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타월도 물에서 놀고 싶다고!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나 말이에요.

너무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나도 물에서 놀고 싶었어요.


어른들은 나더러 물에서 놀면 안 된다는데

(물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이라는데)

다른 친구들이 너무 부럽단 말이에요.


나도 채소나 과일 친구들처럼

수도꼭지 아래서 시원하게 물 맞으며

샤워도 해보고 싶었고요.


그릇이나 수저 친구들처럼

몸에서 뽀드득 소리 날 정도로

수세미 거품 목욕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렇지만 나는 그 친구들처럼

온몸을 흠뻑 적시는 물놀이는

해볼 수가 없었죠.


나는 키친타월!

보송보송한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물을 조심하는 생활을 해왔답니다.


그래도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물놀이를 신나게 해보고 싶긴 했죠.

와, 상상만 해도 좋았다고요.




오늘은 상추들이 넓은 통에서

단체로 물놀이를 하는 중이랍니다.

상추들이 개별 샤워를 하기 전에

통에 몸을 담그고 먼지를 털어내는 중이에요.


채소나 과일들이 물놀이를 하는 것을 볼 때

나도 물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솟구쳐 오르는 거 같아요.

채소나 과일들은 고운 색을 가져서인지

물속에 있을 때 더 깨끗하고 싱싱해 보이거든요.


오늘따라 우리 주인은 나를 선반 위쪽으로

옮겨 놓아서 자리가 불편했어요.

원래 있던 자리가 안전하고 좋은데

이 자리는 너무 높아서 살짝 어지러웠어요.


그래도 상추들의 물놀이를 보면서 좋았어요.

상추의 초록색이 눈을 편안하게 하고

내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만 같았어요.

남의 물놀이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었지요.




그때였어요.

뭔가 내 몸이 기우뚱하는 느낌?

내가 오늘 평소보다 높은 자리에 올려져 있단

사실을 깜박 잊어버리고,

초록색의 싱그러움을 조금 더 자세히 느껴보고자

몸을 최대한 앞쪽으로 기울인 것이 문제였던가 봐요.


두루마리 휴지처럼 생긴 내 몸이 휘청이더니

아래쪽을 향해 떨어지고

이내 빠르게 구르기 시작했죠.

결국 나는 상추들이 물놀이하고 있는 통에

풍덩 빠지고야 말았어요.


"야호! 나도 드디어 물에 들어왔다!"

아주 잠시 기뻐했어요.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이런 기회가 오다니

정말 신나더라고요.


그렇지만 물에 닿는 순간 나는 느낄 수 있었죠.

이건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왜 어른들이 물 조심을 강조하셨는지

물에 빠진 내 몸이 직접 보여주더라고요.

나는 물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몸이 아니었어요.


내 몸은 상추가 담긴 통에 빠지자마자

통의 물을 쫙~쫙~ 흡수했고

흡수된 물은 몸의 구석구석으로 재빠르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답니다.

나는 한가득 물을 먹어 잔뜩 무거워진

키친타월이 되고 말았죠.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뭔가 방법을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정신없는 나를 건져내 준 것은,

우리 주인의 손이었어요.


주인은 자신이 잠깐 방에 다녀온 사이

자리를 이탈한 것으로도 모자라

홀딱 젖은 나를 보며 얼굴을 찌푸리더군요.


일단 나를 두 손으로 꽉 잡더니

있는 힘을 다해 비틀어 짜기 시작했어요.

무거워진 나의 몸에서 어떻게든 빨리

물을 짜내고 싶었던가 봐요.


윽...

이것이 말로만 듣던 공포의 비틀어 짜기?

나 진짜 키친타월계의 꽈배기 되는 줄 알았잖아요.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어요.

그동안의 내 삶에서는 비틀어 짤만큼

물에 젖어볼 일이 없었으니까요.


주방 동료인 행주가 주인의 손에 잡혀

쥐어짜지는 것을 많이 봤었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니 생각보다 너무 아팠어요.


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어요.

"으악... 아파요!

젖어서 팅팅 불고 흐물흐물 약해져 있는 나를

이렇게 비틀어 짜면 안 된다고요.

나는 행주와는 다르단 말이에요.

나 이러다 찢어지고 구멍 뚫릴지도 몰라요.

제발 이제 그만해요. 흑흑"


그동안 행주가 물기 짜며 비명 지를 때마다

엄살떨지 말라고 쉽게 내뱉었던 나의 말들을 반성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절대 쉽게 말하지 맙시다요!




