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과 인생

여정을 앞두고 외로이 서있는 그대에게

by 에이브 Ave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이 항상 두려웠다. 분명 끝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 불안함과 불안정함이 계속될까 하는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정에서는 당연히 그 불안함이 크게 줄어들었고 특히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여행할 때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댈 수 있어 더욱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나와 여행하는 자들이 나보다 어리거나 혹은 나 혼자 여행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굉장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고 혹시 도둑맞지는 않을까, 나쁜 일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여행 가기 전날에도 두렵고 무섭다고 일기를 썼다.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다른 사람이랑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오만 생각을 다하며 그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던 나는 전날 밤 걱정에 잠 못 이루던 것이 없었던 일 마냥 짐을 챙기고 확인에 확인을 더하며 스케줄을 재정비했다. 그렇다. 나는 여행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불확실함을 두려워한다.


여행 계획을 짜던 나는 내가 항상 웃고 있는 걸 깨달았다. 내가 내 여행을 개척해 나갈 때 밝은 에너지가 나를 휘감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행 계획이 이리도 재미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의 24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지 다 계획하고 정할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어떤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다 계획해 나가는 내가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공부할 때도 해본 적 없는 엑셀표에 차근차근 스케줄을 정비해 나가고 서류가 쌓이고 쌓일 때까지 계속해서 심혈을 기울여 계획을 수정해 나갔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던 나는 어느새 여행이 내 삶에 가장 큰 의미가 되었다. 여행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싶어졌다. 물론 나 혼자만이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혼자 여행할 적에 돈이 항상 부족하여 아끼고 또 아끼며 여행을 했지만 누군가와 여행을 할 때에는 나 혼자 아껴서는 안 되기에 돈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1살, 나의 청춘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여행을 더 하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여행을 하며 돈을 쓰고 맛있는 걸 먹는 게 아니라 여행을 하기까지의 나의 준비와 노력과 또 여행을 하면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나의 최종 목적이자 바람이다.


여행은 인생과도 같다. 여행과 인생에서는 작은 사건들이 모여 큰 사고가 되기도 하고 소소하게 즐기던 순간들이 어느덧 마음 한 구석을 밝게 비춰주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뜻밖의 순간에 만나기도 하고, 나를 더 성장시켜 주는 귀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내 인생에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는 아픔과 상처가 생기기도 하고 다시는 오지 못할 추억의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불확실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하고 불안한 상황에 내던져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과 인생은 그만의 가치가 있다.


불안정한 나의 인생과도 같이 여행 또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 혹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겨야 하는 인생이기도 하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발견하기도 하지 않는가? 여행 또한 나의 의지와 달리 흐르는 시간 앞에 순응하여 걸어가다 보면 인생에 다시는 없을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흐르는 강물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에는 거센 물살과 야속한 세월 앞에 상처와 후회만 남기기에, 오늘도 나는 나의 인생과 여행을 겸허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여행은 돈자랑, 돈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생각했고 여행에 쓰는 돈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가족과의 여행은 항상 즐거웠고 그 순간을 위한 부모님의 희생과 노력은 보지 못했다. 내가 즐기는 그 순간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갔음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부모님은 돈과 시간보다 추억이 중요함을 강조하신다. 돈과 시간은 모두 사라져 갈 것들이지만 추억은 항상 나와 함께하니까. 여행은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추억의 소중함, 인연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청춘의 소중함, 순간의 소중함, 건강의 소중함. 그리고 이 소중함들이 모여 결국엔 한 목소리로 감사를 시인한다. 여행과 인생 모두 불안한 순간에 감사함을, 두려운 순간에 감사함을, 고독한 순간에 감사함을, 허무한 순간에 감사함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인생의 의미는 여정의 끝에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여정 중에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인생의 의미는 결국 ‘모든 것에 감사’ 임을 시인하며 이 글을 마친다.


하와이 여행에서


꿈꿔왔던 와이키키 해변
아무것도 없는 몬타나주의 한 마을
시카고 기차역에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