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이 오지 않으면

지랄총량의 법칙

by 초코파이

중2병이 오지 않으면... 좋을까?


고등학교 상담실에는 가끔. 아주 가끔 중2병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에 와서 사춘기를 겪는, 다른 아이들은 이미 중학교 때 중2병을 치렀고, 혼자서 방황을 하자니 너무 당황스러워하는, 사춘기가 늦된 아이들이 가끔 온다. 그런 아이들은 원래 가진 성격의 성향상 온순하고 예민하지 않은 아이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중2 때도 특별한 문제없이 부모님이 공부를 시키면 공부를 해야 되나 보다 하고 열심히 해서 그 아이들은 대부분 모범생, 엄친아의 중학생을 보냈다. 내 아이가 중학생인데 엄친아면 부모님은 아이에 대한 욕심만 높아진다. 다른 아이들이 미쳐 날뛰는 중학교의 시간을 성실하게 잘 보냈으니 고등학교에 가서 더더더더 잘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중학교 사춘기를 호되게 거치지 않은 아이들, 중학교 때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 미쳐 날뛰며 고민하지 않은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와서 부작용이 일어난다.(고등학교 때도 무난히 지나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더 크게 방황을 할지도 모른다. ) 그런 아이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중2처럼 이상해 지지 않는다. 차라리 이상한 말을 하고, 허세를 부리며, 반항을 하고, 삐뚤어지길 작정한 아이들처럼 행동하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사춘기 때 그런 행동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우울한 형태로 늦은 사춘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나의 내담자들도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 중에는 '중학교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학교 때 모범생이었다.', '중학교 때는 부모님과 잘 지냈다.', '부모님에게 크게 반항해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중2 때에 찾아오는 중2병은 얼마나 적절한지 모르겠다. 과일도 제철이 좋고, 사춘기도 제철에 해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사춘기를 보낸 90년대 말은 지금보다는 표현의 자유가 억압된 시기었다. 그래서 내 주변의 내 친구들도 지금의 중학생들에 비하면 비교적 순한 맛으로(이건 학교에서 본모습에 불과하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집에서 미친 짓을 보여줬는지 사실 알지 못한다.) 사춘기를 보낸 것 같다. 나의 사춘기는 딱 중2 때, 친구들과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발적인 왕따라고나 할까. 그때는 친구들이 너무 유치하게 보여서 같이 말을 하는 것이 너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친구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든, 어떤 행동을 하든, 무반응으로 일관한 시기가 있었다. 이것도 생각해 보면 나의 허세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중3이 되자마자 거짓말 같이 친구들과 잘 놀고 잘 사귀었지만.... 집에서는 비교적 조용한 사춘기를 보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나는 사춘기가 없이 지나간 것처럼 셍긱힐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비교적 조용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좌절에 대해서 미성숙하게 대처하기도 하고, 불안도 높은 대학시절을 보냈으며, 감정의 기복이 많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본다면 누구에게나 지랄총량이 법칙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래도 '저것이 사춘기라서 저런 거지.'라고 이해를 해줄 수 있는 사춘기에 많은 지랄을 쓰기를 바란다.


성숙하기 위해서는 아파야 한다. 고통이 없는 성장은 없는 것 같다. 지금 호되게 사춘기를 경험하고 있다면 그것을 발판 삼아 더 성장할 자신에게 응원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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