, 안식처이자 제 마음속의 '고국'이었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할머니에 대한 저의 사랑과 존경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에 적절한 어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할머니에 대한 그 지고지순한 사랑을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랑이란 단어로 표현하겠습니까? 저에게 생명을 주시고, 저의 어린 시절 추억의 전부였던 할머니는 그냥 할머니가 아니었답니다.
할머님! 아시는지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할머니에 대한 존경이 깊어지고 있답니다. 끔찍했던 6.25 전쟁, 헐벗고 굶주렸던 한국의 산업화 초기, IMF 등 우리나라의 힘든 시기를 당당하게 이겨 내신 할머니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좌절하지 않으시고, 유난히 손이 많이 가고 힘든 닭갈비집을 평생 운영하셨습니다. 그 모습에서 저는 지난 한국 경제 성장의 주인공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할머니라 생각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손주들에게 인내와 끈기, 그리고 고난을 극복하는 도전 정신을 할머니의 삶을 통하여 가르쳐 주셨습니다. 할머니께 제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부인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여 할머니가 자랑스러워할 손자가 될 것입니다. 할머니께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저희 후손들이 지금같이 편히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주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보답하고자 꼭 사려 깊은 사회복지사가 되겠습니다.
그리운 할머니!
그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해 오신 나날을 잊을 수 있고 그동안의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으십시오. 이 손자가 이제 저희 가족은 물론 할머니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돌보는 훌륭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발 이제는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할머니가 아닌 '김정숙'으로 편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효도할 수 있게끔 기회를 주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김정숙 여사님! 고맙습니다.
2016년 5월 15일
할머니의 손자 이승준 올림
2016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 수상작
중고등부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