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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Oct 17. 2024

요리의 기쁨

귀하고 귀하다 - 고사리주꾸미파스타



얼마 전,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남은 나물을 엄마가 싸주었다. 어릴 땐 입에도 대지 않았던 나물을 싸주는 족족 소중하게 챙겨 오는 걸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먹어나 보다.


나물을 싸 온 다음날에는 나물을 한 접시에 조금씩 덜어 놓고 흰밥과 함께 먹는다. 바싹 마른 조미김이 있으면 더 좋다.


제사를 지내고 나서 먹긴 했지만 그때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밥이 잘 들어가지도 않고 제사상에 올라갔던 음식이 워낙 많기도 해서 나물에 쉬이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큰 상에서 여럿이 함께 밥을 먹으니 만약 나물이 손을 뻗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굳이 애써 먹지 않는다.


그래서 제사상에 올렸던 나물은 집에 가져와서 다음날 천천히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넓은 그릇에 뜨끈한 밥을 크게 덜어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할 때도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비비지 않고 나물을 하나씩 맛보는 것을 좋아한다. 비벼진 맛으로 먹고 싶지 않고 하나씩 나물의 맛을 음미하고 싶어서다. 귀하고 귀하다.


실제로 고기는 집 앞에서도 쉽게 사 먹을 수 있지만 나물은 그렇지 않다. 먹고 싶을 때 바로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고기보다 귀한 것이 사실이다.


엄마가 해 준 나물의 간은  대체로 잘 맞는 편이긴 한데  대체로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올라가는 나물은 간간한 편이다. 식구들이 이동하는 동안 싸준 나물이 쉬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조금 짜게 하는 편이라고 했다.


엄마가 싸 준 고사리나물이 간간하게 느껴지질 땐 바로 스파게티면을 삶는다. 간이 쏙 밴 고사리는 적당하게 익은 스파게티면과 정말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물을 해주었을 때, 그리고 그 나물이 간간하게 느껴졌을 때만 만들 수 있는 파스타다. 귀하고 귀하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을 넣어 적당히 익힌 후에 부재료를 넣는다. 육류보다는 해물류가 좋은데, 이번에는 냉동실에 넣어뒀던 냉동주꾸미를 활용했다.


해동된 주꾸미가 마늘 올리브유에 잘 익으면 팬이 주꾸미에서 나온 육수로 흥건해진다. 그때 적당히 삶아 둔 스파게티면을 넣는다. 맛있는 육수가 스파게티면에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불을 줄이지 않고 강불로 계속 익혀준다. 간장을 두 스푼 정도 둘러주고 나머지 간은 소금으로 더 한다.


90% 정도 완성됐다 싶을 때, 고사리나물을 넣어 나물을 섞어주며 나물을 데우는 정도로만 조리한 후 불을 끈다. 마지막으로 들기름을 두 스푼 넣고 모든 재료를 잘 섞어준다.


오일파스타의 감칠맛을 내기 위해 흔히 버터를 사용한다. 물론 버터도 좋지만 한식재료가 응용되거나 간장을 사용한 파스타에 들기름을 넣으면 그 특유의 은은한 풍미가 버터와는 완전 다른 감칠맛을 느끼게 한다.


후추를 고루 뿌려주고 쪽파를 흩뿌려주며 마무리.


‘고사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사리 요리는 제주에서 사 먹는 ‘고사리육개장‘과 내가 직접 해 먹는 ’ 고사리파스타’다.


물론 내가 직접 해 먹는 ‘고사리파스타’는 엄마의 고사리나물이 없다면 요리가 불가능한 음식이다. 오직 엄마의 손맛이 들어간 나물이어야만 그 맛이 난다.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


고사리주꾸미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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