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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의 기쁨

식전주의 행복 - 김치안주

by 조명찬

식전주를 즐기는 편이다.

음식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에 간단한 반찬과 함께 한두 잔 마시는 것이야 말로 음주의 꽃이 아니겠는가!


최근 좋아하는 식전주 안주는 엄마가 가져다준 섞박지!

적당히 달고 새콤해서 안주로 그만이다. 섞박지는 물론 커다란 조각을 입으로 베어 먹는 것이 맞지만 안주로 즐기기 위해서는 작은 조각으로 썰어서 먹는다. 그래야 한잔에 조금씩 깔끔하게 먹을 수 있다.


섞박지는 소주도 어울리지만 막걸리와 먹어야 특유의 새콤한 맛이 배가 되면서 입안이 즐거워진다.


막걸리는 상황에 따라서 마시는 방법을 구분하는 편이다.

등산 같은 유산소 운동 후 마실 때는 큰 사발에 따라 벌컥벌컥 들이켜 갈증을 해소하고 식전주로 마실 땐 작은 잔에 도수가 높은 막걸리를 따라 한 모금씩 음미하며 마신다.


식전주는 음식을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한 전채 음식 중에 하나다. 과해서 술에 취하면 안 된다.


동동주, 막걸리, 청주는 그 시작점이 같다.


세 가지 술 모두 고두밥에 물과 누룩을 넣어 발효시켜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술의 종류가 갈린다.



동동주는 술이 발효되는 과정 초기에 밥알이 둥둥 떠 있을 때 떠내는 술을 말한다. 동동주는 ‘부의주’라고도 불렀는데 술 위에 밥알이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보고 개미가 떠 있는 듯한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청주는 동동주보다 더 발효를 시킨 후 거름장치를 통해 맑은술만 거른 술이다.


막걸리는 청주와 동동주를 퍼내고 남은 술찌개미에 물을 섞어 막걸리 낸 술이다. 그러니 막걸리는 기존의 술에 물을 더 탔기 때문에 도수가 가장 약하다.


굳이 따지자면 막걸리는 청주와 동동주를 얻은 후에 남은 것으로 다시 한번 술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청주와 동동주는 양반이, 막걸리는 서민들이 즐겼다. 조선 시대의 민화를 보더라도 양반들의 손에는 작은 술잔이 들려 있고 난전에 있는 서민들의 술상에는 상대적으로 큰 술잔이 놓여 있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막걸리가 상품화되어 막걸리를 얻기 위해 따로 발효를 하고 있으니 막걸리가 남은 재료로 만든 술이라고 폄하라면 안된다. 가장 대중화된 장수막걸리의 도수는 6도, 지평막걸리는 5도.

커다란 막걸리 잔에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으로 김치 하나를 쭉 찢어 입에 넣어야 제법 술맛이 난다.


10도 이상의 막걸리는 작은 잔에 조금씩 음미하면서 마신다. 제사를 지낼 때 쓰는 목기나 도기로 마시면 괜히 자세도 고쳐 앉게 된다. 도수가 높은 막걸리를 마실 땐 고기나 기름기가 있는 전보다는 나물이나 야채스틱 같은 간단한 안주와 먹는 편이다.


섞박지를 적당하게 썰어 먹을 때도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 씻은 김치‘다. 적당히 익은 김치를 속만 털어낸 후 대충 씻어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썰어내 들기름에 살짝 무친 후 쪽파를 그 위에 송송 썰어 얹어내면 최고의 막걸리 안주가 완성된다. 들기름이 없으면 참기름도 좋다. 중요한 건 기름이 김치 맛을 잡아먹지 않도록 조금만 넣는 것이다.


자동차가 문제가 생겨 며칠 동안 운행을 못할 것 같다. 정비 견적서를 받고 나니 술맛이 절로 난다. 며칠 동안 운전을 못하니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닐 테고….


그런데 그 와중에 좋은 것도 있다. 끼니때마다 원하면 합법적(?)으로 식전주가 가능하게 됐다.


며칠 동안 나는 적당히 행복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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