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아 아.... 더 이상은 못 참아
언제나 성숙하지 못한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언제부턴가 '내가 성격파탄자인가?'라고 느끼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감정조절이 안 되는 때가 많았다. 갓난아기를 키우면서 잠을 잘 못 자고, 체력은 떨어지고, 모든 것이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소외감, 나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우울감 등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한테 가끔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아기들 앞에서 같이 울기도 하고, 분노 발작을 한 날에는 미안해서 자고 있는 애들 붙들고 울기도 하고... 부모가 되면서부터 나는 내가 미숙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매일 확인하며 살고 있다. 육아 외의 상황에서는 나는 감정조절을 잘하는 편이다. 화도 많이 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육아를 하면 화가 폭발해 버린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나는 항상 진다. 자존감이 떨어진다. 그걸 알지만, 화를 내는 게 이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지만 화를 참을 수 없다. 머리꼭대기 꼭지가 확 도는 기분.
우리 아들은 특히 나의 발작 버튼을 자극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이런 건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아마 타고난 것, 유전일지도 모른다.(나는 확실히 아니다.) 확실히 나의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아들과 딸이 다르다. 딸은 조금 더 사회화가 많이 되어 '눈치'라는 것을 본다. 그래서 딸은 나의 분노 버튼을 누르는 일이 없다. 하지만 아들은 미쳐 날뛰는 망아지 마냥 이리저리 지뢰밭을 뛰어다닌다. 그렇게 미쳐 날뛰다 보면 지뢰를 펑펑 밟는다.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여기는 지뢰밭이라는 것을 설명도 해주고 지뢰도 많이 터져봐서 몸소 체득하고 경험을 하면서도 계속 미쳐 날뛰는 것이다. 아.. 아들...(우리 아들은 약간의 고난만 만나도 '아... 인생...'이라고 한다. 인생을 아직 20년도 안 살아본 놈이 아... 인생...이라고 하는 게 웃긴다. 그걸 패러디해 보았다. 아... 아들...)
한 한 달 정도 된 일이다. 나는 그날도 쓰레기 통 같은 아들 방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온갖 쓰레기들과 수건과 양말과 옷, 책, 레고, 먼지들이 한데 뭉쳐서 방을 발 디딜 틈 없이 수놓고 있었다. 조금만 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세상의 이런 일이'에 제보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들에게 방을 치우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나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실제로 아들들은 안 들린다고 한다. 엄마 말이 안 들린다고 한다.) 나는 지금 방이 너무 더러우니 방 청소를 해라. 지금 당장 해라를 시작으로 속사포 랩을 해대었다. 방청소를 안 하는 것은 더럽고, 너의 정신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네가 공부를 못하는 것에 대한 고찰로 연결하여 결국 엄마는 무슨 죄냐로 끝나는 아주 광범위한 주제의 속사포 랩이 이어진다. 나도 내가 잔소리를 하면서 나의 연민을 끓어 올리고 결국 더 분노를 빌드업시키는 제주가 있다. 그렇게 고조된 랩잔소리는 지금 청소 좀 해라로 끝났으나 아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이라도 '응'이라고 하면 나도 내 할 일이 많으니 발 길을 들리려고 했다. 하지만 "왜 대답을 안 해?", "엄마가 하는 말 못 들었어?", "지금 청소한다고 말하라고!" 나 혼자 계속 대답을 종용하고 있었다. 이 정도 되면 내 안에서 마그마는 끓어오른다.
점층적으로 고조된 화는 내가 이 싸움에서 질 수 없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그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방금까지 아들이 가지고 놀다가 널브러져 있는 스팀 게임기. 나는 약 14년 동안 갈고닦은 최종 무기인 협박을 하기로 했다. "니 대답 안 하면 내가 저거 부술 거야. 대답하라고!" 아들은 나를 노려볼 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협박과 대답하라는 말을 섞어 3번 정도 했을 때쯤 나의 분노는 극에 다다랐고, 분노뿐만 아니라 여기까지 왔는데 저걸 부수지 않으면 내가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성큼성큼 신발장에 있는 망치를 들고 와서 스팀 게임기를 집어 들었다. 순간 이거 유리파편 튀면 애가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또 들어서 옆에 보이는 담요를 게임기에 둘둘 감았다. 내가 망치로 내리치려고 하는데도 아들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며 버티고 있었다. 애가 좀 초조해하는 것 같으면 협박의 말을 더 했을 거다. 하지만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이상 이제 끝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담담하게 이성적으로(감정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어도) 망치로 게임기를 내리쳤다.
아들은 박살 난 게임기를 보고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으로(중2에게는 정말 자식같이 소중한 게임기었나보다.) 폭풍 같은 눈물을 흘리며 괴성을 지르며 나에게 덤벼들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나는 심하게 당황했다. 결국은 내가 졌다. 나는 화를 내면 내가 진다는 것을 안다.
나의 화의 원천을 찾아보려고 노력 중이다. 다른 집 아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때가 되어 사춘기가 왔고, 그 시기에는 방이 쓰레기통 같은 거는 정상이며, 반항을 하고, 부모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대답을 안 하는 정도라면 아주 순한 중2병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왜 화가 났을까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나의 화는 아이에 대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아이에게서 불안을 느끼는 미숙한 나에 대한 화일 수도 있겠고, 나 혼자 낳은 자식도 아닌데 사춘기 애들 둘을 데리고 혼자 뺑이 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화일 수도 있고, 아이가 스팀 게임기 사달라고 말도 안 했는데, 자기가 게임 좋아한다고 애한테 바로 스팀게임기(사실 스팀게임기는 나에게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눈엣가시었다.)를 사준 남편에 대한 화일 수도 있겠다. 결국 나는 그런 화를 조절하지 못하고 결국 지는 방식을 선택한 나에게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