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아... 너무 더워!"
너 제발 나한테서 좀 떨어져 줄래?
왜 나한테 들러붙어서 더운 날에 더 덥게 만드는 거니?"
나한테 계속 짜증만 내는 저 녀석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나도 잘 알고 있거든요.
혼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무더위인데
내가 자기한테서 떨어지지도 않고 찰싹 붙어 있으니
얼마나 떼어버리고 싶겠습니까.
우리가 서로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라서
딱 붙어 있는 거라면 그깟 더위가 문제겠어요.
네 땀도 내 땀도 서로 닦아주며 예뻐하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니거든요.
우리는 아주 비즈니스적인 관계예요.
저 녀석과 나는 서로 힘을 합쳐
사람을 기쁘게 하는 파트너랍니다.
아무리 예전에 비해 식단이 서구화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밥그릇과 내가 힘을 합쳐 전해주는
밥의 에너지로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집주인은 힘을 내려면 밥을 먹어야 한답니다.
우리가 원래는 서로 짜증 내는 사이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린 건 우리 주인의 탓이 아주 커요.
요즘에 우리 주인이 계속 정신이 없어 보였어요.
날도 더워 지치는데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지쳐 있다 보니, 당장 급하지 않은 일은
일단 뒤로 미루고 있더라고요.
오늘은 밥 먹고서 빨리 끝내야 할 일이 있다면서
그냥 방에 들어가 버리지 뭐예요.
밥그릇에 물이라도 좀 부어놓아야 불어서
설거지하기 쉬울 텐데,
밥그릇을 그냥 싱크대에 던져놓고 가버린 겁니다.
저 녀석은 말이에요.
평소에도 도자기처럼 매끄러운 피부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는 밥그릇이거든요.
시원한 물에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지 못하면
못 참는 녀석인데,
밥풀인 내가 말라서 달라붙어 있으니까
저렇게 계속 짜증을 내고 있는 중이랍니다.
나 때문에 자기 미모가 가린다고 짜증,
나 때문에 더 덥다고 짜증,
계속 얼마나 짜증을 내는지,
그 소릴 계속 들어야 한다는 게 괴로웠어요.
주인이 이렇게까지 긴 시간 동안
설거지를 안 할 줄 알았으면
내가 말랑말랑한 밥풀이었을 때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서라도
저 그릇 녀석에게서 떨어질 걸 그랬나 봐요.
나도 덥다 보니 방심했네요.
너무 더워서 축 늘어져 있었거든요.
그래서 더 빨리 마른 밥풀이 되어버렸나 싶기도 해요.
나는 그래도 긍정적인 밥풀이라서
주인이 아침에 못한 설거지를 저녁때는 할 테니
'조금만 참자'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주인이 저녁때
돌아올 때까지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사실 날씨가 이렇게 심하게 덥지만 않았어도
그릇이 귀가 따가울 만큼 짜증만 안 냈어도
나는 그럭저럭 참을만했을 거예요.
이렇게 더운데 마음껏 수영할 수 있게
물이라도 좀 부어주고 가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주인이 너무 마음이 바빠 보이니까
나는 다 이해했다 이겁니다.
그런데 오전이 지나 오후로 넘어가면서
집안 공기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어요.
그에 따라 성격도 까칠한 밥그릇이
점점 짜증이 심해지더라고요.
나도 덩달아 신경이 날카로워져 버렸어요.
당장 해결책도 없는데 짜증이 가득인 밥그릇에게
"내가 좋아서 달라붙은 거 아니거든?
저녁때까지만 좀 참아라."라고 말해가면서요.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바싹 말라가던 나는
목도 너무 마르고,
수분이 없는 상태로 버티고 버티다가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던가 봐요.
밥그릇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깨웠어요.
그 사이 밥그릇이 더 화가 났더라고요.
"야! 밥풀이 너 안 일어나냐.
이 상황에 잠이 오니?
아주 세상 편하게 나한테 들러붙어서 잘만 자네.
너 말이야. 아침에는 촉촉하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말라붙어서 얼마나 딱딱하고 배기는지 알아?
딱딱한 게 내 몸에 붙어 있으니까
몸에 뭐가 볼록 난 것처럼 불편해 죽겠어."
"그래, 밥그릇 네가 불편한 거 이해해.
날도 더운데 내가 붙어 있어서
더 화나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내가 일부러 붙어 있는 게 아니잖아.
주인이 급하게 밥을 먹다가 덜 긁어먹어서
붙어 있게 된 걸 나보고 어쩌라고!
왜 자꾸 나한테만 화내?"
"화가 나니까 화내지.
그럼 여기서 누구한테 화내?"
"너같이 성질부리는 나쁜 그릇에 담기면
음식들도 맛이 없어질 거야."
"너, 말 다 했어?
내가 일부러 성질부린 거냐고?"
밥그릇이랑 계속 투닥투닥 싸우다 보니
정작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우리끼리 뭐 하는 건가 싶었어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우리 둘 다 지나치게
예민해진 거 같으니까, 좀 진정해야 할 것 같았죠.
밥그릇보다는 조금 더 차분한 내가 먼저
정신 차리고 말했어요.
"잠깐만! 밥그릇 너랑 나랑 계속 싸워봤자
답도 없고 더 덥기만 하잖아.
인간들이 샤워하듯이 우리도 시원하게
설거지를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하는 바람에
네가 날카로워진 거 다 알아. 네 마음 다 아니까
일단은 진정하자고! 응?"
"진정하게 생겼니? 너는 지금 나한테
여름날의 땀띠처럼 너무너무 성가신 존재라고.
밥풀 네가 딱딱해서 따가워 죽겠단 말이야."
"그래, 안다니까!
그럼 내가 계속 몸을 비틀어서라도
너한테서 떨어져 볼 테니까
네가 간지러워도 좀 참아볼래?"
내가 있는 힘을 다해서
막 몸을 비틀어 보려고 했더니
밥그릇이 소리를 지르며 말했어요.
"야..... 그만해!
네가 말라버린 몸으로 꼬물대니까
가시 박힌 듯 더 아파!!!!!
넌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너무 더웠기 때문이었는지
밥그릇이랑 싸우는 것도 지쳐서
어느새 둘 다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더 이상 싸울 힘도 없어서 조용히 있으려니
주인이 싱크대 앞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제야 돌아왔네요.
그러고는 수도꼭지를 틀더니 밥그릇과 내게
물을 흠뻑 뿌려주었어요.
"어머나! 내가 정신을 어디다 판 거야.
그릇에 물도 안 부어두고 그냥 나갔었네.
이거 이거 밥풀 말라 붙은 거 봐라.
너무 딱딱해서 떼어지지도 않잖아.
밥풀이 밥그릇에 들러붙다 못해
화석처럼 박혀있구먼. 호호호..."
그 말을 듣던 순간만은
나의 마음도 밥그릇도 마음도
하나가 되었어요.
우리는 주인을 향해 외쳤답니다.
"아......... 정말 짜증 나!
제발 웃지 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