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여러분!
내 이야기 좀 들어주실래요?
말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도저히 못 참겠어요.
나는 얼마 전까지 다른 접시들과 함께
주방에서 맹활약하던 접시예요.
그런 내가 어디 금이 간 것도 아니고
깨진 것도 아닌데,
주방에서 팽 당했어요.
이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냐고요.
나는 지금 싱크대 아래쪽 컴컴한 곳에
홀로 격리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인은 이제 나를 더 이상
음식들을 담는 접시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답니다.
이유가 뭔지 아세요?
내가 더럽기 때문이래요.
접시로서의 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모욕적인 말은 처음 들어서
충격이 가시질 않네요.
맛있는 음식을 담던 내게 더럽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을까요?
나를 그렇게 만든 당사자가 말입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주인이 오랜만에 포장해 온 음식을 먹었거든요.
분리수거해야 하니까 플라스틱 용기를 씻으려고
물을 부어서 불리고 있었어요.
개수대에는 설거지할 다른 그릇들도 있었고요.
나는 그 플라스틱 용기 속에 담겨 있는 상태였어요.
용기에 살짝 남아 있던 양념들 때문에
물 색깔이 짙어진 상태였는데,
하필 내가 그 안에 담겨 있어서 잘 안보였답니다.
주인이 갑자기 플라스틱 용기를 들더니
화장실로 가더라고요.
용기에 담겨있던 나는 얼떨결에 화장실로
옮겨지게 된 거죠.
내가 이 집에 오래 살았지만
화장실에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었어요.
이건 뭐지? 화장실 체험의 날인가?
궁금해하던 중이었어요.
화장실에 들어온 주인은
플라스틱 용기 안에 있었던 물을
변기에 따라 버리더라고요.
통이 살짝 기울어지는 바람에
그 안에 있던 내 몸이 기우뚱하기 시작했어요.
"어... 어... 이거 위험한데!
나 이러다가 변기에 빠지는 거 아냐?
저기요! 주인님.
혹시 나 여기 있는 거 잊어버린 거 아니에요?
지금 통을 너무 많이 기울였다고요.
나 미끄러워서 떨어질 거 같다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소리를 쳐봐도
주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어요.
이러다 변기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나의 공포는
극에 달해서, 내 몸이 달그락달그락 떨렸어요.
만약 용기의 물을 천천히 버렸다면
주인이 나를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재빨리 붓는 바람에
미처 나를 발견하지 못한 거 같았어요.
안 떨어지려고 있는 힘을 다해 버텨봤지만
결국 나는 미끄러져 변기에 풍덩 빠지고 말았어요.
"으악....."
내가 변기에 떨어지면서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깜짝 놀란 주인이 말하더군요.
"이게 뭐야? 왜 접시가 여기 들어 있어?
어머 어떡해. 엄마가 사주셨던 접시인데
아까워서 어떡해.
난 왜 접시가 담겨 있었던 것도 못 본 거야.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었기에
접시를 변기에다 빠트리냐.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생겼지? 어떡해.
아... 신경질 나!!!"
주인이 이렇게 말 많은 거 처음 봤잖아요.
아주 혼자서 연극 무대의 독백이라도 하듯
얼마나 중얼거리는지, 변기에 빠져 있는 와중에
피식 웃었지 뭐예요.
"자, 그만 말하고 얼른 나를 꺼내줘요."
그런데 주인이 하는 말이 충격이었어요.
"이 접시는 더럽고 찜찜해서 못 쓰겠다."
헉... 이게 무슨 소리래요?
내가 변기에 떨어질 때,
안 깨지려고 온몸에 힘도 빼고
다이빙하듯이 아주 유연하고 매끄럽게
입수에 성공해서,
내 상태는 아무 문제가 없거든요.
깨진 것도 아닌 나를 접시로 안 쓴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오줌이나 똥 있는 변기에 빠진 것도 아니고,
내가 장난치다 내 잘못으로 빠진 것도 아니고,
주인이 부주의해서 나를 변기에다 빠트려놓고선
왜 나를 더럽다고 하는 거죠?
당신이 빠트렸잖아요.
나를 뜨거운 물에 팔팔 끓이든
소독약에 소독을 하든 해서
나를 주방으로 다시 보내달라 이겁니다.
내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단아한 미모를 가진 접시인데
이런 나를 주방에서 퇴출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피곤하다며 청소 안 하고도 잘만 살더구먼
뭔 깔끔을 떤다고 맑은 물 변기에 빠진 나를
그렇게 팽하냔 말입니다.
세제로 여러 번 빡빡 씻고
뜨거운 물속에 팔팔 끓였다 나오는
소독의 고통까지 내가 다 감수할 테니,
그렇게 쉽게 나를 버리지 말라 이거예요.
내가 아무리 외쳐본들 주인에게 내 말 따윈
들리지 않았고, 변기에서 건져진 나는 결국
싱크대 구석 어두컴컴한 자리에 격리되는
처참함을 느끼고 있는 중입니다.
나의 접시로서의 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릴 줄 몰랐기에
주방의 친구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해서
너무 슬프고 속상합니다.
생각할수록 나는 정말 억울합니다.
변기에 빠진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나는 잘못한 게 없는걸요.
왜 잘못한 것도 없는 나를 주방에서 퇴출시키냐고요.
잘못은 당신이 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요?
주인 나빠요! 정말 미워요!
변기에 빠진 접시라는 이 불명예 어떻게 할 거예요?
나의 접시로서의 자부심을 돌려달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