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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과 조연

메뉴를 준비하며

by 조명찬

며칠 전, 장을 보다가 시장에 냉동 게가 싸게 팔길래 몇 팩을 사 왔다.

그날 바로 한 팩을 해동해서 게장국을 끓였다. 멸치육수에 게를 듬뿍 넣고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고춧가루를 넣고 배추와 호박, 양파를 듬뿍 넣고 끓여냈더니 매장 안에 단내가 그득했다.


그날의 게장국은 제육정식에 나가는 콩나물국 대신 끓인 것이었는데

아내가 맛을 보더니 한 마디를 했다.


"당연히 맛있지. 그런데 너무 퀄리티가 높아. 메뉴 이름은 제육정식인데 이러면 제육이 죽어버리잖아."


실컷 공을 들여 끓였더니 핀잔의 말이 돌아와서 적지 않게 당황하긴 했지만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사이드 메뉴는 메인 메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적당한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밸런스가 무너지면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메인 메뉴의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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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실컷 약속을 해놓고

오늘 다시 한번 게장국을 끓였다. 오늘 같이 추운 날에 손님들이 뜨끈하게 한 그릇 먹고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주 가끔은 주연보다 주연이 뛰어나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안에 가면 '게국지'라고 해서 배추를 듬뿍 넣고 담백하게 끓여낸 토속 음식이 있다. 게가 들어가지만 배추의 시원함이 더 도드라져서 처음에는 조금 심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게국지'의 맛을 닮은 '게장국'을 끓였다. 몇 분이라도 그 맛을 떠올린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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