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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Nov 15. 2022

여행에 계산을 멈추자

이과수, 아르헨티나

 여행에 점수를 매길 필요가 있을까? 세상에 평가를 받을 것들이 무수히 많은데.


'이 도시보다는, 차라리 저기 가는 게 낫지 않아?'

'그 도시에 갔으면 그 건물은 꼭 가봐야 해. 그 건물을 안 가면 그 도시를 다녀온 게 아니지'

'비행기 값에 그 돈을 태웠다고? 볼 것도 없는 곳인데, 돈 아깝다'


 남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내 얘기다. 내 머리에 있는 계산기는 여행 중에도 계산을 한다. 그놈의 가성비와 노성비(노력 대비 성능). 이 계산기는 여행을 효율적으로 만들 때도 있지만, 온전히 여행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과수가 그랬다. 아르헨티나에 도착할 때 까지도 이과수는 내 계획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폭포가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에서 만난 모든 한국인들은 이과수에 다녀오기를 권했다.


"이과수는 다른 폭포들 이과는 규모 자체가 달라요. 나이아가라 폭포는 비교도 못하죠. 이과수는 세상에 오직 하나!"

"이번이 아니면 이과수에 올 수 있는 날이 있을까요?"


 맞는 말이다. 아르헨티나까지 올 수 있는 체력과 시간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른다. 비용을 더 사용하라도, 다른 일정들을 줄여서라도 이과수에 방문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 내 머릿속 계산기는 급하게 비용 대비 만족도를 계산했고, 내 일정에 이과수를 추가하라고 답을 내놨다. 그래서 이과수 출발 하루 전에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당일치기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과수를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하루 전에 구입했으니 당연히 비용은 상당히 비쌌다. 사실 티켓도 없었는데, 민박집 사장님이 여행사에 부탁을 해서 어렵게 티켓을 구해주셨다. 부에노 까사 사장님 감사합니다 :)


 이과수는 두 군데의 공원에서 관람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경의 공원과 브라질 국경의 공원이 있는데, 둘 중 한 곳만 볼 거면 당일치기도 충분하다. 나는 1시부터 6시까지 다섯 시간 동안 부지런히 아르헨티나 쪽 공원을 둘러보는 게 목표다. 무엇보다 '악마의 목구멍' 전망대에 가서 세계에서 가장 큰 폭포를 감상하는 것이 목표다. 악마의 목구멍은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자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1분만 보면 근심 걱정이 잊히고, 30분을 보면 영혼을 빼앗긴다고 해서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린다. 거대한 폭포가 주는 자연의 장엄함을 내 몸소 느끼리라! 악마의 목구멍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가 있는 보트체험은 시간상 포기한다. 시간이 남는다면 트레일 코스들을 걸어볼 계획이다.


 제기랄. 내 계획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이과수에 대한 지식과 준비가 너무 부족했다. 이과수 공원에 들어가서 알았다. 지금 이과수 폭포의 가장 절경 구간인 '악마의 목구멍'이 폐쇄 중이라는 것을. 이 당시에 이과수 폭포에 물이 너무 많이 차있었다. 그래서 안전 문제로 일부 구간은 출입을 못하는 상태였다. 나는 폐쇄 중인 것도 모르고 악마의 목구멍을 보러 간 것이다. 매우 실망스럽고 대체 이 멀리까지 왜 왔는지 허무했다. 할 수 없이 몇 가지 트레 코스들을 걷는다. 트레일 코스들을 3시간 정도 둘러보고 나니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남은 시간 동안 보트체험을 알아봤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서 신청할 수 없었다. 처음에 이과수에 오자마자 보트체험부터 신청했으면 보트체험과 트레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나의 준비 부족으로 이과수 공원의 양대산맥인 악마의 목구멍과 보트체험을 모두 하지 못했다.


 이과수에 있는 동안 마음이 상당히 우울했다. 본전 생각이 나서다. 이과수에 오기 위해 사용한 내 돈과 시간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밑지는 여행이었다. 그 시간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고급 식당을 가거나, 여행 기념품을 샀으면 어땠을까. 사전에 정보를 찾아봤다면 최소한 보트체험은 할 수 있었을 텐데. 머릿속 계산기가 내 이과수 여행의 점수를 0점으로 평가다.


 사실 이런 계산은 내 여행에 하등 도움이 될 게 없다. 기분만 나빠질 뿐이다. 계산해본다고 해서 내 시간이 돌아오나? 이미 이과수에 왔다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즐기는 게 났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에는 미련을 버려야 한다. 계산은 시간과 비용을 쓰기 전에만 해야 한다.


트레일 코스에서 바라본 폭포 풍경


 두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과수는 충분히 멋졌다. 악마의 목구멍은 아니더라도, 어퍼 트레일에서 보는 폭포도 충분히 장엄했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이다. 그런데 이 광경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에. 어리석다.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말 것. 여행에 왔다면 이 순간을 순수하게 즐길 것. 머리는 알지만, 마음은 그게 어렵다. 어떻게 하면 미련과 아쉬움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을까. 성적표가 없는 여행에서까지 이렇게 계산기를 두들기는데, 내 삶에서는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을까. 이걸 고칠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여행에서 계산을 멈추는 방법? 내가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게 있다면, 내가 인지를 하고 있다는 것.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게 합리적이지 않은 감정이라는 것, 삶에 이득이 없다고 인지는 한다는 것. 마치 간호사님이 주사 놓을 때 '따끔합니다~'하고 알려주는 느낌이다. 아. 원래 따끔한 거구나. 하고 알면 그래도 좀 낫잖아? 감정은 안되지만 머리로라도 인지하고 있으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다음에 이과수에 올 기회가 있다면 그때는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이제는 경력직이니깐. 부디 이과수에 다시 올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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