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후 이른 봄 우연히 아일랜드 가수이자 배우이며 예술가인 '뷔요크(Björk) 회고전'을 MOMA에서 보게 되었다. 뉴욕의 아트씬에서 일하는 선생님과 함께 전시를 관람했는데 MOMA가 현재 활동하는 가수인 뷔요크의 회고전을 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했다. MOMA의 예술에 대한 확장성을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뷔요크가 유니크한 예술가임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그런 뷔요크를 만나는 전시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유독 이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답다는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호홋! 드디어 뉴욕에서 맥퀸을 만난 것이다.
맥퀸의 예술적 세계는 패션을 넘어서 예술, 역사, 자연, 인간의 감정을 깊이 탐구하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그의 디자인은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개념을 넘어서, 패션을 통해 강렬한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한다.
피어싱 웨딩드레스
너무나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옷이 오르골과 함께 조명을 받으며 턴테이블 위에서 황홀하게 돌고 있었다.
이 작품은 맥퀸이 뷔요크의 Vespertine (2001) 앨범 중 "Pagan Poetry(이교도의 시)"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제작한 피어싱 웨딩드레스라고 한다. 상반신은 거의 노출되며 진주로 구성되어 있다.
생각해 보니 맥퀸의 옷은 말 그대로 드레스의 일부를 몸에 피어싱 해야 완성되는, 옷과 몸이 물리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 옷으로 결국은 흰색의 웨딩드레스가 핏빛으로 변화될 수밖에 없는 옷이었다.
이런 미친 사랑이라니...
결혼식을 준비하는 서양의 이교도 여성이 영원한 사랑으로 합일되는 의식을 위한 희생제를 치르는 듯한, 맹약의 피를 흘리는 피어싱 과정이 상상되었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원초적이고 잔혹한.
"Pagan Poetry" 드레스, 알렉산더 맥퀸 (2001) & "Vespertine" 뮤직 박스, 매튜 바니 (2001)
역시나, 뮤직비디오는 비요크가 자신을 꿰매는 듯한 장면, 피어싱하는 장면 등과 뷔요크의 사적인 영상이 포함되어 호불호가 갈리는 강렬한 작품으로 세간에 회자됐다고 한다. 기사를 더 찾아보니 피어싱에 매료된 다섯 명의 젊은 여성들이 자원하여 실제로 피어싱을 했다고.
스토리텔러인 맥퀸의 유일무이한 쇼들은 그의 독특한 예술감각과 혁신적 접근방식의 결과물로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알렉산더 맥퀸의 쇼를 직접 본 적이 없는 나는 케이트 모스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홀로그램 영상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개발하던 공연작품의 환생 씬의 연출로 참고하면좋겠다고 생각한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 영상은 맥퀸의 런웨이 쇼 "The Widows of Culloden (컬로든의 미망인들)" 의 피나레 장면에 연출되었던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컬로든의 미망인들
작품에 대해 살펴보면, F/W 2006 컬렉션 "The Widows of Culloden(컬로든의 미망인들)"은 패션 역사에서 매우 상징적인 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 컬렉션은 1746년 스코틀랜드의 컬로든 전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고 맥퀸의 창의성과 예술 비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으로 언급된다.
그리고 맥퀸의 런웨이 12번째 쇼로서 스코틀랜드의 비극적 역사인 '컬로든 전투'를 주제로 한 첫번째 컬렉션이었던 "Highland Rape " (1995) 쇼와 연결 선상에 있다.
컬로든 전투는 1746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정부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자코바이트 반란의 종지부를 찍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자코바이트 반란(Jacobite Rebellions)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난 일련의 반란들로, 14세기 후반 브리튼섬의 고지대 지역을 다스리던 작은 귀족 가문의 로버트 2세가 스코틀랜드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 스튜어트 왕가를 다시 영국 왕위에 복귀시키려는 운동이다.
이 전투로 스코틀랜드의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고, 그 이후 스코틀랜드 문화와 전통이 억압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스코틀랜드의 혈통이 흐르는 맥퀸은 스코틀랜드의 유산과 역사를 기리며, 전투의 비극성과 여성들의 상실감을 컬렉션을 통해 표현, 비극 속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는 스코틀랜드 여성들의 모습을 강조하였다.
알렉산더 맥퀸은 컬로든 전투의 역사적 비극과 그로 인해 생긴 여성들의 슬픔을 패션을 통해 예술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역사와 패션의 깊은 연결성을 보여주었다.
어둠, 무에서부터 아련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창백한 점은 하일랜드 언덕의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인 듯여신과 같이 아름다운 케이트 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세계톱모델의 위치에 있던 그녀는 마약 스캔들로 패션계를 떠나 있어야 했는데 맥퀸의 지지로 쇼의 홀로그램 영상을 통해 성공적으로 패션계에 복귀했다.
매퀸은 아쉽게도 일찍 떠나갔다.
그리운 천재의 푸른 눈동자!
고통과 결핍, 고독은 예술가에겐 피할 수 없는 천형인가?
하버드 대학의 교육심리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Gardner, 1943~)에 따르면,
자살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나의 이 고통을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줄 사람이 없다는 고독감에서 자살한다고 한다. 그는 예술가와 천재들에 관해서도 연구를 했는데, 그에 따르면 예술가와 천재들은 하나 이상의 지능이 높게 발달되어 있고, 그들은 여러 지능을 함께 활용해 특출 난 사람이 된다. 예술가들은 재능을 계발하는 데 약 10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들은 도시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이동하여 친구로 삼고 능력을 공유한다. 하지만 독특하고 창의적일수록 주변이 이해하기 힘들어져 고립되기 시작한다. 이런 순간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라고...
미처 알지 못한 여러 천재들이여~ 기회를 만나 꽃 피우고 부디 오래오래 현존하기를!
* 뷔요크(Björk)는 아이슬란드 출신의 가수이자 작곡가로, 독특한 음악 스타일과 혁신적인 비주얼 아트로 유명하다. 그녀는 1993년 첫 솔로 앨범 "Debut"을 발표한 이후 다수의 앨범을 통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꾸준히 얻었고 있다. 또한, 뮤지션 외에도 배우로 활동하여 2000년 영화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매튜 바니(Matthew Barney)는 미국의 현대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실험적인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 아트로 유명하다. 그는 복잡한 상징과 신화를 다룬 대규모 작품 시리즈 "크리마스터 사이클(Cremaster Cycle)"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뮤지션 뷔요크와의 예술적 협업과 결혼 생활로도 주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