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나는 행복한 나무입니다.
우리 주인은 매일매일 나를 보면서
칭찬을 해주었어요.
"와... 어제보다 키가 조금 더 컸구나!
너는 어쩜 이렇게도 잘 크니?
너는 물만 먹고도 잘 커서 너무 예뻐."
주인은 내가 키만 크는데도
그게 그렇게나 신나고 좋은지
나를 볼 때마다 싱글벙글 웃곤 하네요.
나는 주인이 기뻐하는 게 보기 좋아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답니다.
나는 주인이 매일 갈아주는 물을 맛있게
열심히 먹고 있어요.
나중에 아주 많이 크는 나무가 될 거예요.
내가 튼튼하게 자라서 가지도 뻗고 꽃도 피면
우리 주인이 더 많이 기뻐하겠죠?
내가 언제부터 여기에 살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는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나무였어요.
나무들은...
흙 속에다 뿌리를 내리고 산다고 들었는데
나는 유리컵 속에 있는 물을 먹으면서
살고 있는 나무랍니다.
나는 가끔 꿈을 꿔요.
꿈속에서 나는 물이 아니라
흙 속에 뿌리가 묻혀서 자라다가
어느 날 어딘가로 이동하게 됐어요.
나는 어딘가에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나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봤었죠.
그러다 나는 누군가의 손에 들려서
어떤 집으로 가게 됐어요.
손이 나를 시원한 물에 씻겨주고
내 껍질을 벗기고 내 뿌리를 싹둑 잘랐어요.
뿌리가 잘린 나는 너무 놀라서
꿈에서 깨어나곤 했어요.
난 아마 뿌리를 잘린 적이 있었던
나무였던가 봐요. 혹시 그래서인가?
내가 지금 잘 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인은 아주 기뻐한답니다.
나는 좀 많이 예민한 나무예요.
물을 매일 갈아주지 않으면
뿌리에서 냄새가 나는 나무거든요.
그런데 우리 주인이 나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날마다 잊지 않고 매일 물을 갈아주고 있답니다.
내가 키 크는 걸 그렇게 기뻐해 주는데,
물도 열심히 갈아주는데,
나도 우리 주인을 위해서 꼭 멋진 꽃을 피워주는
나무가 될 거라고 매일 생각했어요.
오늘도 우리 주인이 물을 갈아주었어요.
새 물로 바꿔주면 더 신선하고 맛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 물을 바꿔준 주인도
간단히 먹을 걸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오늘의 메뉴는 떡볶이래요.
오랜만에 떡볶이를 해 먹는 거라면서
룰루랄라 신났더라고요.
어묵, 양배추, 양파 같은 걸 잔뜩 넣은
떡볶이가 취향인 우리 주인은요.
오늘도 그렇게 떡볶이를 만드는 중이었어요.
그때 주인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로 다가왔어요.
"어디 보자! 많이 컸는데
오늘은 이걸 잘라서 넣어 볼까?
지금 딱 예쁘게 자랐는데 잘라서 먹으려니
어째 아깝기도 하네."
헉...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 거죠?
지금 주인이 내 앞에서 한 말이 무슨 말인 건지
듣고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주인이 지금,
나를 잘라서 먹는다고 한 게 맞는 걸까요?
그렇게 예뻐하던 나를,
키 잘 큰다고 좋아하던 나를,
왜 나무인 나를 잘라서 먹으려는 거죠?
대체 왜요?
혹시 이것도 악몽인 걸까요?
제발 꿈이라고 누가 얘기해 주세요.
그런데 꿈이 아니었나 봐요.
주인이 정말로 가위를 들고 내게 다가왔어요.
"내가 좀 잘라도 계속 잘 자라줘야 해?
나는 네가 크는 거 보는 게 정말 좋았거든.
넌 내가 처음으로 컵에다 키워본 대파란 말이야.
대파? 힝...
내가 나무가 아니었다고요?
충격으로 머릿속이 지지직 거리더니
그동안 내 꿈속에서 보였던 장소가
어디였는지 떠올랐어요.
그곳은 바로 마트의 채소코너였어요.
대파 한 단에 얼마라고 써진 것이
내 옆에 있었던 것도 떠올랐어요.
아...! 또 생각이 났어요.
주인이 나를 마트에서 사 온 날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주인은 나를 씻고 손질해서
냉동실에 넣어놓겠다고 했었는데요.
유독 겁이 많던 내가 공포에 질려서는
파뿌리 잘리던 순간에 기절해 버렸지 뭐예요.
그 이후로는 필름이 끊겨버렸어요.
내가 그렇게 겁쟁이 대파였지 뭐예요.
지금 보니까 나는 뿌리와 물만 있으면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는 씩씩한 존재인데
그때는 그걸 몰랐었지 뭡니까.
이제는 그걸 아니까 예전만큼 무섭진 않아요.
오늘 내 몸이 잘려서
떡볶이에 들어간다고 해도,
언젠가는 다시 자랄 거예요.
오늘은 채소인 대파로 떠나가지만
당신을 위한 나무로 다시 돌아올게요.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웠어요.
나는 정말 행복한 나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