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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지 Jan 18. 2023

공시 망했으니 제 미래도 망할까요?

  2022. 8. 30.


  방 안에 쌓아 둔 수험서를 뒤로 한 채 새로 등록한 컴퓨터 학원 수업은 8월 10일부터 개강이었다. 나는 이틀 전인 8일부터 잠이 오지 않아 하루에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다. 막상 날짜가 닥쳐오니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예습은 했지만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부터 포트폴리오 망치면 어쩌지, 강사님이 튀면 어쩌지 와 같은 막연한 걱정들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자소서의 경력란을 어떻게 채우지?

공무원 시험 2년 넘게 준비해서 경력이 없는데 어쩌지? 공무원 시험 떨어진 것 때문에 내가 능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면접 보면서 말 더듬으면 어쩌지?

여자라서 승진 잘 안 시켜주면 어쩌지?

정규직은 꿈도 못 꾸게 되면 어쩌지?

이상한 사수 만나면 어쩌지?

회사에서 왕따 당하면 어쩌지?


나는 어쩌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취업을 생각하면 가장 두려운 점은 그것이었다. 결국 모든 일을 거쳐오고 나서 ‘아- 그냥 공무원 하는 게 제일 안정적이고 좋았을 텐데. 그냥 붙을 때까지 계속 공부할 걸 그랬어’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꽤 많았다.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에 질려서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고시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아무리 세상에는 공무원을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나와 다르게 재정적 여유도 있고 있는 집안이라 관두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아니면 정부에서 보낸 정부요원이라거나. ‘공무원 연금이 바닥나고 있으니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지 않도록 언론플레이 하세요.’와 같은 지명을 받은 이들이 짜놓은 판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한 불안을 갖고 10일 아침 학원에 도착했다. 강사님은 오리엔테이션 시간 동안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셨다. 수업잘만 따라오면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하셨고 강사님이 가르친 학생들의 작업물들을 보며 나는 그분의 커리큘럼에 신뢰가 생겼다.   


  수업을 들으며 생각했다. 내가 처음부터 잘했으면 여기 있지도 않았을 거라고. 나는 너무 막연한 것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빠른 수업진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다 보니 불안감이 싹 가시고 말았다. 옆 사람이 나보다 잘하든 못하든 그런 것들에 신경 쓰면서 마음 졸일 여유조차 없었다. 이왕 먼 길을 돌아온 거, 잘해보고 싶었다. 나는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을 봐야 했다.


  생각해 보면 걱정한 것과 다르게 개강날은 운이 좋았다. 무엇보다 폭우가 오지 않았고 경의중앙선이 연착되어 조금 늦는 바람에 자리가 남아있는 앞 좌석에 앉을 수밖에 없었지만 오히려 수업에 더 잘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8월 마지막 주에는 격증 시험이 있어서 그날은 학원을 빠져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날이 휴강일로 잡혀 있었다. 하반기 시즌이 아니라 상반기 시즌부터 학원을 다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했지만 1월에 채용이 가장 많이 이뤄질 것이니 여러분들은 시즌을 잘 타고났다고 말해주셔서 다행이었다.


  세상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래서 나쁜 점도 있지만 좋은 점도 있다. 운이 안 좋은 날이 있으면 운이 좋은 날도 있고 내가 건너야 하는 신호등 불빛마다 빨간색이 되는 날도 있지만 막힘없이 갈 수 있는 날도 있다. 운은 그렇게 돌고 돈다. 내 예상과 다르게 불현듯 운이 따라주는 날도 있다.


  너무 앞서 걱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때가 되면 그때에 맞는 돌파구가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현재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훨씬 길 텐데 미래의 걱정들까지 안고 오면 현재가 야근하느라 지칠지도 모른다. 그러니 걱정은 미리 사서 하지 않고 싶다.


  걱정을 파는 상점에 구태여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걱정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일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 많아서다. 내가 굳이 걱정을 사지 않아도 걱정은 제 발로 찾아올 테니 나는 걱정을 살 돈으로 맛있는 거나 먹으면서  '지금, 여기'의 삶을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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