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
불안과 우울은 짝꿍이다.
불안이 높으면 우울도 같이 높아진다.
적절한 불안과 우울은 얼핏 부정적인 단어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성실한 삶을 살 수 있다.
"내가 지금 놀면 시험을 못 치면 어떡하지?"
"늦게 일어나서 지각하면 어떡하지?"
"내가 이상한 말을 해서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적절한 불안이 있으면 그 불안 때문에 사람은 약속을 지키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할 수 있으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구분하고,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불안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약간 불안이 높은 사람이 더 높은 성취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건 진짜 진짜 과유불급이다.
요즘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나 우울증 약을 먹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예민한 청소년 시기에 불쌍한 세대이다. 앞으로도 더 심해질 것 같아 걱정이다.
나도 사실은 불안이 높은 편에 속한다. 어릴 때는 분리 불안이 있었고, 청소년기 때에도 원인 모를 불안이 있었다. 그냥 버스 정류장에서도 가만히 서서 버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돌아다니기도 하고 손을 가만히 있지 못해 뭔가를 계속 만지거나 돌리거나 하는 등의 정신없는 행동도 했다.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어서 친구랑 약속시간에 1분이라도 늦게 될까 봐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내내 차가 막힐 까봐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런 불안이 나도 청소년기 때,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제일 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걱정이 많고, 힘들었다. 뭔가 잘못할까 봐 불안하고, 혼날까 봐 불안하고, 실수할까 봐 불안하고, 내 앞날이 계속해서 불안했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기억이 미화되어 재미있었던 것 같지만 불안에 대해서 이해해 보려고 기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아마 청소년기의 자아에 대한 정체감이 확립되지 않아 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더 불안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이후에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게 나는 편해.' 등의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 불안이 덜 해졌던 것 같다.
상담실에 있으면 특히, 시험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가끔 찾아온다. 정말 학교생활을 잘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상담실 문을 두드릴 때면 열에 여섯, 일곱 정도는 시험불안을 호소한다. 특히 고3들 중에 시험불안이 갑자기 생겼다고 하는 학생들이 간혹 있다. 그 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고1, 2학년때는 시험불안이 있긴 했어도 견딜만한 수준이었지만 고3이 된 이후로부터 시험만 앞두고 있거나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불안하고 밤에 잠도 잘 못 잔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학생들에게 몇 가지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면서 몸에 집중하는 훈련, 또는 숫자를 세기도 한다. 이런 훈련 들을 상담시간에 같이 해본다. 급성으로 불안해서 눈물이 날 때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진짜 시간이 없고 힘들겠지만 운동을 권유한다. 심박수를 조절할 수 있으면 불안을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달리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 즉 심박수를 올리는 운동은 불안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달리기 이야기만 하면 약장수로 변신하여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과장이 아니라 마음의 병에 대해선 더더욱 만병 통치약이라고 생각을 한다. 마음을 튼튼하게 만들어주고 명상을 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다. 생각을 정리해 주기 때문이다. 또 체력이 좋았지만 힘든 마음도 견딜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의 약팔이는 항상 효과가 없다.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2박 3일을 떠들 수 있으나 사람들을, 특히 10대 청소년, 특히 여자 청소년들을 운동시키는 일은 정말 정말 힘들다. 운동이 불안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내가 설득하기 가장 힘든 방법이다. 결국 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더 어려운 처방을 준다. 아이들에게 심호흡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저 선생님은 상담교사가 맞나?'라는 표정으로 가끔 나를 쳐다보기도 한다. 그 눈빛에 쫄 리면 안된다.
시험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공부를 안 해서 그런 거야!
공부를 더 최선을 다해서 해야지 시험불안을 극복할 수 있어.
적어놓고 보니 정말 재수 없는 말이다. 정말 자신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나는 학교에서 어느 정도 신뢰받고 있는 상담샘이므로 이 말이 잘 먹힌다. 실제로도 아이들은 이 말이 제일 와닿았다고 말했다. '아! 공부를 최선을 다해서 하면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되는구나!''나는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지.'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는 방법이다. 불안을 심하게 느끼는 것은 공부하는 것에도, 시험을 치는 것에도 결국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피할 수 없으면 어떻게든 이겨내고 부딪혀야 한다.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한다. 자신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야 한다.
주의! 번아웃이라는 합병증과 시험불안을 동시에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뭘 하라고 말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