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야마, 일본
인구 50만의 마쓰야마는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도시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라는 도고온천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봇짱'(도련님)의 배경으로도 사용된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곳곳에 그 문학적 흔적이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운행하는 봇짱열차, 소설 속 인물들이 매 정각에 등장하는 시계탑, 작품의 주인공이 즐겨 사 먹었다고 서술되는 '봇짱당고' 등 마쓰야마는 신구 예술매체의 배경으로 등장한 도시다.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자원들을 가지고 있는 이 도시가 한국 직항 비행 편을 취항하는 등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덕에, 근래 한국인들의 방문이 부쩍 많아졌다.
여행을 다녀와서 '봇짱'을 읽어보면 소세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 그는 마쓰야마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재임했었다. 소설 속 미숙한 신입 교사인 주인공이 작은 도시에 취업해서 갑갑함을 느끼는 장면, 그 와중에 온천이 너무 훌륭하다며 저녁 당직 때 온천을 하러 가버린다거나 당고를 즐겨 먹는 장면 등 실제 작가가 마쓰야마에서 생활했던 장면을 이 소설을 통해 그려볼 수 있다.
일본의 국민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말하니, 그와 관련된 일화가 생각난다. 나쓰메 소세키가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I love you'라는 영어 문장을 한 학생이 ' 「私はあなたを愛しています」(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번역했다. 소세키 작가는 이 학생을 나무라며 다시 번역을 했다.
"일본인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 일본식으로는 『月が綺麗ですね』(달이 참 아름답네요)라고 하는 거야."
이 일화를 듣자마자 나 같은 경상도인들은 '뭔 X소리야'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나올 것이다. '널 좋아해'는 양반이고 다짜고짜 '내 아들 낳아도'까지 가버리는 이 동네 사람들 성격에, 두리뭉실한 은유법은 속이 터질 수밖에. 그러고 보니 일본 사람들은 거절의 표현으로 '고민해 볼게요'라고 말한다는 걸 들었다. 거절을 직접적으로 하면 상대방의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서 완곡하게 돌려 말한다는 것이다. 그럼 진짜 고민을 해보겠다는 건지, 거절의 의미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어쨌거나 이런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니 I love you를 그렇게 풀어내는 게 무리가 아니긴 하겠다.
그래도 그렇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분명하게 호감 표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헷갈리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고백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상대방이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 청자를 고려하지 않고 내 멋대로 지르는 말도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마쓰야마는 동생을 위한 여행이었다. 당시 여러모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마음이 지쳐있는 동생을 위해 기분전환을 시켜주려고 기획한 가족여행이었다. 마쓰야마는 가족여행으로 딱이었다. 소도시라 관광할 자원이 뻔하다. 보통은 '갈 곳이 뻔하다'는 부정적인 의미지만, 가족과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험을 하면 안 된다. 뻔하다는 건 분명한 답이 있다는 말이다. 마쓰야마는 동선이 복잡하지 않은 데다가, 동네에 온천이 있으니 피로를 풀기에도 딱이다. 무료 셔틀버스가 공항에서 숙소 앞까지 데려다 주니 사전에 준비할 것도 없다.
대부분의 형제들이 그렇듯 우리는 서로 다정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문율이다. 오히려 서로를 헐뜯을 부분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의 애정표현은 하찮은 것으로 대신한다. 좋아하는 과일을 먹지 않고 남겨둔다든지. 방에 얘가 있는지 문을 열어본다든지. 나는 솔로를 할 시간이 되면 알려주는 정도? 아, 가끔 필요해 보이는 물건을 턱 사줄 때도 있는데 그것은 기분이 매우 좋을 때로 한정된다. 이 정도만 해도 서로는 알 수 있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긴 시간 동안 쌓인 신뢰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번역법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면 무슨 말을 해도 알 수 있는 것.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사이라면 I love you가 필요하겠지만, 이미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단계라면 주어를 달로 만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닐까. 굳이 달달한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관계.
동생이 먼 도시에 취직을 하면서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있을 때 잘할 것이지, 눈에서 멀어지니 이제야 철든 척을 한다. 비가 많이 오면 연락이 오고,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산에서 불이 나도 전화가 온다. 그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핀잔을 줘도 기분 나빠하지 않는 사이. 사랑하는 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시기가 있나 보다. 그러니까 지금 함께 있는 이들과의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도록 하자.
(이 글에 등장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일화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실제 그와 관련된 기록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재밌는 루머 정도로 여기는 게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