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우울

자신도 모르는 슬픔

by 초코파이

나는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상담교사다. 그리고 내게 찾아오는 학생들 중 절반은 이마에 우울하다고 써붙이고 다닌다. 1/4 정도는 상담 중에 서럽게 운다.


“한여름 학생은 우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넌 우울한 것 같아."


문제는 이 말 자체가 아니라, 봄이에게도, 여름이에게도, 가을이에게도, 겨울이에게도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아이에게 ‘우울’이라는 단어를 써서 학생을 설명해야 할 때는 내가 돌팔이 상담자처럼 보일까 봐 마음이 무겁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깜짝 놀란다.

“제가요? 우울하다고요?”

실제로 청소년들은 자신이 우울하다는 걸 잘 모른다. 자신은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는데, 친구들과 떠들고 놀 때는 웃기도 하는데, 왜 우울하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청소년기 우울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음이 슬프다’가 아니라 "짜증이 많아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춘기이기 때문에 짜증은 흔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짜증이 눈물로 이어지고, 본인도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면, 최근 들어서 그런 짜증이 심해졌다면,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선생님,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짜증을 많이 내고 있다면 우울을 의심해봐야 한다.


또 많은 경우, 청소년기 우울은 무기력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생이 갑자기 허무해졌어요.”
“뭔가를 한다는 게 다 부질없는 것 같아요.”
“요즘 재미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폰만 보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있어도 외로운 기분이에요.”

욕구는 마음의 에너지다. 욕구가 사라지면 우리는 늘어진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마치 불판 위에 늘어진 치즈처럼 흐물흐물해져 7교시까지 겨우 버틴다. 수업 시간엔 엎드려 있고, 급식 시간 종도 듣지 못해 밥도 못 먹고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귀찮아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귀찮아서 요즘은 친구들과도 놀지 않으려고 한다. 학교 오는 것도 귀찮고, 수업 듣는 것도 귀찮고 밥 먹는 것도 귀찮다고 한다. 행동도 느리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는 걸음걸이도 느리다. 색깔은 파릇파릇하지만 축 늘어진 5월의 푸른 잎 같다.


아이들은 배가 아프거나 머리가 아프다며 자주 보건실을 찾는다. 그 신체 증상 역시 우울의 신호일 수 있다.
물론 조퇴를 하기 위한, 학교에 오지 않기 위한 꾀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꾀병조차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학교에 있고 싶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울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봄이는 반항과 공격성으로,
여름이는 스마트폰에 몰입하며 현실을 회피하고,
가을이는 등교를 거부하고,
겨울이는 성적 저하와 집중력 문제를 호소한다.
계절이는 하루 종일 자고, 밥을 안 먹어 살이 빠졌고,
지구는 반대로 너무 많이 먹어 살이 쪘다고 괴로워한다.
그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이름은 하나—'우울'이다. 질병관리청이 조사한 2023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우울감이나 절망감을 느껴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청소년이 26% 라고 한다.

우리 학교엔 430명의 학생이 있다. 그렇다면 최소 100명 정도는 그런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 100명의 학생 중 본인이 뭔가 이상함을 느껴 상담을 신청하거나,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변화를 걱정해 나에게 오는 학생이 불과 20명도 안된다.


“우울증(주요 우울장애)이 아니라, 우울감입니다.”

DSM-5에 따르면, 주요 우울장애는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반드시 '우울감' 또는 '흥미의 상실'이어야 한다.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 아이는 분명히 우울하고, 귀찮고, 외롭고, 짜증이 나며, 일상생활이 힘들다. 청소년기, 사춘기의 아이들이라면 이라면, 적어도 굴러가는 낙엽을 보고도 배가 땅길 때 거지 웃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청소년기의 기억 속에 슬픔보다 웃음이 조금이라도 더 남았으면 좋겠다.
우울의 반대는 반드시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아이들이 학교에서 조금 덜 무기력하고 조금 더 웃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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