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o ME
남에게 인정받고자 시작한 일도 아니지만 억울하다.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거지. 맨날 억울하대. 독하지도 못할 거면서. 자꾸만 내 대답 대신 ‘얘가 한 게 뭐 있냐’는 대답이 가로막는다. 이걸... 말을 말자. 한탄하면 끝도 없다. 진짜 아닌데. 난 고작 한 달따리 신입이고 내 전임자는 복지관에서 몇 십 년을 일했고 종이 몇 장으로 인수인계를 대신했다. 그 사람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후에 말하겠지만 난 누군가와의 통화에서 전임자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고스란히 전해줄 사람이 없어서 어렵다고 말했다./
술기운에 벌게진 얼굴로 난 여기가 체계적인 곳인 줄 알았어. 라고 나지막이 하던 말이 아직도 맴돈다. 첫 날 뵌 게 전임자인 줄 알았다면. 꼬치꼬치 캐물어서 인계 받았을 텐데. “알아서” 하려면 “알아야” 하는데 일을 뺏는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이 바다에 던져놓고 수영해 보라고 하기랑 뭐가 다르지? 각자의 위치가 있고 그 일을 할 내공이라는 게 있는 거지. 사회생활이라는 말 아래에서 타인의 구역을 침범하는 것이... 누굴 위한 건지 모르겠다. /사회생활? 결국 답은 없는 거다. 허상의 개념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만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먼저 파악해야 했다. 그래야 물을 수 있으니까. 내가 이건 아는데 이걸 몰라요. 이걸 가르쳐 주세요. 요구는 정확해야 그 사람의 시간을 뺏지 않으니까.
다행인 것은 내 사수가 하나를 질문할 때 다섯까지는 알려 준다는 것. 자꾸 내가 노는 줄 안다. 전임에게 이 일은 지극히 서브 메뉴였다 말하지만 출발선이 다른 나에게는 이게 메인이어야 한다. 그게 맞는 거다. 회합에서 말하는 건 내가 한 일의 축소판인데. 사람들은 보이고 들리는 걸 믿으니까. 조용히 해내는 게 잘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xx.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일을 잘해도 말을 못하면 소용없더라, 말을 잘해야 알더라.” 하는. 수긍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없다. 나 이만큼 일했고 그래서 이만큼 힘들고, 스스로가 기특하다는 생색. 그런 건 티 내고 싶지 않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성격도 아니고 내가. 차라리 이거 저거 해라 던져 주든지. 찾아가며 습득하게. 애매한 정보와 애매한 그 무엇들이 난 더 어렵다. 모르는 건 죄악이고 아는 것은 독이었다. 애초에 쉽고 빠르게 배울 생각은 없다. 쉽게 배운 일은 쉽게 잊으니까. 어려워야 한다. 실수도 해야 한다. 무언가 다급하고 불안해하는 기류였는데... /퇴사한다고 하기라도 했나?/
나는 내 것만 하면 된다, 지금은 그게 도와주는 거다. 이건 내가 더 잘 안다. 바쁜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다. 간호사는 내가 염세적으로 구는 것은 병이 아니라고 했다. 그냥 이게 나라서 약으로 고칠 수 있는 것도 고쳐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어젯밤에 전화 한 통이 왔었다. “선생님 보면 저를 보는 것 같아서. 나도 이런 말을 하게 될 줄 몰랐고... 어디서 들었는데 오늘 혼자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면서요. 전에 계셨던 분이 딱 그랬는데. 선생님이 도망갈까 봐 붙잡으려고 전화했어요. 나도 옛날에 누가 이렇게 전화해 줘서 버텼거든요.”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줬다. 우리 같은 사람이 생각을 하느라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오면 결국 답은 없고 또 반복이라고.
하필 전화를 받았을 때가 딱 한 바퀴를 돌고 도착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전임이셨던 그 분은 세 바퀴를 돌던 분이었고. 혼자 들쑤시고 다닌다며 미움을 샀다고 했다. 그 선생님은 정답을 알아내고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알아내려 무던히도 애쓰던 사람이었다. 머리로만 일을 한 게 아니라 본인만의 약속을 지켰다고. 믿음이라는 것에 약속이라는 말로 육신을 주고 수없이도 죽인다고 쓴 적이 있는데. 그 선생님은 아마 죽이지 않으려 노력했고 실제로도 죽은 육신이 없었을 것 같다.
아무튼 굉장히 비결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게 한 말은. “생각하지 마.” 라는 한 마디였다. 말하는 그 선생님도 듣는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너무나도 잘 알아서 한탄스러웠다. 전임의 말을 알아듣는 이가 없어서 몇 번을 울었다고 했다. 나도 그럴까 봐. 그 선생님과 내가 비슷해서. 나는 또 어떻게 대답했더라. “선생님 이게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말이기는 한데요. 저는 똑똑한 사람이 더 빨리 죽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분이 나가신 것도 그런 맥락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랬더니 왜 또 생각이란 걸 하냐고 했다. 자기는 이미 고인 것 같으니까 나라도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벌써 거기까지 파악을 해버린 것 같으니 이런 말도 하는 거라고. 40 분 동안 너무도 간결하게 너무 많은 뜻을 공유했다. 허하다. 옛날에 이런 말을 했다가 동정을 받았었는데.
한 군데에서 일하는 거. 정 붙을까 봐 겁나요.
- 정... 아니... 그게 왜.
- 붙이지 마. 혼자 하면 붙을 일도 없지 않나.
사람 간의 정 말고도. 그 장소나 특유의 공기 있잖아요.
- 그래서 죽기 싫을까봐?
거의요. 미련 생길까 봐요.
- 다른 때보다 이게 제일 불쌍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