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는 정신과 진료를 의무화해야 한다. 주위에서 조용히 하나둘씩 마음이 아파 앓고 있었다. 이석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불안증이었던 동생, 잠을 청하지 못해 수면제를 먹던 친구.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서른 살 전후로 마음의 병을 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서른 살은 한창 힘들 나이다. 사회에서 한창 실수를 벌이며 욕을 먹을 먹고 있을 시기다. 아직 사회인이 되지 못한 서른이라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걱정이 될 것이다.
나의 서른도 그랬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을지 모르나, 마음은 곯아가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일을 맡는 바람에 내적 갈등이 있었다. 나는 이 일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은데, 나의 상사는 자꾸 나에게 뭐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다그친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는 부서 막내 김룰루 씨, 선배들에게 혼나는 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평일에는 금요일만 기다리는데, 막상 주말이 돼도 편하지가 않았다. 토요일 오후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또 회사에 가야 하니까.
이런 내적고민을 하던 스물아홉 살, 입사 2년 차 사원이 혼자 파리를 갔다. 파리 한인민박에 들어가자마자 눈이 똘망똘망한 젊은 친구와 마주쳤다. 내가 오기 30분 전 체크인을 했던 그 친구는 스물 네살 이었다. 다섯 살은 사이좋게 지내기 딱 좋은 나이차이다. 나이 차이가 적으면 맞먹으려 들고, 너무 많이 차이가 나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위아래는 있되, 서로 말이 잘 통하는 정도가 다섯 살이다. 게다가 둘 다 오늘 도착해서 5박 6일 동안 파리에 있을 예정, 그리고 일행 없이 혼자 왔다.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파리에 있는 동안 우리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가고 싶은 장소가 둘 다 같으면 시간을 맞춰서 함께 출발했다.
여행 일정만 비슷했지, 나머지는 판이하게 다른 두 사람이었다. 그는 군대를 전역한 지 갓 4개월 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청년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에너지도 넘쳤다. 그에 반해 나는 한껏 주눅 든 사회 초년생이었다. 여행지에서조차 하고 싶은 게 잔뜩 있는 그를 보면서, 마냥 부러웠다. 어쩌면 저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지. 실제로 그의 생활도 그랬다. 성인이 된 후로는 여자친구가 없었던 기간이 석 달은 넘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여자친구가 없이 3년쯤 됐다고 하니, 그의 동공에 지진이 났다. 문화생활마저 '여기 있는 작품들을 모조리 내 것으로 만들 테다!'라는 결의가 느껴졌다. 오르셰 미술관을 가자더니, 정말 한나절을 꼬박 작품 감상에 몰두했다. 계속 그림을 보다 보니 그게 그거같이 느껴지는 나에게 그는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이 작품을 그렸을지, 여기를 이렇게 칠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보면 하루도 모자라요'라고 답한다. 실제 그의 삶도 의욕, 야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학교에서는 어떤 과목을 듣고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 대외활동을 할 것이며, 가고 싶은 회사 인턴도 이미 지원한 상태였다. 한창 사회에 적응 중인 세계관 최약체인 나에게는 마냥 부러운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다섯 살이나 어린 그에 비해 내가 초라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베르사유 궁전에 가는 길이었나. 숙소가 외곽이었던 우리는 긴 시간 지하철을 타야 했고,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별 사소한 얘기까지 꺼내야만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나는 지금 내 직장에서의 내 처지와 앞으로의 계획을 털어놓았다. 여기서 안주하면 계속 이렇게 살까 봐 두렵고, 회사 밖에서 내 개인기를 키워서 더 경쟁력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신감 있게 본인이 원하는 바를 이뤄가는 당신이 부럽다고 추켜 세워주었다. 이 얘기를 한 그날 저녁, 그는 나에게 무심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형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뭘?"
"아까 낮에 형이 해보고 싶다는 일, 한국에 돌아가면 시도해 보라고."
대화자체는 별 거 아니다. 친구들끼리 흔하게 할 수 있는 덕담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꿈을 누군가에게 말한 게 처음이었다. 가장 원하는 것일수록 마음속에만 품게 된다. 내가 많이 바란다는 건, 그만큼 이루기 힘들다는 뜻이라서다. 쉽게 해낼 수 있는 건 굳이 바랄 필요도 없지 않은가. 내가 감히 이런 꿈을 꾼다고 누군가에게 밝히기가 무섭다. 비웃음을 살지도 모르니깐. 이렇게 무거운 그 말을 처음 본 사람에게 털어놓다니. 아니, 처음 본 사람이라서 가능했다.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 나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서, 내 고백을 듣고 비웃을 수 없는 사람이라서.
가끔 상상한다. 지금 그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면 어떨까. 혹여나 부끄럽지 않을까. '너의 응원에 힘입어 노력을 해봤으나, 그 말을 이루지 못하고 그 근처에서 맴돌다 말았다'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할까. 아니면 '시간이 지나니깐 그것도 다 시시해 보이더라고'라고 쿨찐 연기를 해야 할까.
이루지 못한 꿈이라도 한때 내가 원했던 바를 그 친구 덕분에 명료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없었으면 퇴근 후 몇 시간 동안 개인공부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도전을 하지 않으니 실패조차 할 일이 없었을 거다. 그러면 지금보다 미련이 더 남았을 것이다. 가끔은 가장 먼 상대에게 진짜 내가 나타난다. 사회 집단 속에서 쉬이 꺼내지 못했던 내 본연의 모습을 잠시 내비칠 수 있다. 그래서 낯선 이와의 여행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