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전날 술잔을 든다]
마라토너로서 자격 미달이다. 전날 술을 과하게 마신 탓이라 발걸음이 무겁다. 특별히 술을 마셔야 할 이유도 없었는데, 대책 없이 술 냄새 풀풀 풍기며 대회 참가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최근 들어 젊은 청년들이 대거 마라톤 대회에 유입되면서 마라톤 대회 참가하기가 아이돌 공연 티켓 예매만큼이나 힘들다. 작년부터 메이저 대회는 참가하지 못했다. 올해 개최되는 대회에도 모두 탈락했다. 하는 수 없이 소규모 대회나 지방대회를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풀코스 달릴 기회가 귀하다 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가끔 참여하는 대회가 낯설고 겁난다.
숙취를 다 걷어내지 못하고 일 년 만에, 풀코스 출발선에 섰다. 적잖이 두렵기도 하지만, 설렘도 있다. 문제는 올겨울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려 연습을 게을리했다. 마라톤 기록은 연습량에 비례하고 고통은 연습량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쉽지 않겠다는 생각에 허벅지가 먼저 긴장한다.
오랜만에 참가하는 대회를 앞두고 술을 과하게 마신 일이 후회된다.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지 7년 정도 되었다. 그전에는 소주 두 세잔이면 얼굴이 빨개지고 졸음이 쏟아져 더 마실 수가 없었다. 신혼 초 냉장고에 맥주병 넣어 두면, 병뚜껑이 빨갛게 녹슬 때까지 꺼내지 않아 유효기간을 염려할 만큼 눈에 거슬렸다.
그런 내가 술을 달고 살아가는 습관을 만들었다. 아마 사업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스트레스가 과했던 탓도 단단히 한몫했다. 나이 들면서 아버지 닮아가는 점에 대해서는 적잖이 걱정이다. 아버지는 들고는 못가도 마시고는 간다는 신조로 술을 과하게 드셨다. 누룩과 고두밥을 버무려 동동주 담그면 술이 익기까지는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 삼일 정도 지나면 술독에서 보글보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터지고 술 냄새가 솔솔 풍기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아직 설익은 술을 국자로 퍼서 마시고 술찌끼는 씹어서 드셨다. 넘기지 못하는 찌끼는 뱉어내곤 했다. 그렇게 일주일 지나 술이 다 익을 때쯤 술 항아리 바닥을 긁었다. 결국, 제대로 된 술맛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어머니는 재미없어서 술 못 담겠다고 핀잔이 늘어났다.
아버지는 술병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다. 사십 대 후반에 간 경화 진단을 받았다. 심할 때는 술을 잠시 끊고 조금 나으면 다시 마시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간 경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67살에 돌아가셨다. 그런 내가 아버지의 술 습관을 닮아 적잖이 걱정이다. 어떻게든 개선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바람이 많아 마라톤 하기에는 악조건이다. 뚝섬에서 출발하여 중랑천을 왕복하는 코스여서 강바람을 피할 수 없다. 손발이 시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발에 핫팩을 붙이고 장갑을 두 켤레나 끼고 부산을 떨었다. 맞바람을 안고 뛸 때는 볼때기가 아리다. 달릴 때마다 달리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매번 좌절하면서도 매번 다시 출발선에 서는 까닭은 숙명일까.
음주로 인한 근육 피로감에 회복이 더디니까 달릴수록 힘들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을 때도 5km 정도 달리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는데, 숙취로 인한 피로는 쉬 회복되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다. 솔직히 속도를 내고 싶어도 속도를 낼 수가 없다. 빨리 달릴 수 없었던 덕분에 고통은 덜했다. 마지막까지 큰 고통 없이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다.
주변에서 몸 상하니까 마라톤 그만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힘들 때는 그만둘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그만둘 생각이 없다. 기록에 욕심 버리고 무리 가지 않도록 천천히 달리면 얼마든지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모은다. 선배 마라토너들의 투지와 열정도 좋지만, 천천히 끝까지 달리는 끈기를 배워야겠다. 그보다는 먼저 달리기 전에는, 음주하는 습관을 버려야겠다. 달리고 나서 피로도 풀 겸 막걸리 한 잔 가볍게 하는 것은, 보약보다 값지겠지만 달리기 전에 술 마시는 버릇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변화가 필요하다.
[일시] 2025년 2월 23일
[대회] 고구려마라톤(한강, 중랑천 일원)
[기록] 4시간 22분 33초(Fu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