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지 Jan 18. 2023

공시생활 동안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 있었다

   엄마한테서 넷째 이모 칭찬을 자주 듣는다. 넷째 이모는 참 화도 잘 안 내고 착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보살인 것이다.


  하지만 큰 이모와 엄마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엄마는 넷째 이모가 마냥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큰 이모는 넷째 이모가 마냥 착한 게 아니라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잘 참는 거라고 말했다. 넷째 이모한테 직접 묻고 싶었다.


  - 이모는 착한 사람이에요, 아니면 잘 참는 사람이에요?


    이모가 착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떠나 이모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 동생이 넷째 이모와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시험공부를 시작하면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는 일들이 너무나도 괴로웠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앞만 보고 가자. 나만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그게 가장 마음이 편했다.


  부모님도 내가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해달라고 말씀드린 이후로 집안의 대소사에 대해 내 앞에서 일절 언급하시지 않으셨다.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정도만 내가 했을 뿐 집안일도 거의 내게 시키지 않으셨다. 그래서 내가 집안에서 해왔던 1인분의 몫은 모조리 동생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작년 늦여름쯤 국가직 7급 시험의 불합격 통보가 나오고 나도 아빠도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었다. 부모님이 주말부부라 엄마는 나와 아빠의 어두운 기운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있었지만 동생은 아니었다. 그날 나는 밥도 안 먹고 하루종일 방안에만 처박혀 있었다. 아빠는 시험에 떨어진 내가 얼마나 속상할지 알고 계셨는지 내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동생은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 집안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빠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은 언제나 자기 마음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했고 자신이 불만을 터뜨리지 않으면 허울 좋은 평화가 계속될 것이므로 늘 참고 지내는 것을 택했다.


  문제는 사흘 뒤였다. 동생이 나와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눈가와 귓불이 시뻘게지면서 30분간 울음을 꺼이꺼이 토해냈다. 나는 영문도 동생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물었다.


  "갑자기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동생은 처음에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멍만 때렸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신의 심정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도 알아. 아빠 회사에서 힘든 것도 알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쉬고 싶은 것도 알아. 언니도 공부하느라 고생 많았던 것도 알고. 그래서 늘 참았어. 나는 돈 버는 사람도 아니고 언니처럼 열심히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사람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해도 내가 언제나 언니나 아빠가 자기 기분대로 하는 걸 모두 받아줘야 된다는 건 아니잖아. 나도 너무 힘든데….. 내가 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잔심부름도 모두 해야 된다는 거 알고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어…"


  동생은  그렇게 말하다가 다시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남았던 눈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계속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수험생이었기 때문에 족에게 평소보다 더 많이 의지해왔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됐다. 나는 늘 동생이 참고 지내는 줄도 모르고 그녀가 참 속 편하게 산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 편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혼자서 이 모진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밥을 먹고 씻고 도서관에 가는 모든 과정에서 힘듦은 오로지 내 몫이라고만 생각했다.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예민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주변에서 티 내지 않고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의 마음 같은 건 생각하지 못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건 마음의 짐이 될 테니까.

  

  그동안 앞만 보고 가니 몰랐던 것 같다. 무거운 짐을 등에 짊어지고 걸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생각하고 말았지만 뒤에서 내 무거운 가방을 나 몰래 두 손으로 받쳐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보이는 곳에서 도움 되지 않는 말들을 하며 생색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도움 주는 일들을 하면서도 내비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수험생활에는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해야 한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어떤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 조급한 마음들을 버리고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언제나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안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험생인 내가 힘들어할까 봐 자신의 마음을 꾹 꾹 눌러 담으며 내가 지고 가는 짐을 말없이 받쳐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말그릇으로는 차마 다 담지 못할 고마움을 안고 살아가는 중이다.

  

  동생이 늦게나마 내게 진심을 말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내게 도움을 준 만큼 나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동생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는 ‘고마우면 밥이나 사’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던 친구들과 다른 가족분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해야겠다.

이전 17화 공시 망했으니 제 미래도 망할까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