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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Apr 12. 2024

운수 나쁜 날

나는 내가 이상했다

그제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지지했던 후보들의 총선결과가 새벽까지 박빙이라 계속 신경이 쓰였다. 새벽까지 잠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고 9시 반쯤 눈을 떴다. 11시에는 출발해야 의정부에 점심 즈음에는 도착할 수 있다. 퇴원 후, 혼자 있는 엄마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엄마가 퇴원을 하니 더 신경이 쓰인다. 병원에 있을 땐 적어도 끼니 걱정은 안 했으니. 내가 엄마의 끼니 걱정을 할 날이 올 줄이야.  


퇴원을 시키고 엄마를 보는 건 열흘 만이다. 두 달 전, 인공관절 무릎 수술을 한 엄마는 여전히 걷는 게 힘들다. 1년 동안 열심히 재활을 해야 한다는데 그 점은 걱정하지 않는다. 엄마는 의지가 강해서 아파도, 귀찮아도 열심히 운동을 할 사람이다.


장을 간단히 보고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쌈을 맛있게 싸 먹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며 왔는데 생각보다 먹는 게 시원찮았다. 입맛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혼밥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먹고 싶은 게 많아 매 끼니 뭘 먹을지 고민을 해서 엄마를 귀찮게 하던 아버지가 1년 전부터 병원에 입원해 있다. 아버지의 까다로운 식성을 맞출 필요가 없다 보니 엄마는 더 이상 장을 열심히 보지 않는다. 자연스레 먹는 게 줄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엄마를 보니 잔소리가 나온다.


-어쨌든 잘 먹어야지!


엄마가 나에게 하던 소리를 내가 엄마에게 한다. 잡동사니를 거실 소파에 늘어놓는 아버지가 없으니 집은 묘하게 정리가 된 기분이다. 엄마에게 집이 깨끗해진 것 같다고 얘기하니 바로 답을 한다.


-별로 움직이질 않으니 어질러질 것도 없지 뭐.


엄마는 그냥 한 말이고 답을 들은 나는 순간 우울했다. 가게 문을 열어야 하니 오후 3시쯤 본가에서 나섰다. 근처 병원에서 당뇨약을 받아야 하는 엄마를 데려다주고 장을 보러 왔다. 오는 길에 졸음이 와서 혼났다. 마포농수산물 시장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따귀를 때려가며 운전을 했다.

보통 3,000 원하던 양배추가 한통에 7,000원이다. 음식점은 정말 많이 팔아야 남는다. 원재료가 배 이상 오르니 적당히 팔아선 고생만 하고 남는 게 없다. 늘 그랬지만 가게 운영에 대해 고민이 많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지 계속 질문하고 있다.


어제의 매출보다 웃도는 금액의 장을 보고 가게에 도착했다. 아내는 냉장고 정리를 하고 나는 재료를 씻으며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방 바닥 배수구에서 점점 물이 차올랐다. 싱크대에서 물을 흘리면 하수구로 물이 잘 흘러야 하는데 어딘가 막혀서 주방 바닥 쪽으로 물이 역류하는 것 같았다.


전날, 잠을 설치는 와중에도 좋은 꿈을 꿨다는 아내에게 로또를 사러 다녀오라고 시키고서는 작업 준비를 했다. 아내가 다녀오기 전까지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일을 마치고 싶었다.

가스로 배관을 청소하는 총을 찾아 비장하게 조립을 했다. 배수구에 물을 많이 흘리고 총을 쏘면 물의 압력으로 배관이 뚫리는 원리인데 웬만하면 해결되곤 했다.

싱크대에 물을 잔뜩 받고 흘린 후, 가스통을 쐈다. 펑하고 얼굴에 물이 튀었다. 압력에 의해 내려가던 물이 막혀 있던 어느 지점에 부딪혀 다시 역류를 한 것이다. 안경에 물방울이 맺히고 머리가 흠뻑 젖었다. 입고 있던 회색의 티셔츠는 땀에 절은 듯 진회색으로 변했다.


-하. 씨발.


욕이 절로 나왔다. 로또를 사고 돌아온 아내는 내 몰골과 표정을 살피더니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신경질적인 반응이 돌아올 것이 뻔하니 말을 걸기가 애매했을 것이다.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일로 와주셨던 분이다.

마침 근처에 있던 사장님은 생각보다 빨리 가게에 도착했다. 저녁 7시였다.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손님이 3팀이 들어왔다. 오셨던 분들이다. 심지어는 가게 앞에서 오픈 시간을 기다리던 분도 있었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리고 꼭 그런 날은 일이 생긴다. 아쉬워하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속상하진 않았다. 나는 이런 일에 이제 이골이 났다. 어차피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 포기하면 편하다는 마음은 아니고 냉소적으로 변한 게 맞다.


오래된 스쿠터를 타고 온 사장님은 무거워 보이는 기계를 주방 가운데 내려놓고 작업을 하더니 10분 만에 하수구를 뚫었다. 작업비는 15만 원. 조금 깎아달라고 얘기하려다 말았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이다.

자영업을 하니 작은 돈에 자꾸 집착하게 된다. 나는 점점 소심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다. 사장님을 보내고 얼른 청소를 했다. 손님이 올지 안 올진 모르겠지만 최소 작업비 정도는 벌어야 한다. 그래야 오늘은 마이너스가 아니고 제로다.

홀 준비를 마치고 재료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손님이 들어왔다. 아직 매장에 음악도 틀어 놓지 않는 상태였다. 아는 얼굴이다. 동네에 사는 아저씨인데 아주 가끔 들르는 분이다.

텅 빈 가게에서 함께 온 손님과 단둘이 술을 마시기 시작한 아저씨는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그리고 금방 일어났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가시냐?' 묻지 않았다.


다시 텅 빈 가게.


 손님들이 한참 들어올 시간은 이미 지났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손님이 없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마음이 이상했다. 나는 오늘의 내가 참 안 됐었다.


조금 이른 마감을 위해 재료 정리를 조금씩 하고 있었는데 외국인 다섯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4명 이상의 외국인이 오면 반갑기도 하지만 조금 긴장이 된다. 그들에게 우리 가게는 안주를 천천히 즐기러 오는 곳이 아니라 식사와 동시에 간단히 술 한잔을 마시러 오는 곳이다. 그러니 음식을 시키는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식사 속도도 빠르다. 음식이 빨리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드니 순간 긴장이 된다.


테이블을 붙이고 외국인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니 문으로 다섯 명의 손님이 이어 들어왔다. 여자분 다섯 분이었는데 회식의 느낌이었다. 반갑지만 불길했다. 회식은 한꺼번에 많은 메뉴를 시킨다.

두 테이블에서 동시에 메뉴가 들어왔다. 나는 동시에 모두 다른 8가지가 넘는 메뉴를 해야 했다. 골탕을 먹는 기분이었다. 어떤 날은 이런 상황이 너무 재미있다. 메뉴가 하나씩 완성되는 것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이 시간에, 이곳에, 이러고 있을 수밖에 없는 나에게 너무 화가 났다.


입을 닫고 음식에만 집중했다. 40분 동안 쉼 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주방 한편에 앉아 속으로 말했다.


-지금 뭐 하니? 지금 뭐 하니? 지금 뭐 하고 있니?



가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빠지지 않고 듣는 음악도 듣지 않았다. 큰일도 아닌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어제의 나는

내가 피곤했고, 신경 쓰였고,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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