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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질투할 때

관심에서 질투가 아닌 사랑으로

by 에이브 Ave

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재물, 성격, 외모 등 그 사람이 가진 것을 질투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분명 가까운 마음은 부러움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부러워하는 마음 이전에는 호감에서 나왔을 것이고 그 이전에는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본래 어떤 사람을 자신의 마음에 생각에 담을 때 그 사람을 향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되기에 부정적인 감정이던 긍정적인 감정이던 시작은 모두 관심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의 행동이 생각나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생각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관심을 어떻게 발전시키는지에 따라 부정적인 관심과 긍정적인 관심으로 나누어진다. 질투에 대한 감정을 곱씹어보면 분명 부러움까지는 긍정적인 영향이 반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컸지만 어느샌가 부러움의 마음은 질투의 마음으로 변했다.


부러움에서 질투는 어떻게 형성되어가는걸까? 어린 시절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질투는 흔히 말하는 다른 사람을 시기질투하는 마음과는 사뭇 달랐다. 내가 가진 ‘질투’라는 감정은 내가 가장 친하게 생각하는 단짝친구가 나말고 다른 친구랑 노는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과 괘씸한 마음이 합쳐져 형성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친구와의 관계가 내 세상의 전부나 마찬가지였고 곁에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의기양양했으니 이때 내가 가진 ‘질투’라는 감정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앞서 말한 누군가가 가진 재물, 성격, 외모 등을 질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으나 어떤 부분에서는 같은 부분이 있었다. 나는 분명 나의 단짝친구가 가진 재물, 성격, 외모를 질투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친구가 가진 무언가를 질투했었다. 내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는 친화력과 나에게는 없는 여유. 그것들을 한껏 질투했던 것이다.


지금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단짝친구가 나를 배신했다는 감정과 섭섭하고 서운한 감정이 줄곧 ‘질투’라는 감정에 덮어져왔다는걸 알 수 있다. 친구가 한 번 나와 놀지 않았다고 해서 꺼내드는 배신했다는 비약적인 논리와 그에 따른 섭섭함과 서운함이 내가 생각해도 이성적이지 않았기에 ‘질투’라는 말로 대신해왔다. 그리고 그 ‘질투’는 단짝친구가 가진 친화력과 여유를 질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말로 정성껏 포장해왔다. ‘우리의 우정이 깨어져버렸다.’ ‘맹세를 했는데 그걸 깨버렸다.’ 등으로 밀어붙이고 어느새 나의 ‘질투’는 상대방이 깨버린 서로간의 ‘신뢰’로 덮어졌고 그리고 마지막은 ‘불신’까지 다다랐다. 분명히 비약적이기 그지없는 논리와 이성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나의 ‘질투’를 잠재웠고 거창한 말들로 포장해왔다.


한 마디로 질투를 설명하자면 질투는 누군가의 재물, 성격, 외모, 그리고 능력을 탐내다 결국 본인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로 바뀐다. 이 분노는 자기 자신을 향할수도 질투의 대상을 향할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대상이 불분명한 이 상당한 분노는 질투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질투가 부러움에서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 시초는 열등감에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노력으로도 절대 안되는 세상의 이치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모든 사람들은 노력으로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누군가의 재물, 성격, 외모, 능력을 곧이곧대로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할 필요도 없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만의 재물, 성격, 외모, 능력을 일구어낼 수 있다. 이렇게 부러움에서부터 자신감과 발전을 키워내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내지만 부러움에서부터 열등감을 끌어내는 사람들은 대상없는 질투와 분노만을 키워낸다.


그렇기에 질투를 마음에 품는 것은 내가 나의 삶을,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포기한 것과 다를게 없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관심이 질투에서 끝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마음껏 사랑하고 품기에도 부족한데 사랑으로 키워갈 수 있는 새싹을 질투로 키운다면 얼마나 헛된 일인지 모른다. 내가 나의 감정에 솔직할 때, 내가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음을 인정할 때, 내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것, 무언가가 되었든, 그것이 없음을 시인할 때, 나는 비로소 질투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는걸 시인하였기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고 내가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음을 인정하였기에 나도 누군가가 부러움을 느끼는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감정에 솔직하였기에 나도 누군가의 솔직한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질투하는 마음은 나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열등감과 결핍에서 왔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사랑을 꽃 피울 관심이라는 새싹을 잘 보듬어갈 것이다.

안개 낀 마음에서
화창한 마음으로
관심이란 새싹을
사랑이란 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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