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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기쁨

알쓰라도 상관없어! - 봉골레술찜

by 조명찬


술찜을 처음 접한 건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히 들어간 이태원의 벨기에 레스토랑이었다. 홍합요리라고 하면 포장마차에서 기본 안주로 주던 홍합탕이 전부라고 생각했었던 20대 초반이었다.



공짜로 맘껏 먹을 수 있는 홍합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팔릴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홍합이 그득 담긴 푸른색의 르쿠르제 냄비의 우아함에 또 놀랐다. (그때는 그게 르쿠르제 냄비인지도 몰랐다.) 홍합을 먹는 내내 친구들에게 근데 “이 냄비 정말 근사하다.”라고 몇 번이나 얘기해서 친구 중에 한 명은 생일 선물로 사주겠다고 공수표를 날리기도 했었다. 물론 받진 못했고.


화이트 와인으로 쪄낸 홍합은 그야말로 처음 먹어본 맛이었다. 같은 식재료가 어느 곳에서는 공짜로 퍼주고 어느 곳에서는 비싸게 팔리고 있으니 요리의 가치에 대해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후 요리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홍합찜을 만들었다. 재료도 많이 필요하지 않고 만드는 공에 비해 언제나 반응이 좋았다. 내가 경험한 것이 친구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게 홍합요리는 홍합탕뿐이었다.


홍합찜을 자주 요리하게 되자 나중에는 조금씩 변주가 시작됐는데 오징어도 넣고 조개도 넣고 새우도 넣고 관자도 넣었다. 그 어떤 해산물을 넣어도 술찜은 실패가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이자까야에서 ‘바지락술찜’을 접하게 됐는데 이것 또한 적잖은 충격이었다. 야근이 잦고 회식을 자주 하던 30대 초반이었다.


작은 바지락이 깊지 않은 파스타 접시에 가득 담겨 있었는데 바지락 위로 실파와 청량고추가 흩뿌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접시에 찰랑거리게 담겨 있던 노란 육수가 인상적이었다.


버터향이 적절하게 밴 바지락살은 와인보다는 소주나 사케와 어울렸다.


‘간바레오또상’


그때 우리는 그 사케를 즐겨마셨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술집에서 파는 사케 중 가장 저렴한 건 아니었고 바로 윗 단계의 가격대였기 때문.


나중에 말 만들기 좋아하는 친구들은 ’ 사케 이름이 아빠 힘내세요!라는 게 참 멋지지 않아?‘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접시 옆에 조개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일 때 즈음, 서빙하는 직원이 와서 물었다.


“파스타 말아드릴까요?”


아. 이렇게 기름지고 고소한 육수에 파스타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 후로 술집에 가서 ’ 술찜‘이 메뉴판에 보이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주문하곤 하는데 워낙 변주가 다양하게 가능한 요리라 매번 다른 것을 먹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에 먹었던 가장 인상적인 술찜은 서촌에서 먹었던 홍합술찜이었는데 술찜보다는 스튜에 가까운 국물요리였다. 친구들과 일요일에 인왕산을 다녀와서 여유 있게 술을 즐기다가 밤이 깊어지고 집에 갈 때가 되었는데 헤어지기가 아쉬워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저렴한 와인과 저렴한 안주. 무엇보다 한옥을 개조한 곳이라 운치가 있었는데 배가 찢어지게 불렀는데도 홍합술찜에 자꾸 손이 갔다. 토마토소스가 진하지 않게 우러난 육수가 해장국처럼 시원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시간에 편한 운동복을 입은 친구들과 함께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취하지 않게 와인 한잔으로 마무리하는 절제가 좋았던 것 같다.

어느덧 우린 40대 중반으로 향해 가고 있다.


백합새우술찜


토마토술찜



백합새우술찜


-잘 씻은 백합에 물과 정종을 같은 비율로 자작하게 부어 놓고 약한 불로 뭉근하게 끓인다.


-백합이 입을 벌리면 따로 건져 놓고 육수는 채에 받쳐 부산물을 걸러낸다.


-잘 달궈진 팬에 양파를 넣고 약한 불로 양파가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생새우나 해동된 새우를 넣고 볶다가 마늘을 한 스푼 넣어 향을 더한다.


-새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백합육수를 넣고 센 불로 한소큼 끓여낸다.


-육수가 끓으면 불을 줄이고 버터 한스푼을 넣는다.


-미리 건저두었던 백합을 넣고 2분만 더 끓인 후 접시에 담아 쪽파와 청량고추를 뿌린다.


+

토마토술찜을 하고 싶으면 마지막에 시판 토마토소스와 홀토마토를 추가 한다. 이때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 고추장을 넣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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