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겨울부터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시험이 끝나고 완전히 방전되어버린 내게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들은 대체 뭘 하며 지내냐고 물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LP를 열심히 듣고 읽고 쓰면서 활자에 파묻혀 지낸다고 말했다. 그들 중 하나는 내게 네가 무슨 스콧피츠제럴드라도 되느냐고 물었다.
집에는 엄마가 젊은 시절 한 때 모았던 LP판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재즈의 대가인 쳇 베이커부터 록의 대가인 비틀스 판까지 있다. 나는 그중에서도 비틀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앨범재킷으로 유명한 판을 좋아한다. 그다음으로는 Obladi-Oblada가 있는 화이트 앨범을 좋아한다.
엄마가 사놓은 LP판의 음악만 듣다 보니 이제는 내가 직접 산 LP의 음악을 듣고 싶었다. 영국의 유명한 록밴드인 라디오 헤드나 오아시스의 음악을 듣고 싶어 LP가격을 찾아보고는 지갑을 열었다. 지갑은 꿈도 꾸지 말라며 콧방귀를 뀌어댔다. 나는 판을 사는 대신 1/6의 비용을 지불하고 스트리밍 사이트를 다시 이용하기로 했다.
언제나 친구들이 많이 듣는 음악을 들었고 ‘인기’ 있다고 말하는 음악들을 찾아들었다. 책도 사람들이 말하는 유명한 책들만 읽었고 늘 리뷰를 읽고 나서 읽을지 말지 결정했다. 나는 내 취향이 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심도 있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누가 내게 뭘 좋아하냐고 물으면 늘 남들이 다 좋아하고 알만한 것들을 내세웠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시몽은 주인공 폴에게 브람스 음악을 좋아하는지 묻는다. 폴은 그 질문에 대해 생각에 잠긴다.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폴은 자신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는 대신 바람기 충만한 불충성스러운 애인에게 모든 신경이 쏠려있었다. 아마 폴과 내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면 서로 ‘누구세요?’라고 물은 뒤 ‘어 , 저는…’하며 자신을 설명해 줄 적당한 형용사를 찾아 헤매다 헤어질 게 뻔하다. 우린 아마도 각자의 치부를 열심히 감추느라 영양가 없는 비게덩어리 같은 대화만 잔뜩 하고 나올 것이다.
기업에 제출할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는 결코 내가 브람스 음악을 좋아하는지 비틀스를 좋아하는지. 혹은 라디오헤드를 좋아하는지에 대해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그곳은 내가 얼마나 질 좋은 노동력을 제공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좋은 부품인지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
내가 회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자잘한 부속품일 뿐이고 유년시절과 청춘을 다 바쳐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에 대해서만 증명하고자 살아가다 보니 너무 빨리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인간으로서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어도 좋고 평소 잊고 지내던 음악을 찾아들어도 좋다.
문화생활은 ‘교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난 교양이 뭔지 잘 모른다. 문화생활을 왜 하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보겠다.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겠냐고. 꾸준히 나의 쓸모를 이야기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실 우리는 쓸모와 상관없이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들임을 외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공시에 떨어지고 쉬는 동안 문화생활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내가 뭘 좋아하는지 눈 감고도 윤곽선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셜록홈스보다는 에르퀼 푸아로를 좋아하고 오아시스만큼이나 블러와 스웨이드라는 록밴드도 좋아한다. 얼마 전에는 헤비메탈과 재즈가 공존하는 기괴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최근 skidrow라는 헤비메탈 밴드의 음악에 빠져있다.
어쩌면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자신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시간은 불안함으로 점철된 백수시절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더없이 초조하면서도 한가로운 때는 지금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때로는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자주 멍을 때리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가사들을 음미하며 보낼 것이다. 내가 제일 잘 쉰 백수 대회에서 1등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