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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요리의 기쁨 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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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찬 Mar 28. 2024

요리의 기쁨

밀가루가 없어도 괜찮아요 - 들기름두부전

두부만큼 근사한 재료가 또 있을까? 대파값이 난리인 요즘도 두부는 크게 오르지 않았다.

쉽게 살 수 있고 어느 요리에든 어울리고 때때로 두부 한 모만으로도 충분하니 두부는 생활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다작을 하지만 어느 역할이든 너무 잘 해내서 질리지 않은 배우같다.

엄마는 도시락에 두부를 자주 싸줬다. 두부를 기름에 부쳐 겉면을 바싹하게 만든 후 파를 잔뜩 넣은 양념장에 두부를 버무려 주었는데 이게 아침에 바로 먹으면 맛있지만 도시락으로 싸가면 물이 나와서 맛도 변하고 색도 맛없어 보이게 변해서 좋아하는 반찬은 아니었다. 종종 '또 두부야?'라고 반찬 투정을 하긴 했어서 요즘 들어 그게 참 미안하긴 하다. 엄마라고 자주 두부를 싸주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없는 살림에 그나마 영양이 많은 반찬을 먹이고 싶었을테고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맛있게 해주려고 노력했던 것일텐데 그때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가끔 백반집에서 두부부침이 나오면 식었던 식지 않았던 반가운 마음에 밥도 나오기 전인데 성급하게 먼저 젓가락이 간다. 하지만 역시 엄마가 해준 것만큼은 못하다. 엄마의 적당한 간에 내가 길들여진 것일까? 엄마는 원래 적당한 간을 잘 맞추는 사람인 것일까?

요즘들어 엄마의 간이 조금씩 짜게 느껴지는 걸 보면 엄마는 그대로 인데 내가 변한 것 같기도 하다. 뭐든지 그럴 것이다. 엄마는 그대로고 내가 변한 건데 나는 자꾸 엄마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두부를 좋아하기 시작한 건 본격적으로 등산을 다닌 이십 때부터 인데 산행을 마치고 손두부에 적당히 익은 김치, 그리고 막걸리 한 모금이 그렇게 시원하고 좋을 수 없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 때여서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정도인데 정말 맛있다고 나를 속여가며 느끼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산에서 파는 손두부는 슈퍼에서 파는 두부와 확실히 맛이 다르긴 했다. 콩의 고소함이 깊게 응축된 맛이었고 시중에 파는 두부처럼 입안에서 부드럽게 잘리지 않고 부서지며 퍼지는 질감이 특히 좋았다.

두부가 비쌀 수 있다는 것도 산에서 처음 알았다. 도봉산에 올라가는 길에 손두부 가게가 있어서 사장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를 불러 두부 가격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사장님 이거 한 모에 얼마에요?

-두부 비싸요!

가격을 물어봤는데 비싸다는 대답을 들었던 것도 처음인데다가 두부가 비싸봤자 두부지 내가 두부 한 모 못사먹을 사람으로 보이는가 싶어서 당황을 하고 기분도 나뻐서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따가 두부가격을 물어만 보고 지나쳤던 사람이 많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다시는 여기서 안 사먹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도봉산을 지날 때마다 가보게 된다. 일행이 있으면 진짜로 비싼 두부 사준다며 데려가서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풀어내면서 말이다.

나잇살을 관리하기 위해 식단에 신경쓰고 있는 아내와 나는 요즘 두부를 즐겨먹고 있다. 밥 대신 반찬으로 먹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두부만 왕창 넣어서 현미밥과 비벼 먹기도 하고 계란에 살짝 부쳐 막걸리 한잔을 마시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들기름을 잔뜩 넣어 두부 한모를 팬에 부쳐 먹는데 이게 아주 별미다. 두부 부침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두부를 잘라 하나 하나 뒤짚어 가며 부쳐야 되지만 전처럼 잘 펴서 부치기만 하면 손이 많이 가지 않아 요리하기도 쉽다. 요리 순서는 다음과 같다.

-두부 한모를 준비해 손으로 물기를 꼭 짠다. 이때 두부를 너무 많이 쥐면 수분도 잘 안빠지고 두부도 손에서 빠져 나갈 수 있으니 한모를 4등분해서 물기를 뺀다.

-늘러붙지않는 코팅 프라이팬을 잘 달구고 물기를 뺀 두부를 펼쳐 팬 위에서 두부의 수분이 증발할 수 있도록 해준다.

-두부가 고슬고슬해진 느낌이 있으면 두부 위로 들기름을 아낌없이 부어준다.

-들기름이 두부 사이로 들어가 프라이팬의 바닥과 만나 두부가 바싹하게 익었다 싶으면 접시에 담아 쪽파를 얹어 준다.

밀가루가 없어서 두부가 응고 될것 같지 않지만 들기름이 두부를 접착 시키기 때문에 부서지지 않고 바삭하게 잘 구워진다. 중요한 건 들기름인데 두부 사이 사이에 침투한 들기름 특유의 맛을 느끼려면 무조건 들기름을 써야 한다는 것. 이 요리만큼은 식용유나 올리브유는 비추천!

개나리가 폈다. 봄 꽃을 보러 산에 가봐야 겠다. 그리고 비싼 두부도 오랜만에 사 먹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