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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Oct 11. 2024

<흑백요리사>를 보았다.

그저 묵묵히 일하는 사람

온통 난리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흑백요리사> 얘기를 한다. 공중파 방송도 아니고 넷플릭스 가입을 통해 볼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이 정도로 화제를 끌 수 있다니  국내에서의 반응만 비교한다면  <오징어게임>의 화제성에 견줄만할 것 같다.


사람들이 요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저 먹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익힘 정도를 얘기하고 요리의 의도를 상상한다. 재미있는 현상이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식당을 홍보하기 시작했고 방송에 더 많이 비친 요리사들의 식당은 현재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관심이 폭발 중이다.


나는 조금 뒤늦게 <흑백요리사>를 시청했다. 마지막 방송을 앞둔 하루 전부터 1회를 보기 시작했으니 다음화까지 일주일을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과 설렘 없이 쉽게 정주행을 했다.


요리사 개개인의 서사가 주가 되지 않고 요리에 집중된 프로그램이었기에 누구 한 사람을 응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누가 올라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가 거듭될 때마다 주어지는 미션을 수행하는 요리사들의 창의성과 순발력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끝까지 어느 한 사람도 응원하지 못했다. 어쨌든 우승자가 있어야 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매우 희귀한 경험이다. 요리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표현하는지가 보고 싶었지 누가 우승하는 것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타 셰프의 시대가 다시 올 것 같다. 트로트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많아진 것처럼 요리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생길 것이다. ‘먹는 것’을 보는 먹방의 시대에서 ‘하는 것’을 보는 쿡방의 시대가 다시 온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선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칼을 쥐고 요리를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뭐든 마찬가지지만 요리도 하면 늘 게 돼있다.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귀찮았는데 아침 러닝이 일상화되는 것처럼 요리도 귀찮음을 뛰어넘고 매일 하다 보면 삶의 큰 재미가 된다.


—-


<흑백요리사>를 통해 파인다이닝 한 접시에 펼쳐진 예술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을 것이다. 가격대가 높아 쉽게 경험할 수는 없겠지만  TV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예술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서 오는 식재료의 색감을 그림 그리듯이 표현한 요리들을 보며 파인다이닝 셰프는 종합예술인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빈 그릇’이 조금씩 채워지며 완성돼 가는 요리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흑백요리사>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정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메인 셰프가 요리를 지휘하는 동안 뒤에서 말없이 식재료를 씻고 썰고 있었던 다른 셰프들….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묵직한 감동을 느꼈다. <흑백요리사>를 보며 가장 울컥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빛이 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더 밝게 빛날 수 있도록 고요하게 차곡차곡 작은 반짝임을 모아 왔던 시간들이 있다.

팀 미션에서  팀장이 빛날 수 있었던 건 말없이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팀원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반짝거림을 모아주었기 때문이다.


‘급식요리사’님이 마지막 소감이 가장 인상적이다.


-이제 다시 얘들 밥 해주러 가야겠어요.


최선을 다하고 미련 없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삶에 대한 태도’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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