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자
"왜 늦었어?"
매일 지각하는 공주에게 잔소리를 따발총으로 쏘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신호로 물어본다.
"아! 샘 저 늦잠 자서 7시에 일어났어요."
로 나에게 많은 물음표를 주는 대답.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다.
"7시??"
나는 숨겨왔던 잔소리 장전을 숨기며 다시 물어본다.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이다. 7시에 일어나면 밥도 먹고, 씻고, 옷 갈아입고 해도 8시에 나올 수 있지 않나? 그럼 충분히 8시 30분까지 학교에 나올 수 있는 시간인데
"아! 6시에 일어나야 지각 안 해요."
"왜?"
"아침에 일어나서 씻어야 되죠. 씻고 화장하는데 2시간은 필요하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답답한 마음이 폭발하여 귀에 대고 소리치고 싶다.
"아무도 니 안 봐! 화장 안 하고 와도 아무도 몰라! 니한테 관심 없는 사람 없어! 화장 안 한 게 훨씬 이뻐!, 니 화장 진짜 이상해!"
내가 청소년들과 상담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 중에 하나는 '화장'이다. 맨얼굴로 출근하는 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여서 아침마다 2분 화장을 하는 나로서는 '그녀' 들의 풀메이크업이 신기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첫째, 그렇게 풀메이크업 화장을 하는 아이들의 화장은 예쁘지가 않다. 이 글을 보는 사춘기 풀메이크업 화장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진짜로 말해주는 건데, 진짜 안 예쁘다. 진짜 맨얼굴이 훨씬 예쁘다. 아무리 기초를 꼼꼼하게 해서 땀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안 예쁘다. 아 근데 왜 그렇게 화장을 하는 거야? 하이라이트와 쉐이딩을 과하게 줘서 음영이 아니라 그냥 코나 턱이 어색하게 시커멓다. 라인이 보이기도 한다. 어떨 때는 코를 너무 시커멓게 칠해서 강아지 코 콘셉트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눈밑은 애교 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과한 흰색 반짝이와 라이너로 시커멓게 그리는데 그게 진짜 이상하다. 유사 아이돌 화장 같은데 일반조명이나 자연광에서 보이는 모습은 호러다. 간혹 진짜 화장을 잘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다. 연예인 풀메이크업처럼 잘한다. 그래도 그 나이에는 그냥 맑은 얼굴이 더 이쁜 걸 모른다.
둘째, 그녀들은 진짜 화장품이 많다. 대충 잡티만 가리고 입술만 아파 보이지 않게 칠하면 화장 끝인 내가 볼 때는 어마어마한 도구이다.(나도 20대 때는 이렇게 대충 화장하진 않았지만...) 들고 다니는 파우치를 보면 일단 가방의 공간 반을 차지한다. 아무리 싼 걸 구입한다 하더라도 그 컬렉션은 제법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모은 것들이다. 많은 세월을 산 아이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파우치는 대부분 꼬질꼬질한 느낌이 들며, 마치 달인의 도구 같다.
셋째, 화장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해 봤다. 먼저 렌즈를 낀다. 그리고 미스트를 뿌려 피부결을 정돈한다. 그리고 선크림을 바르고, 피부를 환하게 만들어주는 크림을 하나 더 바른다. 그리고 파운데이션을 콩알만 하게 짜서 스페츌러로 얇게 펴 바른다. 컨실러로 잡티와 다크 서클도 야무지게 가린다. 그리고 쿠션을 두들겨 피부를 정리한다. 그러면 얼굴이 달떡처럼 하얗게 뜬다. 다음 제일 중요한 쌍꺼풀을 만든다. 쌍꺼풀이 있어도 만들고 없어도 만든다. 쌍꺼풀 풀을 꺼낸 다음 거울을 보고 정성스럽게 쌍꺼풀을 만든다. 다음은 눈썹을 한 올 한 올 그리고, 아이쉐도우도 10가지 색을 섞어서 이리저리 정성스럽게 바른다. 사실 바른 지 안 바른 지 일반인은 알아차릴 수 없는 몇 겹으로 바른다. 정말 1mm의 차이를 아는 듯. 그럴 땐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아이라인도 그리고 뷰러로 눈썹도 바짝 세워 올린다. 마스카라도 여러 번 얇게 펴 바른다.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으로 꼼꼼하게 속눈썹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인다. 애써 힘들여 바싹 세운 눈썹 위에 속눈썹을 붙이기도 한다. 그간의 노력이 삽질 같지만 그 미묘한 차이가 풀메이크업을 만든다. 애교 살 화장도 꼼꼼하게 하고 반짝이를 눈 주위에 바른다. 거울을 보며 눈을 몇 번 깜빡인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이쉐도우가 끼이진 않았는지 꼼꼼하게 본다. 다음은 얼굴의 크기를 줄여주는 쉐이딩으로 얼굴을 깎아줘야 한다. 큰 붓으로 거침없고 과감하게 턱을 깎아본다. 쉐이딩 가루가 사방에 튄다. 슬로비디오로 찍으면 가루가 예술로 날려서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코에도 쉐이딩을 그려 코가 오뚝해 보이도록 만들어준다. 하이라이터 쉐이딩으로 또 코, 턱, 이마에 붓으로 그려준다. 그리고 볼터치를 눈 아래에 해준다. 요즘 유행은 술 취한 것 같은 볼터치이다. 입술을 바를 색을 고른다. 신중하게 골라 입술에 거침없이 바른다. 앞니에 묻어도 개의치 않는다. 거울을 보고 목과 얼굴에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목에도 약간의 크림을 발라 화장을 해준다. 긴 여정이 끝났다. 그래도 거울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화장한 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한다. 제일 신기한 것은 한 시간 내내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는데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꿋꿋하게 화장하는 그 멘탈이다.
넷째, 내가 볼 땐 진짜 이상한데, 서로서로 이상하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이상하다고 말해주면 그걸 믿지 않는 것이다. 정말 진심으로 말해주는데도 안 믿는다. 하도 안 믿어서 내가 너 "응답하라 1988에 덕선이가 화장하는 거 봤냐? 진짜 그거랑 비슷하다."라고 말해줘도 아니라고 한다. 거울을 그렇게 보는데도 믿질 못한다.
그런 흑역사를 남겨야 어른이 되는 건가..
고등학생들을 데리고 대학가 앞에 간 적이 있었다. 맨날 보던 풀메이크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저게 얘들한테는 이쁜 건가 보다.라고 어느 정도 인지 도식이 평형화된 상태여서 풀메이크업이 익숙해져 있었다. 대학가에 20대들 속에 있는 10대들은 3D영상처럼, 벼밭의 쭉정이처럼 튀어나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에게 10대들의 화장이 촌스러워 보이면서 다시 인지 도식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행착오라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그 꾸미지 않은 듯 꾸민, 자신의 젊음의 장점을 잘 살려 내추럴한 매력을 뽐내는 20대 대학생 사이에서 최선을 다해 힘준 그녀들이 귀여웠다. 그 내추럴한 매력을 아는 대학생들도 우리 아이들 같은 시행착오를 거쳤겠지. 어쩌면 어려서 할 수 있는 시행착오일지 모른다. 그래서 그 시행착오마저 귀엽다.
그렇게 하루 2시간씩 풀 메이크업을 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문득 세수하고 고개를 들어 본 자신의 얼굴이 제일 예쁘다고 느끼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