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할 수 없는 인생, 연습이 필요한 마라톤

by 현도현

[연습할 수 없는 인생, 연습이 필요한 마라톤]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은 연습할 수 없을뿐더러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 마라톤은 연습하지 않고는 그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분명한 건 삶이든 마라톤이든 쉽지 않다.


며칠간 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다소 느긋해진 틈을 골라 양재천을 달린다. 남부 적십자혈액원을 출발해 한남대교를 돌아오는 코스다. 나이를 쌓아 갈수록 걸음이 무뎌진다. 힘든 달리기가 부담은 되지만 아직 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탄천에 무리를 이루고 있던 물닭들이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먹이가 없어 자리를 뜬 것인지. 아니면 추위를 피해 잠시 숨었을까. 힘들게 달릴 때마다 잠깐의 위로가 되었던 까만 물닭들이 보이지 않으니 풍경의 균형이 어딘가 허전하다. 청담대교 교각 밑에는 가마우지 떼들이 옹기종기 나란히 앉아 있다. 이놈들은 겨울만 되면 여기서 월동하는가 보다. 인간과 새들이 같은 공간에서 공존한다는 것은,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최근에 가마우지 개체가 너무 늘어나 물고기를 마구잡이로 사냥해서 생태계가 교란된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공존’이란 말도, 그저 좋은 의미로만 해석될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한강에 얇게 살얼음이 잡혀있다. 겨울이 되어도 한강에 얼음이 얼지 않으면 괜스레 불안하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나 싶기도 하고, 한강 물이 오염되어서 빙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일까. 살얼음이라도 잡히면 아직은 괜찮다 싶어 안도감이 생긴다. 이왕 얼 거면 꽁꽁 얼었으면 좋겠다. 얼음이 있어서 먹이활동이 불편한 탓일까.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한강을 자유롭게 날던 하얀 갈매기가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구 곳곳에 전에 없던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생태계가 뒤흔들리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지구 온난화 현상의 주범이 인간이라고 규정하고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캠페인만 반복하는 데 있다. 과연 인간이 지구를 데울 수 있는 강력한 존재일까. 그렇다면 지구를 냉각시킬 수 있는 능력도 있지 않을까?


2만 년 전 빙하기 때, 인간은 어떻게 지구를 냉각시켰을까. 그리고 지금은 화석연료를 마구 사용한 결과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인간이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한 것은, 수억 년의 지구 역사에서 고작 100년 정도다. 우주의 궤도에 엮여있는 지구가 100년 정도의 시간에 인간이 데우면 데워질 정도의 나약한 존재일까.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변화가 인간 때문이라는 단선적 결론보다는 우주의 섭리 속에서 더워지기도 하고 빙하기가 오기도 하는 거대한 주기적 흐름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대응 방식도 조금 달라져야 한다. 화석연료 감축만으로는 우주의 자연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 더워지는 지구에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남을지를 연구하고 준비해야 한다. 아직은 살얼음이지만, 한강에 얼음이 어는 것만으로도 묘한 위로가 된다.


영동대교 지나면서부터 허벅지 근육에 경련이 온다.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멈출까 말까 깊어지는 고민을 가볍게 안고 속도를 늦춰보니 경련이 다소 누그러진다. 마라톤 시작하고부터 아직 중도에 포기해 본 적은 없다. 경련이 생길 때마다 걸으면서 고통을 달래서라도 끝까지 달렸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주로에서 주저앉을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오면 세상 다 포기해 버리고 싶은 심정으로 땅바닥에 엎드려 펑펑 울어버릴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엮다 보니 어느새 한남대교 반환점이다. 경련이 있기는 해도 견딜만하다. 연습이 부족했던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이만큼 달릴 수 있음은 행복이다. 조금 더 편안한 마라톤 인생을 위하여 연습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인생도 연습이 있으면 좋겠다. 부족하면 연습으로 채우고, 넘치면 덜어내면서 가볍게 살아갈 수 있으니 효율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인생에 연습이 없다는 게 한편으로는 다행인지 모른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한 조건에서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일시] 2024년 1월 28일

[대회] 연습(양재천, 한강 일원)

[기록] 1시간 58분(20.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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