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고 사랑하는 사람
누가 어른을 정의 내릴 수 있는가. 어른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건 어른인가 아이인가. 아이의 눈에 어른은 성숙하고 실수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아무런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른의 눈에 어른은 아직도 철이 없고 실수투성이에 세상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와 어른의 눈에서 어른은 이렇게나 다르다. 그렇다면 어른이 된 아이가 어른이 보는 어른으로 살게 된다면 그제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살에서 20살로 넘어가는, 십 대 청소년에서 스무 살이 되는 그때에 온 세상이 흔들리고 무너졌다면 그제야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회는, 세상은, 하루 전만 해도 아이였던 어른에게 어른이 되기를 강요한다. 하루 전만 해도 전에는 아무리 애원해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하고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을 지운다. 그리고 며칠 후면 아이였던 어른은 깨닫는다. 아직도 그는 아이라는 것을.
어른은 아이가 되고 싶고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은 아이가 가진 보호를 질투하고 아이는 어른이 가진 자유를 갈망한다. 그러나 그들은 곧 알게 된다. 그들이 질투하고 갈망했던 것들은 전부 허상이라는 것을. 어른이 된다는 건 그들의 자유에 따른 책임을 마땅히 짊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어른은 아직도 아이와 같이 모든 것이 두렵기만 한다. 아직 마음은 아이지만 몸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게 어른에게는 무겁기만 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도대체 무엇인가. 어른과 아이는 어디가 다른가. 신체의 나이가 어른과 아이를 어떻게 대변하는가. 어른은 아이가 되고 싶고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리고 곧 그들은 알게 된다. 그들은 아이가 되고 싶은 것도 어른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옛날 옛 적, 한 아이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면 뭔가 다를 줄 알았다. 자유를 원했고 억압을 혐오했다. 책임을 다했고 억압을 당했다. 보호를 받았고 상처를 받았다. 아이는 너무도 연약했고 상처에 취약했다. 사회로부터 보호를 받으면서 또 사회로부터 고통에 시달렸다. 작은 생채기는 점점 더 커져 아이의 마음을 시들게 했다.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아이의 세상과는 달랐다. 더 강퍅했고 황량했다. 순수함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사회가 지우는 책임과 부담에 어깨는 더 굽어져 갔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이 그의 발목에 사슬을 채웠고 보호를 원했지만 이제는 그가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렇게 어른은 옛날 옛 적 상처투성이였던 아이로 되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자유도 복수도 이루지 못한 어른은 아직도 아이의 그늘 아래 숨어있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신체의 나이가 어른을 대변해 주는가. 신체는 다 자랐지만 정신은 아직 아이인 사람은 어른이라 말할 수 있는가. 신체 나이는 아직 아이지만 정신과 지적 능력은 어른을 뛰어넘었다면 아이라 말할 수 있는가. 신체나이와 지적 능력이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가. 사회 통상적으로 봤을 때, 신체나이와 지적 능력이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면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는 게 가능한가. 그렇다면 왜 사회는 어른과 아이를 구분 짓는가. 어떤 필요에 의해 어른과 아이는 구분되어야 하는가. 누가 어른이며 누가 아이인가. 사회적으로 어른이라고 하지만 아이보다도 의젓하지 못하고 성숙하지 못하다면 그들을 과연 어른이라고 볼 수 있는가.
어른에 대한 나의 정의는 단순히 신체나이 지적능력을 떠나서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달려있다. 신체적으로 어른이어도 어른이 아닌 사람이 있고 지적으로 어른이어도 어른이 아닌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어른은 신체나이와 정신적 나이가 아직 어려도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며 감정적으로 성숙하고자 연습하는 사람이다. 항상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지난날의 상처를 보듬고 오늘날의 상처를 키우지 않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남들에게는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이 바로 어른이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 쓰러진 옆의 사람을 일으켜주는 그들이 바로 어른이다. 신체적, 정신적 나이가 어려도, 사회적으로 “아이”라고 정의 내려져도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은 사회적 “어른”은 아닐지 몰라도 인간적 어른이다.
자유도 복수도 이루지 못한 “어른”은 아직도 “아이”의 그늘 아래 숨어있다. 그가 진정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면 자유와 복수 대신 성장과 사랑을 이루고자 노력해야 한다. 어른은 자유에 뒤따르는 책임으로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닌 성장에 뒤따르는 성장통으로 성장한다. 어른은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로 버거워하는 게 아닌 그가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렇게 성장하고 사랑할 때, '어른'은 비로소 아이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어른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책임과 보호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