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만들 수 없는 깊은 맛 - 황태해장국
점심 영업을 하던 시절, 황태해장국을 드시던 손님이 황급하게 부르기에 좋지 않은 예감을 가지고 달려갔다. 아니나 다를까 음식에 대한 불만제기였다. 황태해장국 안에 눈썹 크기의 검은 실 같은 게 발견 됐던 것!
일단 국그릇을 거둬 내고 죄송하다고 손님에게 말씀드린 후 다시 국을 내드렸다.
고마운 말이나 미안한 말은 망설이지 말고 즉시 해야 한다. 잘못함에 대한 인정은 빠를수록 좋다..
계산을 하며 식사에 방해를 드려 죄송하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더니 손님이 말했다.
“맛있게 먹다가 맘 상해서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조심하세요.”
나는 잘못을 빠르게 인정을 하고 새로 해드렸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실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의 맘을 내가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찌 됐든 잘못은 우리에게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손님이 나간 후, 눈썹크기의 검은 실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눈썹이나 머리카락은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게 나온 건지 알 수 없었다..
황태해장국을 준비하는 과정은 손이 많이 간다. 황태를 불린 후, 불린 황태의 살과 뼈를 분리하는데 그 과정에서 가시에 손이 많이 찔리기도 한다. 종이에 밴 상처가 기분 나쁘게 아프듯, 황태 가시에 손가락을 찔리면 꽤 기분이 상한다. 어쩔 땐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라는 생각이 들며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분명 있다. 바로 재료에 대한 이해이다..
손님의 황태해장국에서 눈썹으로 보이는 것이 나온 이후 며칠이 지나서야 나는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건 다른 게 아니고 황태 살에 붙어 있는 일부분이었다. 조금 더 먼저 알았더라면 손님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웠다. 결국 모든 건 나의 잘못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걸 누굴 탓하겠는가..
무엇이든 기본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음식의 기본은 그 음식을 구성하는 재료에 있다. 좋은 가격에 좋은 재료를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기본 중에 기본임을 다시 한번 새겼다.
술을 좋아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 때부터 황태해장국과 콩나물국 같은 해장이 되는 국을 자주 접했던 나는 성인이 돼서도 다양한 해장국을 섭렵했다.
여행을 가선 그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해장국을 새벽부터 찾아다녔으며 해장국을 맛있게 먹기 위해 전날 소주를 과하게 마시는 준비를 기꺼이 하곤 했다.
스물부터 혼자 여행을 많이 다니기도 했지만 직업적으로도 전국을 돌아다니는 직업을 거쳐왔기 때문에 다양한 해장국을 접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해장에 좋았던 해장국을 꼽는다면 단연 제천의 ‘올갱이해장국’이다. 이끼가 고인 물을 퍼 놓은 듯한 녹색의 국물에 은은한 된장의 향 그리고 푸르뎅뎅한 시금치가 빼곡하게 떠 있는 그야말로 비호감 절정의 그 해장국을 처음 마주하고는 알 수 없는 공포에 사로 잡혀 밥을 쉽사리 말지도 못했다. 곁눈질로 주변을 살펴보니 하나같이 주정뱅이들로 보이는 아저씨들이 소주 한 병을 놓고 올갱이해장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고 있었는데,
‘아! 나는 저 정도의 주정뱅이는 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눈앞에 해장국은 놓였고 속은 점점 뒤짚히고 있었다. 뜨거운 국물이 들어가면 좀 좋아지겠지라는 심정으로 덜덜 떨며 한술을 먹었다.
첫 느낌은 ‘엥? 이끼맛은 없는데?’였다. 그리고 몇 술을 더 뜨고 나니 은은한 된장향과 미묘한 다슬기 향이 느껴졌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청양고추를 추가하니 좀 더 먹을 만했다. 매운맛이 추가되니 목덜미가 축축해졌다. 알코올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해장국을 다 먹고 조금 걸었는데 한 시간 전만 해도 뒤짚힐 것 같던 속이 어느새 잠잠 졌다.
이게 진짜 어른의 해장이구나!
스물다섯의 어느 날이었다.
해장에 좋았던 해장국을 꼽으라면 단연 ‘올갱이해장국’이지만 가장 맛있었던 해장국을 꼽으라면 단연 ‘황태해장국’이다.
속초의 맛집 지도를 만들기 위해 속초에 일주일을 머물며 맛집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때 대포항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고 그야말로 충격에 빠졌었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황태해장국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는데 일단 콩나물이 들어가지 않았고 국물이 설렁탕처럼 뽀얗게 우러나 있었다. 한술을 먹었을 때 그 감동은 지금도 생생한데 ‘아 지금 내가 정말 정성을 먹고 있구나’라고 절로 느껴졌다.
소고기뭇국을 중심으로 점심 장사를 시작했던 시절, 손님의 70%가 매일 같이 찾아주는 손님들이었다. 6개월이 지나자 손님들이 찾는 횟수가 조금씩 줄기 시작했고 무언가 새로운 메뉴가 필요했다. 그때 ‘황태해장국’이 머리를 스쳤다. 사실 나에겐 속초의 ‘황태해장국’ 사장님에게 받은 비밀 레시피가 있었다. 사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다. 공개하자면 황태살과 들기름만 가지고 오랜 시간 볶아서 국을 만드는 것이 비결이었는데 이건 알고도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황태와 들기름의 양도 그렇지만 센 불로 볶다가 뭉근하게 오래 끓여내야 하는 조리 방법이 가정에서는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태살은 물에 불려 부드럽게 만든 후에 손으로 직접 가시를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만 손님들이 부드럽게 황태살을 먹을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가정에서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간단하게 8,000원이면 사 먹을 수 있었으니 그 정도면 가격대비 꽤 훌륭한 호사였던 셈이다. 점심 장사를 하지 않는 요즘도 종종 손님들이 황태해장국 정말 맛있었다고 저녁에 와서 얘기하곤 한다.
손님 중에 한 분이 함께 온 사람들에게 황태해장국을 가리키며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황태해장국이 속초에 있었는데 이 집이 이상하게 그 맛이 나.”
그분이 떠올리는 그 집이 내가 좋아했던 그 집인지는 알 수 없다. 속초에는 황태해장국집이 그야말로 널렸으니까… 하지만 속
손님 중에는 종종 그런 얘기를 하는 분이 있다.
“저는 원래 황태 안 좋아해요. 그런데 여기건 정말 맛있다니까요.”
요즘도 종종 그때를 생각하며 집에서 황태를 만들어 먹긴 한다. 하지만 좀체 그때의 맛이 안 난다. 적어도 10인분은 한 번에 만들어야 황태해장국의 깊은 국물이 난다. 둘이 먹으려고 2,3인분을 만드니까 영 맛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