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에 피어나는 교실 스캔들
어느 날 영어 선생님께 이런 SNS 메시지를 받았다.
"김룰루 선생님, 그거 아세요? 룰루 선생님이랑 S선생님이랑 썸 타는 사이라고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났어요!"
이게 무슨 말인지. S선생님은 내 바로 앞 시간의 수업을 하시는 선생님이라, 오가며 인사를 나누는 걸 제외하면 제대로 얘기해 본 적도 없는 분이다. 왜 이런 소문이 난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달 전에 S 선생님 칭찬을 한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대단한 건 아니었고, '체구는 작으신데, 수업할 때 나오는 열정이 엄청나다. 기운을 많이 사용해서 강의를 하시는데 그 모습이 대단하다' 이런 칭찬이었을 거다. 이 정도로 선생님들의 러브라인을 만들다니 우리 학생들도 참 남 일에 관심이 많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학창 시절도 그랬다. 괜히 선생님의 사생활이 궁금했다. 선생님도 사실 학교 밖에서는 평범한 아저씨, 아줌마일 뿐. 하지만 교단 위에 서있으면 괜히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나보다 훨씬 오래 산 우리 만학도들도 이런 호기심이 있다고 생각하니 황당하면서도 귀엽기까지 하다. 아니, 좀 발칙한 거 아닌가? 학생들끼리 키득거리면서 나와 S선생님이 인사하는 그 3초의 순간을 유심히 지켜봤을 테지. 그리고 자기들끼리 눈빛으로 말했겠지. '봤지? 둘이 지금 뭐가 있는 거 같지? 내 말이 맞다니깐!!'. 아닌 척하면서!
해외여행을 가야 해서 2주간 야학을 쉰 적이 있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는데, 나 혼자 놀러 간다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수업을 뺀다'라고 말씀을 드렸었다. 나중에 알게 됐건대, 이 때도 또 나에 대한 추측 잔치가 벌어졌다. '아니 한 번을 안빠지던 룰루 선생님이 2주씩이나?', '큰일이 있으신 건 아니겠지?' 라며 저마다 걱정과 의아함을 나누었고, 2주 뒤 너무 멀쩡한 상태로 돌아온 내 모습을 보고 그녀들은 답을 찾았다. '아! 신혼여행이었구나!'. 애석하게도 싱글 여행이었답니다.
다른 선생님들의 스캔들에 비하면 나에 대한 소문은 양반이다. '교장 선생님과 교무 선생님은 같이 애 낳고 사는 부부'라는 루머가 공공연한 사실처럼 전교생에게 퍼진 적도 있다. 가을 소풍 때 둘이서 아기 유모차를 함께 끌고 오는 모습을 모두가 본 적이 있다. 선생님들은 '둘이 방향이 같으니 차 하나로 같이 왔구나'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확신의 부부'라고 다들 생각했나 보다. 그때 그 모습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최근 리안씨가 더 바빠졌다. 가뜩이나 직장일, 집안일에 검정고시 공부까지 하던 그녀에게 새로운 사회적 역할이 주어졌다. 바로 할. 머. 니. 리안씨의 둘째 아들에게 아이가 생겨서다. 리안씨는 집안의 웃어른에 속할 것이고, 대소사에 그녀의 결정이 안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리안씨는 첫째 아들에게 아직 자식이 없어서 행여나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지지 않도록 본인이 중간에서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며 마음가짐을 다잡는다.
그러면서 리안씨는 나에게 형제관계를 물어본다. 1남1녀 중 장남이라고 하니, '어휴 집안에 큰 일 생겼을 때, 그 일을 혼자 다 해내셔야겠네. 힘드시겠다 힘드시겠어..'라고 안쓰러워하신다. 나조차도 걱정해 본 적 없는 미래를 리안씨가 먼저 걱정해 주신다. 나보다 30년 먼저 사셨으니, 그녀 눈에는 나의 앞길이 어느 정도 보이나 보다. 도대체 몇 수 앞을 바라보시는 건가요. '그래도 나는 여자라도 집안 경조사 다 챙겼어요. 가끔은 남편 몰래 나서기도 하고' 하고 찡긋하는 그녀. 아무렴, 그녀의 심성이라면 살뜰히 가족을 챙겼을 것 같다.
나이가 모든 걸 해결해 주길 기대했다. 나도 시간이 지나면 지혜가 쌓이고, 한층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철없다. 10년 뒤에도 그럴 것 같아서, 이번생은 영 배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지 체면을 생각해서,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기력이 달려서 예전만큼 엉뚱한 짓을 못할 뿐이다. 사회에서는 멀쩡한 척하다가도,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허접한 소리만 해댄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학생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 각자의 집에서는 최고참인 분들이 여기서는 10대 소녀들이 할법한 사랑의 짝짓기 놀이를 한다. 나는 그 모습이 터무니 없어서 그녀들에게 핀잔을 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흐뭇하다. 여기서 만큼은 철들지 않아도 된다는 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