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담금질하는 마라톤

by 현도현

[영혼을 담금질하는 마라톤]


40대 후반에 얼떨결에 마라톤에 입문했던지라 객기에 몇 번 참가하고 말겠거니 생각했는데, 어느덧 60대 중반에 들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쇨 때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매번 달릴 때마다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반문하지만, 그때마다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하고 막연히 다짐하곤 한다. ‘길에서 쓰러질 때까지 달리자.’


국제평화마라톤대회는 강남구와 미 8군이 협력해서 주관하는 대회다. 대회 운영 취지는 참가비 전액을 불우이웃과 자선단체에 기부한다. 올해는 8,500명이 넘는 마라토너가 참가했으니 기부금도 두둑해져서 달리는 사람으로서 간접 기부한 느낌이 들어 괜스레 기분이 으쓱해진다.


가을빛이 따사롭다. 양재천을 달리는 걸음이 유난히 가볍다. 수없이 연습하고 달렸던 길이라 조금은 익숙한 느낌이 심리를 편안하게 한다. 산책 나온 주민들의 응원에 은근히 힘이 난다. 그들 중에는 환한 미소로 목소리를 돋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경하는 시선을 담아 사진을 찍으며 속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가 되었건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에너지다.


10km 지점 조금 지나서 앞에서 달리던 사람이 쓰러졌다. 서너 사람이 응급조치를 위해 둘러서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얼핏 보기에 마비 증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들이 조치하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쳤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 수습되어야 할 텐데 생각하며 양재천과 탄천 갈림길인 12km 지점에 다다르니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고가 났는데 가까이 있는 구급차가 무대응으로 있어서 다가갔다. “1km 후방쯤에 사람이 쓰러졌는데 연락 없었어요?” 물었더니 연락이 없었다며 알아보겠다고 한다.


다시 주로(走路)에 들어서서 달리며 번개같이 스치는 생각. 구급팀에 연락할 전화기가 없어 우왕좌왕했던 게 아닐까. 러너들이 대회에 참가할 때 대부분 전화기를 지참하지 않아 안타까운 시간이 지나가는 듯했다. 그때 마침 핸드폰을 들고 있었던 내가 응급조치에 나서지 못했음이 영 찜찜했다. 왜 나는 그 순간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 했을까.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잠시 후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 안도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겁다.


등산과 마라톤 등 야외 활동이 많은 나는 종종 사람들이 쓰러지는 사고를 경험했다. 30대 후반 가을에 설악산 대청봉 처녀 산행 때였다. 가파른 오색약수터 돌계단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좀 쉬어가고 싶어도 뒤에서 올라오는 사람들한테 떠밀려 올라가는 형국이라 숨 돌릴 틈도 여의치 않았다. 가파른 계단 끝날 때쯤, 사람들 대여섯 웅성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 사람이 쓰러져 한기에 식어가고 있다. 동행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밝아올 때 헬기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하산길에 양폭대피소에서 들려준 소식은 사망이었다.


50대 초반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할 때, 3월 초였지만 쌀쌀한 날씨에 비까지 흩뿌렸다.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초반 5km 지점에서 앞서가던 주자가 쓰러져 있다. 서너 사람 응급조치하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 쉬 회복될 것 같지 않다. 5km면 아직 몸도 덜 풀렸을 시점인데, 왜 쓰러졌을까. 고르지 못한 날씨에 자신의 연습량만 믿고 욕심이 과해 무리하게 달렸던 게 아닐까. 결승점을 지나 들려온 소식은 사망.


50대 초반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에 눈 산행으로 명성이 자자한 남덕유산에 올랐다. 들머리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능선에 올랐을 때, 50대로 보이는 산객이 쓰러져 있다. 일행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보온에 신경 쓰며 응급조치하고 있었다. 당황한 그들의 얼굴빛에서 사태가 만만찮음을 직감했다. 하산길 삿갓재 대피소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외에도 자잘한 사고가 몇 더 있었다. 건강을 위해 산과 들로 나왔다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사고를 당해 운명을 바꾼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사고에 대해 미리 예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간과하기 쉽다. 나 역시 가끔 헛발 디뎌 넘어져 아찔했던 경험이 있다. 바깥 활동이 많은 사람은 자나 깨나, 사고조심이다.


흔히 마라톤을 육체적 한계를 넘는 운동이라 한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육체의 한계를 넘나들며 버텨내는 일은 결국, 영혼을 담금질하는 행위이다. 영혼과 육체의 교감을 위해 과도한 운동이나 과한 욕심은 삼가야 한다. 길에서 쓰러질 때까지 달릴 게 아니라, 쓰러지지 않을 만큼 달려야 한다. 영혼과 육체의 교감도 좋지만, 목숨을 걸고 할 만큼 소중한 가치는 아니다.


주로에서 쓰러진 마라토너가 거뜬히 잘 회복하기를 바란다. 안전하게 회복하여 다시 마라톤을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영혼을 견고하게 담금질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부디 욕심을 거두시고 자신을 잘 관찰, 관리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나 자신도 응급한 사고가 생겼을 때, 당황하지 말고 잘 대처하기를 다짐한다. 아울러 행복한 마라토너가 되기 위하여 발걸음이 멈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리하지 말자.


[일시] 2024년 10월 3일

[대회] 2024년 국제평화마라톤대회(코엑스, 탄천, 양재천 일대)

[기록] 1시간 55분 7초(H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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