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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누구에게 바가지를 씌웠나

카이로, 이집트

by 김룰루

카이로에서 가장 큰 시장인 칼 앨 칼릴리에 갔다. 기념품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굳이 재래시장까지 온 이유는 이곳에 위치한 카페를 가기 위해서다. 아프리카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나기브 마후즈가 생전에 즐겨가던 카페가 그곳에 있다. 이 작가의 소설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서 읽어볼 수도 없으나, 혹시 모르지 않나. 유명한 사람의 정기를 받을지도? 괜히 여기서 영감을 하나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자책 하나를 챙겨서 카페로 향하는 택시를 탄다.


고풍스러운 실내 인테리어가 잘 보이는 소파 자리에 앉았다. 점원이 무엇을 마실 거냐고 묻는다. 카페에 처음 온 나는 이 카페가 어떤 것을 파는지 알 리가 없다. 메뉴판을 달라고 했다. 점원은 메뉴판이 없다고 했고, 대신 자신들이 판매 중인 것들을 빠르게 읊었다. 대강 알아들은 것 중에 무난한 것들을 주문했다. 터키식 커피 1잔과 카페인이 없는 시원한 음료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가격을 물었다. 점원은 가격을 모른다고 하며, 사장(으로 추정되는 자)을 불렀다. 사장은 눈알을 한번 굴리더니 6000원이라고 했다.


이집트를 다닐 때 가장 생소했던 건 '모든 게 시가'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정가라는 게 있는 반면, 이집트는 많은 게 시가로 이루어진다. 가령 물건을 살 때도 가격표가 붙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거 얼마야?'라고 물어보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흥정을 해야 한다. 그러니 똑같은 물건의 가격도 구입자에 따라 몇 배 차이가 나는 일도 생긴다. 카페에 메뉴판이 없는 이유도 아마 그런 이유일 거다. 사장 마음대로 가격을 매기기 위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을 바가지라고 인식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유동적인 가격 책정도 하나의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 물건을 싸게 구입하면 구매자가 잘한 것이고, 물건을 비싸게 팔면 판매자가 잘한 것이다.


정가에 익숙한 나 같은 한국인은 이런 이집트가 정말이지 피곤하다.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머리를 굴려야 하다니. 눈퉁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카페 손님들은 시장 상인들의 타깃이 된다. 열 살쯤 돼 보이는 어린아이가 불쌍한 표정으로 나에게 온다. 조악한 팔찌를 잔뜩 들고 말을 건다.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거절할 수밖에 없다. 거절도 한두 번이지, 이런 장사꾼들이 반복적으로 오면 이제 매너 있게 거절하는 것도 지치기 시작한다. 장사꾼도 모자라 이제는 소리꾼들이 오기 시작한다. 3인조 버스킹 밴드가 카페에 와서 어슬렁거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재빨리 그 눈빛을 외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내 옆에 와서 한바탕 공연을 펼칠 것이다. 라이브 밴드의 실연을 1열에서 즐긴 나는 응당 그에 상응하는 요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돈을 지켜야 하는 나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공연을 거절한다. 나와의 비즈니스가 결렬된 밴드. 그들은 가장 팁을 많이 줄 것 같은 사람 앞에 앉아서 즉석 공연을 시작한다. 호구로 당첨된 손님은 선택해야 한다. 이 공연을 흥겹게 즐길 것인지, 무시할 것인지. 즐기면 팁을 줘야 한다. 이것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박시 시' 문화다. 호의를 받으면 사례를 하는 것이 그들의 예의다. 돈을 주기 싫으면 그들을 공기처럼 무시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이집트 대박물관에 갔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폐관시각인 6시에 박물관 앞에서 우버를 잡으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우버 앱에서 제안한 택시요금은 4000원 정도였으나, 잡히는 기사들 대부분이 별도의 팁을 요구했다. 20분가량 우버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박물관 소속으로 보이는 택시 기사들이 도움을 주려고 했다. 요금을 물어보니 무려 2만 원! 아니 아무리 개인택시 기사가 아니어도 그렇지, 눈퉁이를 쓴 우버보다도 비싼 금액이었다. 발을 동동거리는 내가 딱했는지 그들은 다른 기사를 소개해줬다. 그 사설 기사분은 9천 원을 제안했다. 우버는 4천 원인데! 온통 내 돈을 탐내는 사람들로 에워싸인 기분이 들었다.


구글 경로를 찾아보니, 숙소까지는 30분만 걸어가면 되는 거리였다. 9천 원짜리 택시를 뒤로하고 호기롭게 걷기 시작한다. 평소에도 걷는 걸 좋아하는 터라 이 정도는 별 것 아니다. 그러나 숙소까지 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늘 없는 뙤약볕, 제대로 깔려있지 않은 인도, 바로 옆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 길에 널브러진 쓰레기들, 걸어가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현지인들, 나를 향해 쏟아지는 '니하오' 멘트들까지. 숙소까지 가는 동안 단 1초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동네 산책과 이건 차원이 달랐다. 마치 운동과 육체노동이 엄연히 구분되는 것 마냥.




걷느라 지쳐버린 내 몸과 마음의 가격은 9000원이었다. 숙소에 가니 의문이 들었다.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고 걷기 시작했는데, 사실은 내가 스스로 바가지를 뒤집어쓴 게 아닐까. 그냥 9000원에 편히 숙소로 가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엘 피샤위 카페도 마찬가지다. 비록 내 돈을 노렸던 소리꾼들일지라도, 약간의 팁을 감수하고 그 공연을 재밌게 즐기면 어땠을까. 나에게는 큰돈이 아니며, 그쪽이 피차 좋았을 것 같은데. 지갑을 열지 않는 게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둘 다 지는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피라미드에서 나만 비싸게 값을 지불할까 봐 낙타를 타지 않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쓸데없는 내 승부욕 때문에 좋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


당장 손해보지 않는 쪽이 무조건 좋을까. 우리는 주위에서도 이런 순간들을 종종 겪는다. 양보하기 싫어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결국 주위 평판이 좋지 않아 진다든지, 몇 푼 아끼려고 작은 병을 참다가 결국 병을 키운다든지. 이건 정답이 없는 것이라 무엇이 올바른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겠다. 그래도 다시 이집트에 가게 된다면, 적어도 '내가 기분 좋게 눈탱이를 맞아줄게'라는 조금의 관용을 갖는 게 즐거운 여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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