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룰루 Nov 23. 2022

개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엘 칼라파테

 아르헨티나에는 개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키우는 강아지가 아니라 정말 개다.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많다 보니, 실외에서 키우는 치 큰 개가 매우 많다. 그만큼 길에 개똥도 매우 많고 :)


 난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다.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짐승을 무서워하는지라 반려동물이 가까이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에는 큰 개가 무척 많아서 처음에는 무서웠다. 그나마 사람이 많이 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목줄을 한 개가 많은데, 엘 칼라파테 같은 시골은 그냥 목줄을 풀어놓는다. 주인 없이도 개들이 길을 자유롭게 드나든다. '광견병 주사라도 맞고 올걸'이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두 마리 개를 만났고, 사람들이 왜 반려견을 키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엘 칼라파테는 보통 파타고니아 지역을 여행하는 베이스캠프로 활용다. 엘 찰텐이나 모레노 빙하를 가기 위한 경유지로 활용이 될 뿐이고,  엘 칼라파테 자체에는 유명한 관광지가 없다. 나는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하루 정도는 이 한적한 마을에서 쉬기로 했다. 마을에는 라구나 니메즈라는 자연습지가 있는데, 관광객들에게 크게 유명하지는 않다. 네이버 후기를 찾아봐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후기들을 보면 이곳은 볼거리가 없고 방문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관광객이 별로 없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곳이라고?! 오히려 좋아. 산책도 할 겸 습지에 가본다.


 라구나 니메즈는 다양한 종류의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습지인데, 드넓고 평화로운 데다 관광객도 별로 없다. 조용히 사색하기 알맞다. 안내소에서는 이곳에 서식하는 새들에 대한 안내자료와 망원경을 제공한다.


 자꾸 내 주위를 알짱거리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주위에 사람도 없는데, 개가 내 주위를 맴도니 무섭다. 그런데, 이 개가 내 주위만 맴돌 뿐이지 나에게 오지를 않네? 뭐지. 날 신경 쓰는 듯, 아닌 듯. 내 10미터쯤 앞에 있다가. 내가 한 곳에 오래 있으면 뒤로 돌아와서 날 쓱 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간다. 내 느낌이 맞겠지?


 개는 무시하고 난 이 습지를 즐겨야지. 발라드를 들으며 사색하기 딱 알맞은 곳이다. 아쉬운 점은 새가 별로 안 보인다는 것이다. 망원경을 받으면 뭐하나? 새가 없는데. 벤치에 앉아서 5분쯤 쉬었나. 날 따라다니는 개가 물에 뛰어든다. 잔잔했던 물에 개가 큰 파동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보이지 않던 새들이 도망치듯 날아간다. 그 광경이 장관이다. 아, 새들이 이곳에 많았구나. 그러고 나서 그 개는 내 옆에 와서 쉬었다. 마치 '내 할 일 이제 다했다'라는 듯. 이 개 덕분에 장관을 보았다. 이 개는 라구나 니메즈의 직원인 걸까? 니 덕에 좋은 구경 했다.




 엘 칼라파테에 있는 숙소 '후지 여관'에 묵었다. 정갈하고 조용한 이 민박집은 창으로 보이는 산맥의 풍경이 후지산과 닮았다. 사장님이 예전에 일본에 거주하셨기도 해서 민박집 이름이 후지 민박인가 보다. 여느 엘 칼라파테에 있는 집과 마찬가지로, 이 민박집도 개를 키운다. 이름은 네그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깜둥이' 정도 된다.


 하루는 저녁에 양고기 아사도를 먹으러 식당에 다녀왔다. 양고기는 파타고니아 지역의 유명 음식이라서, 방문객들은 꼭 양고기 아사도를 먹는다. 레스토랑은 민박집 사장님이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사장님께서는 한 가지 부탁을 하셨는데, 양고기를 먹고 남은 뼈는 포장해 오라는 것. 이 동네 사람들은 먹고 남은 뼈를 다 포장해 오기 때문에, 대강 바디랭귀지로 요청해도 스탭이 알아들을 거란다. 이 동네 대부분의 집에서 개를 키우기 때문에 먹고 남은 뼈를 싸오는 게 보편적이라고 한다. 난 요청대로 먹고 남은 뼈는 네그로에게 주려고 포장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손에는 뼈다귀가 든 봉지를 든 채로 일몰이 잘 보이는 언덕에 갔다. 10분쯤 일몰을 구경하고 숙소에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꾸 개 한 마리가 내 뼈다귀를 노린다. 개는 후각이 발달했다더니 맛있는 음식이 있는 걸 귀신같이 아나보다. 그 개를 애써 외면하는데, 내 옆에서 떠나질 않는다. 가라고 팔을 휘저어도 아랑곳 않는다. 무서워서 반대쪽 길로 도망치듯 숙소로 왔다. 숙소에 와서 알게 됐다. 언덕에서 내 옆에 있던 개가 숙소의 네그로였던 것을. 숙소 스탭 분과 산책을 나왔다가 날 알아보고 옆에 있었나 보다. 숙소에서 날 잠깐 봤을 뿐인데 날 알아본다고? 그리고 내 옆에 있어준다고? 내가 저리 가라고 언덕에서 외면했는데도 네그로는 날 반겨주었다. 네그로인 줄도 모르고 냉대했던 게 미안했지만, 내가 가져온 뼈다귀를 잘 먹는 걸 보니 죄책감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사람들이 왜 반려견을 키우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든 개들은 사람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준다. 내가 관심을 주지 않아도, 설령 내가 개를 냉대해도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강아지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개들은 조건 없는 사랑을 인간에게 준다.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본인이 좋아서 하는 행동이고, 나는 순수한 이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여태껏 그랬던 적이 없다. '내가 이렇게 잘해주면 그녀도 날 예뻐해 주겠지? 고마워하겠지? 기뻐하겠지?' 이런 마음들이 조금씩은 있었다. 개처럼(?)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을 줄 수는 없을까. 왜 못하는 걸까. 아직 사랑의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일까, 내가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 이어서일까. 어쩌면 난 개만도 못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바라는 것 없는 사랑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나 자신을 언젠가는 만 수 있을까.



본 글은 2022.11.24 다음 메인에 게재되었습니다.


이전 01화 노숙자 밥을 얻어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