나의 몸 곳곳에 주인의 손가락 자국을 내며

있는 힘껏 열심히 나를 쥐어짜던 주인은

짜도 짜도 축축한 나의 몸을 보며

한숨을 쉬더라고요.

이래갖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면서

쥐어짜는 것을 포기해 버렸어요.


내가 원래는 둥근기둥처럼 생긴 모양이었는데

주인이 너무 심하게 비틀어 짜는 바람에

몰골이 말이 아니게 변했어요.

심지어 몸이 쪼그라들어 작아졌어요.


내 아름다운 곡선미 어디 갔나요.

온몸이 쭈글쭈글, 울퉁불퉁, 납작해졌어요.

처음과는 너무 다르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서 멍했어요.


사실 나는 우리 주인에게 좀 기대했거든요.

이왕 벌어진 일이고 돌이킬 수 없으니

드라이기로 빨리 말려주려나 했죠.

설마 이렇게 젖은 상태로 내버려 둘진 몰랐다고요.


그런데 정말로 그러겠다지 뭡니까.

일부만 조금 젖은 것도 아니고

전체가 풍덩 빠져버린 거라서

드라이기로 말리기엔 전기값이 더 아깝다지 뭐예요.

그러면서 물에 빠지는 것도 마음대로 혼자 했으니

말리는 것도 혼자 알아서 하래요.


아이고, 냉정한 사람아!




다른 친구들이 물놀이를 마치고 나왔을 땐

물도 금방 잘 마르던데,

나는 젖은 몸이 마를 생각을 안 해요.

축축하고 무겁고 너무 불편해요.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버텨야 할까.

정말 울고 싶어요.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더니

정말 이렇게 깊게 느끼는 날이 올 줄 몰랐어요.


왜 조금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상태가 되게 만들었나 같은

후회를 하려 들면 끝도 없고,

다음에는 이런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며

축축하고 무거운 몸에 눈물까지 흘려가며

습한 기운 한가득 내뿜어가며 반성 중입니다.


하필 상추 담겼던 물에 빠져서인지

흰색이었던 내 몸의 색깔도 좀 변했어요.

이참에 다른 색 옷도 입어봤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죠 뭐.

힝, 근데 색이 그다지 마음에 안 들어요.


속상할수록 긍정 에너지를 풀가동 시켜야 해요.

나는 잘 마른다. 잘 마를 것이다.

들이쉬고 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심호흡을 해봅니다.

(아, 몰라 몰라. 긍정 에너지고 뭐고 너무 속상해요)


그런데 정말 너무 안 말라요.

며칠이나 지났는데 물기가 그대로였어요.

몸은 축축한데 속은 타들어갔죠.

나 이러다 완전히 달라붙어 한 장씩 떼어낼 수도

없게 되어버릴까 싶어 걱정이 됐거든요.


성질냈다 후회했다 반성했다 그렇게

몇 번씩이나 되풀이했던 거 같아요.

성질보다는 반성의 마음이 제대로 자리 잡을 때쯤

절대 마르지 않을 것 같던 내 몸이

드디어 건조되기 시작했어요.


거대한 두부 덩어리 같던 내 몸이

키친타월로서의 모습을 많이 회복해서

다시 한 장씩 떼어낼 수 있게 되었을 때

세상의 행복을 내가 가진 듯 진심으로 기뻤어요.




물에 빠졌던 후유증으로 물기가 마른 후에도

처음의 모습을 완벽히 되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덕분에 얻은 것이 있어요.


감사하는 마음이요.


잃어보기 전에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몰랐어요.

남들이 물놀이하는 것을 부러워하느라

정작 나의 보송보송함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있었답니다.


이제 잊지 않으려고요.

물에 젖은 나는 얼마나 축축하고

무거웠었는지를 말이에요.


나를 빨리 말려주지 않는다고

내가 진짜 주인 원망을 많이 했는데요.

이렇게 직접 고생하며 느껴보라는 의미였을까요?


내가 보기엔 주인의 깊은 속뜻은 없었던 거 같고

똑똑한 내가 알아서 깨우친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그 시간 덕분에 반성 많이 했어요.


그리고 여러분!

나 요즘 키친타월로서의 내 일이 너무 좋아요.

다시 일 시켜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열심히 행복하게 일하고 있으니까

이제 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럼 안녕!




슬픈키친타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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