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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를 담갔다.

장인어른의 무농사

by 조명찬

장인어른께서 직접 농사 지은 무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마침 냉장고에 있던 무를 가지고 장아찌를 만든 참에 받은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무 상자를 들어보니 꽤 무겁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이 무거운 박스를 들고 택배를 보냈을 생각을 하니 무 한 개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상자를 열어보니 맘이 더 짠하다. 어쩜 그리 예쁜 것으로만 골라 담았는지....

투박한 경상도 남자가 자신이 직접 키운 것 중에서도 귀여운 것들로만 잘 골라 담았다.


소일거리로 하는 농사지만 장인어른은 꽤 진지하다. 농작물에 애정을 쏟는 걸 보며 아내는 ‘우리가 클 때 저렇게 예뻐해줬으면 얼마나 좋아!‘라며 막내 특유의 투정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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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나에게 본관은 어디인지, 양친은 건강하신지 물어본 후, 그 외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소소하게 궁금했던 건 아내를 통해 물어봤고 나와 좀처럼 눈을 맞추질 않았다.


‘내가 맘에 들지 않은가?’하는 의문이 생겼고 그래도 이렇게나 거리를 두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다.


그날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요즘 장인어른은 나를 만나면 팔을 붙들며 묵은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군대이야기, 어릴 적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처음 봤던 무뚝뚝한 모습과 대조되며 절로 웃음이 난다. 10년이 세월이 우리를 꽤 가깝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요즘 장인어른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슬퍼진다.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럴 수도 있고 여든이 넘은 한 남자의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아 그럴 수 있다.

요즘 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믿음이 서려있다. 나는 분명히 그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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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를 담았다. 잘 익혀서 손님 상에 놓을 예정이다.

깍두기를 담은 무 생산자는 나의 장인어른이자 안동의 낭만 강태공, 이동칠 회장님이시다.

맛있게 드셔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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