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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기쁨

17. 아버지가 좋아할까? - 백합우동

by 조명찬

가게에서 우동을 팔아보고 싶은 적이 있었다. 유부우동이나 김치우동 보다는 특별한 것을 만들고 싶었는데 고민하다가 만든 것이 '백합우동'이다. 백합 육수를 5년 이상 매일 같이 냈으니 육수 맛은 자신이 있었고 그때 즈음 간장으로 맛을 더한 일본식 '조개라멘'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새 메뉴를 준비할 땐 힘들고 재미있다. 그리고 두렵고 설렌다. 아내가 ’백합우동‘의 레시피를 매일 같이 되풀이하고 있는 내게 첫 손님으로 누가 왔으면 좋을지 물었다. 바로 답을 주진 못했지만 사실 바로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다.


아버지는 바지락 칼국수를 무척 좋아했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손에 검은 봉지가 들려있는 날엔 어김없이 바지락 칼국수를 해 먹었다.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칼국수가 지겨웠다. 맛이 없다기보다는 먹기 싫은 날에도 칼국수를 억지로 먹어야 한다는 게 싫었다. 한참 반항을 했을 땐 칼국수를 끓이고 있는 아버지 옆에서 보란 듯이 내 몫의 라면을 끓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면요리에 진심이었다. 칼국수는 직접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숙성을 한 후, 집에 있던 맥주병으로 반죽을 밀어 평평하게 만들고는 나무 도마 위로 반죽을 접은 뒤 칼로 잘라 면을 만들었다.

회사 근처에 있는 단골 중국집에서는 울면을 자주 먹었고 을지로의 오래된 우동집을 좋아했다. 왜 그렇게 면을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보급되는 꺼끌꺼끌한 죽만 먹다가 어쩌나 국수를 한 번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부드러운 목 넘김이 황홀할 지경이었다고....


언젠가 동생과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다고 공통점을 발견한 적이 있다. 둘 다 군대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아버지가 만들어준 칼국수였다는 걸 대화 도중 알게 됐고 우리는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음식을 둘 다 그리워하고 있었다니. 그러니까 지금 싫다고 해서 영원히 싫은 게 아니다.


아버지는 내가 식당을 여는 것을 진심으로 반대했다. 가게 오픈을 한 후에도 격려는 고사하고 ’ 지금 네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라는 말로 속을 뒤집어 놓고 갔다. 가게를 운영하는 동안에도 가족모임에 억지로 오신 걸 빼고는 따로 혼자 온 적이 없다. 아들이 꿈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든 게 안타까워서 그러는 줄 잘 알고 있지만 서운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지도 2년이 다 됐다. 병원에서 재활을 하고 있는 아버지는 하루에 두 끼는 미음으로 식사를 하고 한 끼는 경관식으로 식사를 대신한다. 아버지에게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쉽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끼니때마다 먹고 싶은 게 많고 다양해서 엄마를 힘들 게 했던 아버지는 더 이상 없다.


아버지에게 '백합우동'을 한 그릇 해 드릴 수 있는 날이 올까?

기대하지 않지만 기대하게 된다. 아버지가 '백합 우동'을 먹고 나면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


'꽤 그럴듯한 맛이다.'


칭찬이지만 큰 칭찬은 아닌 말. 아버지는 늘 그렇게 칭찬을 했다. 자식들 거만해질까 봐 정제된 말로 겨우 꺼내는 칭찬. 어릴 때는 그게 참 싫었다. '그깟 거 한번 시원하게 잘했다고 해주면 얼마나 좋아!'라고 생각했었다.


길게는 아니지만 아버지와 대화를 조금씩 할 수 있게 됐다. 어떤 날은 말이 많고 어떤 날은 말이 없다. 말이 많은 날엔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 좋아했던 음식들로 대화를 이어간다.

그 재미없는 대화가 나는 요즘 제일 재미있다.





백합우동


1. 백합 10개가 잠기도록 물을 담은 후, 소금과 청주를 넣고 약불로 끓인다. (강불로 끓이면 백합 살이 질겨진다.)

2, 백합이 입을 벌리면 따로 건져둔다.

3.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른 후, 채 썬 양파를 약불에 볶는다.

4. 양파가 흐물흐물해지고 갈색 빛이 돌 때 즈음 간 마늘 한 티스푼을 넣는다.

5. 양파와 마늘을 볶은 프라이팬에 백합 육수를 넣고 3분 정도 강불에 끓인다.

6. 끓인 육수를 채에 걸러 양파, 마늘 건더기 없이 육수만 따로 준비한다.

7. 냉동우동면을 따로 담아둔 육수와 함께 1분 끓인다. 이때 유부도 넣어주면 좋다. 이때 우동 간장으로 마지막 간을 맞춘다.

8. 그릇에 면을 먼저 담고 육수를 부은 후, 청양고추와 쪽파를 올려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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