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과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상반기까지 엄마 옆에 꼭 붙어서 잤다. 잠을 잘 때가 되면 내 옆에 누워서 내 배를 만지면서 잠을 잤다. 그때는 애들 방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잘 때는 꼭 엄마랑 같이 자야 해서 네 식구가 좁은 더블 침대에 꼭 붙이서 자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귀찮아하면서도(나 혼자 잠을 자며 질 높은 수면을 취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였는데) 아이들과 다정한 스킨십을 하며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아주 어릴 때부터 10년이 넘게 이어온 잠자리 버릇이 평생 갈 거라고 큰 꿈을 꾸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초4만 되어도 사춘기가 와서 자기 방문을 꼭꼭 닫는다던데, 우리 애들은 독립을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아주 행복한 기억인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자기들 방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같이 자자는 말은 꺼내지도 못한다. 엄마가 아들 딸에게 할 수 있는 머리 쓰다듬기, 팔짱 끼기, 손잡기 등 내 살이 자기들 살에 닿는 것조차 싫어한다. 갑자기 변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애들이 점점 클수록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릴 때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되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집에 없으면 애들은 좋아한다. 점점 엄마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 엄마가 채워줄 수 있었던 자리를 스스로 채우거나 다른 것, 다른 사람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이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학원비나 용돈을 주는 경제적인 것과 밥을 차려주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엄마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엄마의 자리가 옅어지는 것에 허전함을 느낀다. 어릴 때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뿐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아니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제비 둥지 탐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알에서 깬 새끼제비들이 커지고 날아다닐 수 있게 되고, 스스로 먹이를 찾고 잡을 수 있게 되면 이소를 한다. 그러고 나면 텅 빈 둥지만 남는다. 새끼 제비들로 보글보글 하던 둥지가 텅 비게 된다. 아직 나는 아이들과 같이 살고 있어서 빈 둥지증후군(자녀가 성장하여 집을 떠나 독립하거나 대학에 입학해 집을 비우게 되었을 때, 부모가 겪는 심리적 허탈감과 외로움, 상실감을 일컫는 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리적으로 아이들이 독립하고 있으니, 엄마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않으니, 엄마의 역할이 줄어들수록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겠지만, 그래도 섭섭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이들을 보며 이제 같이 밥 먹고, 싸우고, 잔소리하는 것도 몇 년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4년 반 정도 남았다. 그 시간들이 너무 후딱 지나가버릴 것 같아서, 생각해 보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 아쉽다. 그때 되면 아이들을 위해서 밥을 차리는 일도 많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는 아이들을 낳아서 키우는 게 너무 금방 지나갔다고 말한다. 우리 엄마는 내가 큰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시어머니도 당신 아들은 사춘기도 없이 지나갔다고 말한다. 왜 사춘기가 없었겠나. 나도 돌이켜보면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었다.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독립하려고 준비하는 시기가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반항도 하고, 감정도 표현하고, 말도 안 하고, 방문을 닫고 틀어박히고 했겠지... 그런데 엄마들은 기억을 못 한다.
나도 그럴 것이다. 지금은 사춘기 아들 딸 때문에 열받고, 짜증 나고, 배신감 들고, 초조하고, 우울하다고 하더라도 이런 시간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지나가버릴 것이고, 나 역시도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도 없이 금방 지나가버렸다고 말할 것 같다. 엄마한테는 줘야 하는 마음만 있고, 돌려받을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게 하고 섭섭하게 하는 일은 금방 잊어버린다. 나는 그 줄 수 있는 마음들이 갈 곳을 잃을 까봐. 내가 주는 마음을 거절 할 때가 올까 봐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