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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사수

by 또랑쎄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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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회사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해당 업무를 인수인계해주는 분이 최근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 “너는 내 부사수냐? (내가 네 사수냐?)” 오랫동안 딱히 정식 사수가 없었고, 최근 몇 년 간 계속 후배들을 받으며 사수로서의 역할만 해왔던 나는 이 질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수라는 것은 뭘까. 누군가는 딱 해당 업무를 인수인계하고 가르쳐 주는 역할만을 말하고, 누구는 전반적으로 회사에서의 업무 스타일, 태도, 맡은 업무 외 모든 일 등을 이끌어주는 선배 포지션에서의 의미로 말을 한다. 내가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은 후자이긴 했으나, 나에게 질문을 던진 선배 개발자는 전자의 사수, 부사수 개념으로 물어본 것이긴 했다. 나는 이미 이 회사에서의 경력이 꽤 있기 때문에 후자의 의미로 물어보는 것도 이상해 보이긴 했다. 일단 그렇게 질문을 했더라도 곧 내가 아는 그 사수, 부사수와 일맥상통으로 이어지는 의미로 던진 농담 반 진담 반의 질문인 듯했다.


내가 부사수이냐 아니냐가 이 둘 사이에 중요할까. 먼저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이 개념에 대한 통일이 필요해 보였다. 업무만을 전달해 주고 그걸 유지 보수하는 선에서만 도움을 주는 역할의 사수라면 나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 느릴 수 있을지 언정, 어찌 됐던 일을 하는데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사람이 있고 없고가 크게 중요한 사람 치곤 일을 주도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보진 못 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 전반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사수가 필요하냐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지금 나의 부사수가 떠올랐다. 1년 전과 비교해 보면 이젠 말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행동과 말을 골라 하고 있는 고마운 부사수의 모습.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혼을 내고 애를 잡았나 싶기도 한 이 모습을 보면서 내가 과연 잘해온 것이 맞는지 마음 한편이 항상 무겁다. 요즘 들어 서로 말장난도 하고 스스럼없이 일상 얘기도 나누는 것을 보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거 또한 나의 착각인 것인지 괜스레 내가 먼저 눈치가 드는 순간도 많다. 여전히 얘한테 나는 그저 까다로운 직장 상사인 것은 아닌지. 어찌 되었건 어떤 업무를 시키던 그저 열심히 하려는 모습과 열정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복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과연 1년 후에 나는 상대가 원하는 부사수의 모습을 갖추고 있을 수 있을까.


내가 사수로서 지금까지 잘 해왔는지, 자격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종종 뿌듯함을 느낄 때는 내 부사수가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한 행동이던, 본인이 진심으로 원해서 한 행동이던 내 윗사람들도 점점 얘를 칭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면 그저 업무적인 것뿐만 아니라 행동과 태도적인 것들을 바로잡아주고 어려워하는 것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것 같다. 이는 회사에서뿐 아니라 다른 공간, 환경에서도 모두 적용된다.


처음 질문에 대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대답은 했었다. “부사수 시켜 주시는 건가요? 시켜주시면 열심히 해보죠.” 하지만 나와 내 부사수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알 것 같다. 저 질문의 요지는 단지 나의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를 끌고 갈 고생길에 접어들 각오를 하는 고마운 선배의 질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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