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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을까?

딩크족만은 아닙니다만

사실 아이를 가질 나이가 훨씬 지났다. 나는 누구보다 아기들을 좋아한다. 친구들 아기들도 잘 봐주고 잘 놀아주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아기를 갖는 일은 아직 많이 두렵다. 내가 정서적으로 그럴 준비가 되어있나 싶다. 나의 부모도 내가 태어났던 날 누구보다 기뻤을 것이다. 나를 많이 사랑했고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나도 나의 자식을 불행하게 할까 두려운 마음이 많이 든다. 


나는 딩크족은 아니다. 연애와 결혼을 합쳐 15년째 와이프와 함께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에겐 아이가 없다. 일부러 아기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기는 자연이 주는 거라 생각하며 일부러 계획 임신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미 불행한 아이들이 너무 많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이는 부모였던 적이 없지만 부모는 아이였던 적이 있다. 아이가 부모를 이해하는 것보다 부모가 아이를 이해하는 게 빠를 텐데 세상은 어찌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상처받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 나는 부모가 되는 게 겁이 난다. 


사회적인 문제도 많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강한 엄마조차 지켜줄 수 없는 문제 역시 너무 많다. 아이가 학원차 문에 낀 채로 수십 미터를 끌려가다 사망한 사건을 뉴스에서 봤다. 일반 운전자가 출발 전 양쪽 사이드미러를 확인하지 않고 출발했다고 해도 이해 가지 않는데 하물며 그게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학원차 운전기사라면 더더욱 이해가 안 된다. 이런 어이없는 사고들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나라 지키라고 군대에 보냈더니 왕따를 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하는 자식들의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그중 많은 부분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인과 개인 간의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니 조직과 조직 간의 소통은 더욱 어렵다. 캐나다에서는 우리가 아파트라고 하는 주거형태를 콘도미니엄과 아파트로 다시 구분한다. 아파트는 회사 하나가 건물을 통째로 소유하여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월세를 내는 새 입자들로, 이 세입자들은 이미 정해진 규칙을 무조건 따르고 싫으면 나가야 하는 일종의 공산주의 형태 같다. 콘도미니엄은 건물의 유닛 하나하나의 소유주가 다른 우리나라의 아파트 형태로 일종의 작은 민주주의 국가와 같다. 선거로 대표단을 뽑아 콘도의 운영을 자체적으로 한다. 대표단은 일종의 조합 형태로 약간의 월급을 받으며 콘도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운영을 한다. 회의도 하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하기도 한다. 대표단 안에 리더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각자 맡은 임무가 있고 어느 정도는 봉사의 성격도 뛰고 있다. 작은 콘도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고 수정할 부분은 투표를 통해 고친다. 층간소음 같은 문제가 있을 시 주민들끼리 직접 싸우는 게 아니라 이 운영회를 통하여 건의를 하고 조율받는다. 나와 내 자식이 사는 나의 콘도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착을 가지고 서로 매너 있게 규칙을 지킨다. 물론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나 오너로부터 렌트를 하는 입주자들이 규칙을 위반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그런 사람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이 규칙을 잘 따르기 때문에 그들은 금세 본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고친다. 작지만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 이런 크고 작은 사회를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많다. 한국 교민들은 느려 터져 답답하다고 하지만 그 사회의 속도에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가 전혀 다른 것이다.


‘왜 아기 안 낳아?’라고 묻는 사람들 중 많은 비율로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내 아이 생기면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좋고, 얼마나 행복한데.” 그런데 그건 당신 생각이고, 반대로  ‘내 아이는 내가 부모라서 행복할까?’,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자문해본 적 있을까 가끔 궁금하다. 아이가 예쁘고 사랑스럽고 그런 아이를 봐서 행복한 건 모두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다. 세상에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딨을까? 다들 최선을 다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사람의 행복은 무엇 하나만으로 쉽게 결정되지 않는다. 자기만족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소통, 내외부적으로 오는 만족감, 성취감 적당한 경제적 능력도 중요하다. 어른들처럼 아이들 역시 여러 가지 행복을 위한 조건이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시키는 대부분의 일들이 나중에 아이들 커서 잘되라고 하는 일이지만 아이들과 소통 없이 이해시키지 않고 하는 일들은 아이에게 지금 당장의 직접적인 불행처럼 기억된다. 어릴 적, 나는 공부하기가 싫은데 자꾸 학원에 보내고, 우유 먹기 싫은데 자꾸 먹게 했던 때, 우리는 행복했었나? 


2세를 갖는 이유가 ‘귀여워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는 게 좋다. 하지만 반려동물 키우는 것도 대소변 치우고, 산책시키고, 목욕시키고, 집에 혼자 오래 두면 안 되니 챙겨야 할게 많다. 책임감이 생기는 거다. 사람이나 강아지나 귀여워 죽겠는 건 아기 때 잠깐이다. 아기가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운데라며 아이 왜 안 갖냐고 묻던 사람들 대부분이 조금 지니면 애들은 잘 때가 제일 이뻐 너도 이왕 날 거면 빨리 낳아라 너도 나아봐라 한번, 이런 식으로 말한다.


아기는 낳아서 좋은 옷 입히고 귀엽다고 사진 찍고 사교육 잔뜩 시켜서 좋은 대학 보내려고 키우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여자라면 자신의 몸에서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해보는 기쁨. 남자라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기쁨. 날 닮은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까 하는 마음. 점점 성장하는 아이가 어느새 하나의 또 다른 인격체가 되어 친구 같은 대화가 되는 경험 그 아이의 생각을 들으며 또 새로운 세대를 배우는 마음, 이런 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우리 옆집 고양이 하루 일과 중 일어나면 제일 먼저 하는 것 중 하나가 우리 집에 나를 보러 놀러 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많은 비율이 사람들이 '뭐 먹을 거 많이 주나 보다' 한다. 그런데 나는 옆집 고양이들한테 그 흔한 간식 한번 준 적 없다. 나는 나의 시간과 애정을 준다. 놀러 왔을 때 딱 5분만 투자해서 성심성의껏 엉덩이도 토닥여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준다.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니 뒷마당에 눈이 많이 쌓여서 밖으로 외출하기 힘든 겨울철에도 고양이는 그 눈을 뚫고서 우리 집까지 나를 만나러 온다. 자기가 좋아하는걸 내가 해주니까. 또 보고 싶고 같이 놀고 싶어서 놀러 오는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는 아니지만 나도 옆집 고양이에게 애정을 주며 나 또한 정서적으로 안정됨을 느낀다.


나는 나의 아이와도 그런 친구 같은 관계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런 부모가 될 준비가 되었을까?' 오늘도 스스로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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