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아아...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주인이 방치한 덕분에
온몸이 근질근질하더니 싹이 나버린 양파입니다.
내가 오늘은 주인의 정신없음에 대해
얘기 좀 해볼까 합니다.
그 정신없음이 내게 주었던 헛된 기대에
대해서 말이에요.
내가 이 집에 처음 온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도 안 납니다.
먹으려고 샀으면 잘 먹어주던가 방치나 하고 말이야.
내가 이 집에 오던 날에 같이 온 버섯은
잘만 챙겨 먹어놓고 나만 잊어버린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이해했어요.
주황색 망 안에 섞여 있는 여러 개의 양파 중에서
나를 제일 먼저 선택하지 않은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망 속에 있던 다른 양파들을 다 먹고
이제 나 하나 남았는데,
이 정신없는 주인이 그만 나를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렸네요?
친구들이 망 안에 있을 땐 심심하진 않았는데
지금은 답답하고 갑갑해요.
이 집에 머무르다 보니 주인이 정식으로
집안에 키우는 식물이라고는
행운목 하나뿐이더라고요.
정신없는 주인이 행운목 안 죽이고 있는 것만 봐도
신기하고 기적이라 생각했어요.
행운목은 꼴에 자기 이름 자랑도 합디다!
주인이 지어준 이름이 행우니래요.
푸하하하 이름도 되게 오글거리지 않나요?
내가 방치되었기에 망정이지 이름이 있었다면
양파니 될 뻔했네요.
처음에 이 집에 왔을 때는요.
주인에게 사랑받으면,
오글거리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니
그런 애정 따윈 사절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인은 시간이 흘러도 나를 꺼내줄
생각을 안 했어요.
그래서 나는 은근 기대도 했지 뭡니까.
뭘 기대했냐고요?
주인만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 거라 생각했죠.
나를 먹지도 않고 계속 방치하기에
착각을 했어요.
이 집에 보니까 대파도 컵에 담아 키우고,
고구마도 컵에 담아 키우기에,
나도 그렇게 키우려고 안 먹는 건 줄 알았단 말이에요.
다른 애들은 통에 담아서 물이라도 먹게 해 주는데
나를 계속 주황색 망 속에 이렇게 내버려 두는 건
양파를 키우는 새로운 방법인가 했단 말이에요.
완전 혼자서 김칫국부터 마신 거였네요.
오늘 드디어 주인이 주황색 망에서 나를 꺼내어
집어 들더니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라고요.
나는 이제 망이 아닌, 집을 바꿔주려나보다 해서
막 설레더라고요.
그때 주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머나! 내가 이 양파를 아직도 안 먹고 있었네?
이 정신머리 어쩜 좋아. 살림 한번 자~알 한다.
심지어 싹도 나고 제법 자랐어~ 호호"
이런 세상에!
나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어요.
자유로운 방목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주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서
방치되고 있던 양파였다는 걸 확인받는 순간
너무나 슬퍼졌어요.
막 눈물이 터지려는데 주인이 갑자기
즉석 밥그릇을 하나 들고 와서는 나를 눕히더라고요.
마침 길이도 딱 맞았어요.
어? 이건?
주인의 마음이 바뀌어서 고구마나 대파처럼
나도 물에 담아서 키우려나보다 싶어
막 마음이 들뜨려는 순간 주인이 또 하는 말!
오 마이 갓~~~~
"어쩜 이렇게 그릇 안에 잘 맞을까. 호호
양파가 싹 난 거 보는 것도 오랜만인데
기념촬영이나 하고,
내일은 볶아서라도 먹어야겠다."
헉... 이 주인 도대체 뭐죠?
완전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이렇게 힘들게 만들다니!
왜 양파 착각하게 통에 담아요?
나도 물 부어 주는 줄 착각했잖아요.
아... 몰라 몰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먹지 말고 사랑해 줘요!
고구마는 물에 담가놔도 아직 싹도 안 났던데,
나는 물 한 번 안 줘도 알아서 싹도 나왔잖아요.
이렇게 기특한 나를 사랑해 달라고요.
난 하얀 통 집도 마음에 들었는데... 흑흑...
왜 쓸데없이 기대하게 만들었어요? 왜?
나도 이 집에서 반려 식물로
살아가게 되는 줄 기대했잖아요.
정말 너무해요.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