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냉장고 밖으로 날다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참 무더운 날씨입니다.

한 번씩 냉장고 문이 열릴 때마다

후끈하고 끈적끈적한 바깥의 열기가

냉장고 안으로 전해짐과 동시에

더위에 지친 주인의 얼굴이 보여요.


뭔가 수분이 부족해 보이는 얼굴로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찾는 주인을 보니

계속 시원하게 있을 수 있는 내 자리가

천국이란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만족하냐고요?

아니요. 절대 만족할 수가 없는 냉장고예요.

이 집 냉장고는 문제가 많아요.


내가 이 집에 온 지 얼마나 됐지?

같이 수다 떨 친구가 없어서인지

날짜 가는 걸 전혀 모르겠어요.

이 집 냉장고는 시원한 거 빼면

정말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냉장고가 뭐 하는 겁니까?

그냥 세워두려고 둔 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채워진 것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주인이 다이어트라도 하나 싶어서

문이 열릴 때마다 한 번씩 봤거든요.

그런데 절대 다이어트하는 몸매는 아니더라고요.


뭐지? 다이어트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럼 냉장고는 왜 이모양인가 생각하다가

혼자 내린 결론은요.

이 집에 사는 사람은 현재 무기력한 거 같아요.


냉장고 안에 김치조차 없는 걸 보니

최근엔 덥다는 핑계로 다 귀찮아서

요리도 안 해 먹는 사람인가 봐요.


냉장고 안에는 요즘 흔해빠진

냉동식품 같은 것도 없어요.

냉장고 속 내 동기들을 보니

버섯, 양배추, 호박이 전부예요.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요즘에

장 보기를 열심히 안 하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보통 냉장고 속에 먹을 게 없으면

휑하게 넓기라도 해야 하잖아요.

먹을 것도 없는데 그렇다고 자리가 넓지도 않아요.


잘 정돈된 느낌과는 거리가 멀고

대충 쓰는 듯한 이 냉장고 안에서

시원하다는 장점 하나 빼고는

단점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아요.


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나는 냉장고에서 탈출하고 싶었어요.

나는 여기에 가만히 있다가

계란 요리가 되고 싶진 않았거든요.


문이 열릴 때마다 탈출의 기회를 엿보았지만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바깥공기가 훅 들어오면

도저히 냉장고 밖 뜨거운 세상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나지 뭐예요.


그래서 일단 버텼죠.

"기다려 보자!

냉장고 정리를 할지도 모르잖아.

정리만 해준다면 사실 이만한 환경이

또 어디 있겠냐고!

조금만 더 버텨보는 거야."




아...... 그런데요.

아무리 기다려봐도 당분간은 절대

정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요새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보이는 데다

날씨까지 더워서 무기력해 보여요.


그럼 별수 없죠 뭐. 마음이 급한 내가

이곳을 탈출할 밖에요.


"그래, 시원한 냉장고 세상을 포기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 보는 거야."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대기 중이었어요.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리기만을 기다렸죠.


그런데, 냉장고 문이 열리자마자 들려온 소리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어요.


"계란 프라이나 해 먹어야겠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죠?

나는 냉장고 밖 넓은 세상을 찾아

탈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내가!

계란프라이가 되어야 할 운명인 거냐고요!

왜 나는 많고 많은 이름 중에

계란인 거냐고요.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주인의 손이 다가오더니

나의 몸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주인의 손아귀를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내 몸을 흔들었어요.

"이거 놔요! 나는 할 일이 있단 말이에요."


나의 강한 저항이 먹힌 걸까요.

주인의 손이 나를 놓쳐버렸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아악...... 이건 아니야.

나는 냉장고 탈출을 하고 싶은 거지

바닥으로 추락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요."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닥에 곤두박질한 내 몸에서

"쩍..." 하는 소리가 나더니,

내 몸속의 내용물들이 바닥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이고, 아까워라. 깨져버렸네.

왜 하필 먼지 있는 바닥으로 떨어진 거니.

이건 먹지도 못하겠다.

버릴 수밖에."





내가 허무하게 깨져버렸는데도

여전히 냉장고 밖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뜨겁고 끈적이는 열기가 가득한 세상이에요.


나는 자유를 찾아 탈출을 시도했지만,

내 몸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인지를

미처 생각지 못했어요.


시원한 냉장고 속에서 편안히 지내다가

계란 요리가 되었어야 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일반적인 계란의 삶보다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계란이

되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인간의 손아귀에서 탈출해서

1초간 날았습니다.


비록 완벽한 탈출은 실패했지만

내가 날기를 시도했던 그 순간만큼은

씩씩한 계란이었다는 것을,

날 움켜쥐었던 당신만은 기억해 주세요.




계란날아가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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