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여기는 어디인 걸까요?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하얀색뿐인데
내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 하얀색에 둘러싸여 있었는지
나조차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것뿐입니다.
내가 상당히 길고 딱딱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언제든 선택을 받는 순간
둘로 쪼개어질 수 있다는 것.
그 순간이 오면 나는 비로소
나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내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내 운명은 그렇게 정해져 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 운명의 수레바퀴가
어디선가 잘못된 게 분명합니다.
언제부터 이런 하얀 정적 속에서 살아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이곳에 온 지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계속 이 하얀 세상이 바뀌질 않습니다.
처음엔 좋았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세상은 조용하고
사방은 하얀색으로 깨끗하고
계속 이렇게 지내도 좋을 것 같았어요.
어쩌면 내 운명이
이렇게 조용히 머물다 가도 좋다고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가 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지겨워졌습니다.
매일 하얀 벽만 보고 있으니
이젠 나도 아무 생각 없이
하얗게 변해버린 기분마저 들었어요.
"제발 여기서 나를 좀 꺼내줘요"
라고 외쳐보아도,
아무도 내 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내 몸이 뭔가 근질근질한 기분도 들었어요.
나도 모르는 변화가 생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나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렇게 근질거려야만 변화가 찾아오는 걸까요.
매일매일이 조용하더니 오늘에야 드디어
누군가 내 껍질을 만지는 게 느껴집니다.
내 몸을 둘러싸고 있던 껍질이 쭉 찢어지더니
어떤 손이 나를 잡고 쑥 꺼냅니다.
그리고 전해 들었던 대로 나를 반으로 쪼갭니다.
"아...... 아파요!"
둘로 쪼개진다는 것이 이렇게 잡아 뜯는
고통이 있는 건지 몰랐어요.
아파서 비명을 지르고 나니까
어떤 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사발면은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
구석에 박혀 있던 나무젓가락을
겨우 하나 찾았네."
"아, 내가 나무젓가락?"
나는 곧장 사발면 그릇 속으로 입수하게 됐는데요.
헉, 이건 또 뭐야. 너무 뜨거웠어요.
나의 조용하기만 하던 세상에서는
절대 느껴볼 수 없었던 뜨거움이었죠.
그래도 나의 임무수행이 시작되려는
중요한 첫 순간이라,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어요.
몸이 반으로 쪼개지던 아픔도 참고
뜨거운 물에서 뛰쳐나오고 싶던 고통도 견뎌
이제 라면 건더기를 건져 올릴 준비를 마쳤다고
마음이 한껏 들뜨려는 바로 그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어머나! 이게 뭐야?
너무 오래 구석에 두었었나 봐.
아무리 일회용이라지만
써보지도 못하고 버려야겠네."
그러더니 순식간에 나를 잡아서
곧장 쓰레기봉투에 넣는 겁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나 지금 바깥에 나오자마자
쓰레기봉투에 들어온 거 맞아요?
"여보세요! 잠깐만요!
이건 정말 너무하잖아요.
내가 일회용이라는 것도 충격인데,
일회마저 제대로 채우지도 못했다고요."
내가 아무리 외쳐봐도
아무리 울음이 나와도
아무도 내 소리를 들어주지 않아서
너무 슬퍼요.
곰팡이 때문에 끝나버린 내 허망한 삶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요?
아니 아니... 곰팡이가 아니었어도
나는 한 번만 쓰고 버려질 거였잖아요.
왜 쉽게 만들고 쉽게 버려요?
도대체 왜요?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내가 누군지를 알았단 말이에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