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솔직하다고?
우리가 글을 쓰기로 하고 아침에 가끔 통화를 하면서 네가 그랬잖아
“넌 솔직해”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해봤는 나는 솔직한 게 아니라 대책 없이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닐까?
그건 아마도 어릴 적부터 형성된 습관 같은 것 같아.
나는 솔직하다는 것이 두렵고, 내 속에 있는 모습을 글로 쓰고 꺼내야 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했잖아.
그 말을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든 나는 왜 나를 드러내는 것에 공포를 느낄까?
생각이 생각을 불러들이고 그리고 만난 게 누군지 알아? 어릴 적 나야.
책을 읽으면서 내면 아이라는 단어도 들어보고 정신치료를 하려면 먼저 만나야 한다는 그 아이 말이야.
갑자기 6살의 내가 떠오르는 거야.
난 내 최초의 기억이 6살 때야.
할머니 댁에 여동생과 맡겨져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고 했잖아
한 3년 정도? 초등학교 2학년에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이사를 했으니까. 할머니가 구박하고 했냐고? 아니..
평일에는 괜찮았던 거 같아 할머니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따뜻한 사람이었고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긴 하셔도 어딜 가셔도 꼭 우리를 챙겨주셨거든.
문제는 주말이었던 것 같아. 지금도 그렇지만 구미는 3교대를 많이 했잖아. 토요일에 일 마치고 저녁에 엄마가 와. 여동생은 그때 4살이었으니까. 엄마가 더 챙겨줘야 하는 게 맞는데도 나는 그게 샘이 나더라.
그래서 동생보다 말과 표현을 잘하는 내가 엄마 옆에서 붙어서 이것저것 얘길 했어.
누구네 집 할머니가 사탕을 주셨다. 누구는 부모님과 오늘 뭐 먹기로 했다. 등등 소소한 이야기부터 어쩌면 없는 이야기도 지어서 했던 것 같아.
그 순간만큼은 엄마가 나를 봐줬으니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그리고 엄마가 다시 돌아가는 시간이면.
“엄마 안 가면 안 돼?”라며 울고불고하는 동생을 떼어내느라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나도 같이 있어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못했어.
대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바라봤겠지.
그때 그날의 내가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마주 보고 서있더라. 드라마나 책에서 보면 과거의 나와 마주할 때 왜 어린아이와 서로 마주 보고 서있는 딱 그 상황.
그때 알겠더라. 나는 외로운 아이였구나. 어린 나이에는 외롭다는 어려운 단어를 몰라서 선했던 단어가 ‘버림받는다’는 단어였구나. 주말마다 내가 느낀 감정은 엄마에게 버림받는다는 감정이었어.
그리고 '나 버리지 마'를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던 것 같아.
나를 감추고 싶으면서도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서 내 모든 걸 무방비로 드러내는 것 같아.
윤슬아 난 솔직한 게 아니야. 그냥 버려지는 게 두려운 거야.
이젠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런 감정을 아이가 느낀다는 것조차 알게 되더라.
그때 우리 엄마가 26살이었어. 얼마나 힘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