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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an 24. 2023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를 배워보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의 본고장인 아르헨티나에 놀러 왔으니 당연히 탱고는 배워봐야지. 이곳까지 왔는데 탱고를 안 추고 가면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다. 나는 종종 방송댄스를 배우고 있어서, 아예 춤을 추지 않는 사람보다는 쉽게 배울 거 같기도 했다. 혹시 아는가. 잠깐 놀러 온 동양인이 탱고에 재능을 보이고 강습생들이 깜짝 놀라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후훗 이게 케이팝이다.'라고 내가 으쓱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하루 체험해 보고 적성에 잘 맞으면 매일밤 밀롱가에 나갈지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탱고를 배울 수 있는 강습소가 여럿 있다. 조금만 찾아보면 관광객들도 탱고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다. 나는 'Escuela Mundial de TANGO'라는 강습소를 선택했다. 내가 고른 이 학원은 우리나라의 명동쯤 되는 '플로리다 거리'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가 꽤 크고 역사도 오래된 곳이라 여행 커뮤니티에서 인지도를 가진 곳이다.


 쭈뼛거리며 학원 데스크에 수업이 있는지 물어본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직원은 시간표를 나에게 들이민다. 'clase facil, facil por favor' (쉬운! 수업 부탁드려요.) 했더니 'Tango 1' 클래스를 추천했다. 마침 Tango1 수업이 갓 시작된 시각이었다. 그 직원은 나를 교실에 밀어 넣었고, 나는 엉거주춤하게 수업 중간에 들어가게 됐다. 수업 당 가격은 1100페소(한화 약 11000원).


 이 시간대에 강습생은 나를 포함해서 세명이었다. 중년의 여성분과 순한 인상의 남자분이 선생님에게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오면서 살짝 당황하는 눈치다. 일단 난 스페인어를 못하다 보니 선생님은 같은 내용을 영어로 한 번, 스페인어로 한 번 설명하셨다. 이 수업에서 탱고의 아주 기초적인 원리와 걷는 법을 배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움직일 땐 무릎을 사용해서 부드럽게 이동해야 한다. 걸음이 덜컹거리면 안 된다. 둘째, 이동할 땐 발이 아니라 상체부터 이동해야 한다. 탱고는 두 사람이 즉흥적으로 추는 춤이다. 보통 남자가 리드를 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여자와 맞대고 있는 상체를 통해 전달한다. 다리가 움직이는 건 그다음이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맞닿은 상체가 핸들이고, 다리가 바퀴쯤 되겠다.


 기초동작을 배운 Tango1에 이어 Tango2 수업이 시작됐다. Tango1에는 학생이 세명뿐이었는데, Tango2 수업에는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온다. 복장도 제대로 갖춘 사람들도 여럿 있다. 와 이 수업은 너무 본격적인데? 조심스레 선생님께 물어본다.


'es dificil?'(이 수업 어려워요?)

'nunca!'(never!)


 선생님은 웃으면서 절대 아니라고 답하셨고, 주위 수강생들도 나를 귀엽게 쳐다본다. 한번 속아줘 본다. 다음 수업까지 연달아 들어보기로 다.


  Tango2는 실습위주다. 열다섯 명 남짓의 학생들이 들어왔고, 남녀가 짝지어 음악에 맞춰 탱고를 추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놀라울 만큼 나는 탱고를 못 췄다. 예상보다도 너무 못하는 나 자신에게 당황했다. 이건 내가 그린 그림과 전혀 다르다고!



 동작이 어려워서 탱고가 힘든 게 아니었다. 처음 만난 파트너와 호흡을 맞추는 게 너무 어려웠다. 밀착한 상체로 진행방향을 파트너에게 알려줘야 한다. 앞으로 갈 건지, 옆으로 갈 건지, 턴을 할 건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다.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내 스텝이 불안하니 파트너의 스텝도 같이 꼬였다. 파트너의 발을 밟지 않으려고 엉거주춤 걷다 보니, 축이 불안정했다. 오죽하면 파트너에게 '내 발을 밟아도 좋으니 일직선으로 걸어보세요.'라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게다가 수시로 파트너를 바꿔댄다. 이제 조금 익숙해질 만하면 어김없이 파트너가 바뀌고, 나는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탱고는 몸으로 하는 대화라고 느꼈다. 맞댄 몸으로 나의 뜻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는 뭐가 됐든 어렵다. 몸으로 하는 대화도, 말로 하는 대화도. 평소에도 해야 할 말을 못 해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굳이 해서 후회할 때가 많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이 수업에서 유독 한 커플은 끝까지 파트너를 바꾸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그 커플은 찐득한 눈빛으로 서로 뽀뽀했다. 분명히 둘이 가볍게 뽀뽀만 했는데, 이미 그들의 눈빛은 그 이상 어딘가에 이미 가있었다. 이 커플을 보니, 탱고의 매력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탱고를 어려워했던 이유가 사람들이 탱고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가 보다. 어려운 동작을 수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파트너와 교감하는 몸의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 탱고를 추는 것이라 느꼈다.

 말로 하는 대화, 몸으로 대화를 하는 탱고. 둘 다 어려움이자 즐거움이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상처를 입을 때도, 상처를 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동떨어져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같이 어울릴 누군가를 찾아 나선다. 탱고도 마찬가지 아닐까. 파트너와 호흡하는 것이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춤을 맞춰나가는 교감을 즐기는 것이다.


 생애 첫 탱고 체험. 처음 만난 사람과 어떻게 대화할 줄 몰라서 쩔쩔매던 내 모습 같았다. 씁쓸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본 글은 2023.1.25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사진출처 : https://escuelamundialdetang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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