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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듣던 노래

노래로 인생 표현하기

by 에이브 Ave


초등학교 6학년 이제 막 13살이 되던 나는 웃기지만 트로트에 빠져있었다. 사실 트로트풍 음악에 빠져있었다는 말이 더 맞을 거다. 아이돌 노래도 좋아하고 신나는 음악도 들었지만 사실 내가 더 마음이 갔던 건 슬픈 발라드와 인생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는 노래였다. 지금 생각하면 애어른 같기도 하고 마냥 귀엽기만 하지만 그때도 나름 삶에 대한 애착과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어른들이 말하는 삶의 애환이 녹아져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귀퉁이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갈망했던 것 같다. 학교 방과 후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신나게 해질 때까지 놀다 어둑어둑 해지는 저녁에 마을버스를 타고 강을 건너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들었던 노래가 있다.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집 앞 버스정류장까지 대충 20분 정도 걸렸고 노래 6곡을 듣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나는 버스에 올라타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사색에 잠기곤 했다.


가수 홍진영의 ‘산다는 건’이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노래 메들리가 시작되곤 했는데 가끔은 엑소 노래도 듣고 방탄소년단 노래를 듣기도 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엑소와 방탄소년단으로 물들어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에도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비투비의 ‘괜찮아요’와 ‘집으로 가는 길’을 즐겨 들었다. 가끔은 빌리 조엘의 ‘Honesty’를 듣곤 했는데 사실 가사는 못 알아들었지만 느낌이 좋아서 계속 들었었다. 가수는 모르지만 ‘Lemon Tree’도 추억의 노래 중 하나였다. 이렇게 노래를 계속 듣다 보면 집 앞 정류장에 금방 도착했고 내려서 아파트에 올라갈 때까지도 마냥 노래가 듣고 싶었었다. 내가 좋아했던 가사는 보통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괜찮아요’의 가사 중 [어깨가 무겁나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가 참 쉽진 않죠 누군가 말했죠 내 꿈이 멀게만 느껴질 땐 잠시 쉬다 가세요]가 항상 내 마음을 울렸다. 특히나 ‘집으로 가는 길’ 은 특별히 애정하던 노래였는데 그 이유는 나도 집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사가 항상 나를 위로했다. [따뜻한 그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는 걸 알아요… 집으로 가는 길 매일 걷던 그 길을

헤매다 길을 잃은 아이처럼 방황의 끝에 서 있죠] 13살의 나는 딱히 고민도 힘든 일도 없었는데 왜 이리 이 가사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건 노래를 통해 위안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추억의 노래로 삶을 빗대어 말하자면 흘러가는 노래 같이 삶도 계속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흘러가는 와중에도 내 마음 한편에, 무의식 속에 자리 잡아 불현듯 떠오르게 되는 게 삶이고 노래인 것 같다.


미국에 와서도 노래를 아주 많이 들었다. 이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고달프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6학년때와 달리 매일매일이 고민과 역경의 연속이었고 어렸을 때는 몰랐던 외로움과 갈급함을 많이 느꼈던 시기였다. 그래서 더욱더 노래가 나를 위로하곤 했다. 이맘때쯤 ‘비긴어게인’ 노래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원래도 티브이를 잘 보지 않아서 남들보다 항상 늦게 접하곤 했다. 이미 한 풀 꺾인 시기였지만 ‘비긴어게인’ 노래는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먼저, 가수 윤도현의 ‘흰 수염고래’와 ‘나는 나비’가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우리도 언젠가 흰 수염고래처럼 헤엄쳐 두려움 없이 이 넓은 세상 살아갈 수 있길 그런 사람이길] 이 노래 가사가 어찌나 마음을 위로하는지 즐겨 들었던 노래였다. 그리고 ‘나는 나비’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특히나 더 마음에 와닿았다. 아무도 몰라주는 관심도 없는 길거리에서 윤도현 씨 혼자 기타를 치며 버스킹을 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비가 주룩 내리는 거리에서 하염없이 노래만 부르는 그 모습이 마치 나와 같아서 더 슬펐다. 가수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도 가사가 시적으로 표현되어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때 이 노래 가사의 표현을 빌려 말하곤 했다. 내가 내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준 노래였다. 가수 노라조의 ‘형’이라는 노래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피식 웃음만 나오던 노래가 나중에는 꺼이꺼이 울게 만들었던 노래였다. 굳이 가사는 적지 않겠지만 이 노래로 나는 다시 일어설 용기가 났다.

미움을 받아도 억울해도 속상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가 났다.


이 밖에도 다양한 노래가 나를 위로하였지만 요 근래 다시 듣는 노래는 밴드 혁오의 ‘톰보이’다. 예전에도 몇 번 들었었는데 20대가 되고 나서 들으니 이제야 내 나이대에 맞는 노래를 찾은 느낌이었다. 미래가 불안하지만 기대가 되고 힘들지만 보람차고 어색하지만 재미있는 나이 20대. [난 지금 행복해 그래서 불안해 폭풍 전 바다는 늘 고요하니까]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미운 스물을 넘긴 넌 지루해 보여] 나는 행복해서 불안하고 기쁘니까 슬프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살아가려고 한다. 노래로 그동안의 나의 삶을 표현해 보니 꽤 재미있다.


비행기 타고 집 떠나와
붉은 노을 바라보며


흰 수염고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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