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 올라 다다랐구나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28일 차

by 달여리
비야프랑카델비에르소~오세브레이로(≈27.76km)


다른 방에서 울린 알람 소리에 눈이 떠졌다. 다섯 시 반이었다. 일어나기 싫은 마음을 겨우 붙들고 침대에서 등부터 뗐다. 깊이 들지 않아 자주 깬 잠이었다. 벽이 얇은 지 코가 시릴 정도로 추운 밤이었다. 서둘러 옷을 껴입고 몸을 풀었다. 이런저런 준비를 얼른 마치고선 6시 20분께 출발을 했다. 오늘의 길은 긴 데다 심지어 높다. 해발고도 1,300m 남짓의 산악마을 오세브레이로(O Cebreiro)까지 올라가야 한다. 갈라시아(Galicia) 지방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자 프랑스길의 마지막 큰 고비다. 노란 화살표의 창시자인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Elías Valiña Sampedro) 신부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순례길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그의 본거지가 바로 이 오세브레이로이기 때문다. 그의 흔적도 무덤도 흉상도 모두 여기에 있다.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몽글몽글 피어오른 입김에 비해 막상 새벽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큰소리가 나는 강물을 따라 걸었다. 10분도 안 돼 마을의 마지막 가로등을 벗어났다. 오르막은 진작 시작됐다. 물소리를 따라 도로 곁을 계속 오른다. 숲 냄새가 짙었다. 빛 하나 새어 날 구석도 하나 없이 완전히 어두운 길이었다. 동그란 랜턴 빛이 유일한 안내였다. 어둠의 도로 위로 반사판만 둥둥이 떠다녔다. 그 누구도 오가지 않는 도로는 적막했다. 보이지도 않는 계곡 소리만 가까이 가까이 자꾸만 더 깊어져갔다.


의외로 중간중간 길은 평평해지기도 짧게나마 내리막도 있긴 했다. 하지만 결국엔 산을 넘는 일, 오르니 일찌감치 땀이 났다. 한 번씩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무리 어두운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구분할 정도는 됐다. 별과 달이 거기 있었다. 음흉한 눈썹달이 한쪽으로 아래를 흘겨본다.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주시했다. 숨과 발이 제멋대로 묘한 박자를 만들어냈다.

<숲>

풍경없는 새벽이라 생각이 많아졌다. 쓸데없는 질문과 답이 없는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토록 걸으면서도 오히려 걷는 게 좋아졌다니, 새삼 신기했다. 가벼운 산책 정도야 원래도 좋아했지만 등산같이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은 진저리치듯 싫어하던 나였다. 이 관심이 오래 지속될지 아무래도 자신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지금 당장 걷고 있기에 관성처럼 '일시적으로' 걷기에 마음이 쏠려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쩌랴. 자꾸만 나도 모르게 다음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올 순례길의 계절을 계획하고, 아내와 걷고 있는 5년 후의 CTC를 상상한다. 어느 나라에 어떤 트레킹 코스가 있는지 찾아보고, 비용과 시기는 어떨지 가늠을 해보곤 했다. 가깝게는 코리안둘레길이라든가 지리산둘레길이라든가, 멀게는 튀르키예 리키안웨이나 뉴질랜드 밀포드트렉, TMB나 EBC... 그러다 영화 와일드의 PCT에까지 다다르자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 걷는 걸 조금 좋아하게 된 것뿐이지, 제대로 된 트레커가 될 자신은 도무지 없었다. 거의 공상 같은 생각에 빠져 성급한 암흑의 길에 잠겼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의 고리를 딱 끊었다. 타닥타닥, 걸음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산을 통과하며 마을들>

7시 20분, 첫 마을 Pereje에 도착했다. 고요에 잠긴 마을을 그대로 통과했다. 지대가 조금씩 높아지며 시야가 일찍부터 트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랜턴 없이 걸을만해졌다. 부지런한 산새들도 일찍 깼나 보다. 소란스레 재잘거리며 낯선 걸음에 화음을 넣는다.


흐리나 날이 밝는다. 8시, 두 번째 마을 Trabadelo로 들어선다. 다행히 문 연 bar가 있어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초코레또 빵과 카페콘레체를 시켰다. 아무래도 이건 순례길 아침 식사 최고의 조합이 아닐까 싶었다.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그랬다. 사실 마땅할 다른 대안이 또 없기도 하다. 8시 반, bar에서 나와 다시 걷는다. 강물 소리와 어우러진 산속 마을의 느낌이 썩 괜찮았다. 햇빛이 날 듯 말 듯했다. 동네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도로 곁길이지만, 산으로 둘러싼 풍경 덕에 걷기가 괜찮았다. 차도 거의 오가지 않았다. 강을 계속 거슬로 오른다. 지속적인 오르막이나 아직 힘들 정도로 가파르지는 않았다. 간판에 별이 세 개 박힌 호텔을 지나자 곧 세 번째 마을 La Portela de Valcarce를 만난다. 9시 반이었다. 작은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에 들러 세요(Sello)를 받았다. 순례자여권(Credential)을 꺼내기 위해 배낭을 내렸다 다시 메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빈칸을 채워가는 보람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산을 오르며 도로-마을-강-숲숲숲>

거의 연달아 두 개의 마을을 지났다. 9시 45분 네 번째 마을 Ambasmestas, 10시엔 다섯 번째 마을 Vega de Valcarce였다. 입구에 부처상이 놓여있어 특이했던 Iglesia de San Pedro 성당과 커튼 사이 빛이 아늑했던 Iglesia de Santa Maria Magdalena 성당도 차례로 지났다.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마을들이 예뻤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하룻밤쯤 머물러보고 싶었다. 다시 bar에 들러 쉬었다 간다. 커피 한 잔, 짧지만 긴 여유를 즐겼다.


구름이 걷히더니 햇빛이 갑자기 환했다. 밤을 (전문적으로)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이 몇몇 보였다. 소들의 슬픈 종소리가 아름답도록 울려 퍼졌다. 계곡과 산과 나무가 평화롭게 거기 있었다. 어쩐 일인지 순례자들은 거의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했지만 마음만은 고요히 편했다.


10시 55분, 여섯 번째 마을 Ruitelán을 지났다. 11시 10분, 조금 더 걸어 일곱 번째 마을 Las Herrerías에 다다랐다.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일관된 조끼차림에 죄다 노란색 봉투 같은 걸 들고 있었다. 제주도의 클린올레처럼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 분들이셨다. 멋진 그분들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어 정중히 허리를 숙여 화답했다. 어디까지 가실는지, 꽤나 길게 우린 함께 걸었다.

<하늘 빛 마을 표정>

가까이 풀 뜯는 소들이 일일이 눈을 맞춰준다. 오른쪽 발목이 아파왔지만 걷는데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일곱 번째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오르막의 경사가 갑자기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아득했지만 낙담하지는 않았다. 웬만하면 일정한 템포로 꾸준히 걸어 오르려 했다. 한 땀 한 땀 그리 정성 들여 발을 내딛는데, 어디서 나타난 건지 그 맘도 모르고 쏜살같이 곁을 지나는 이탈리아 형님들이 있었다. 활짝 웃으며 양손 응원을 해주시는데 화답은커녕 멋쩍은 웃음밖에 나지 않았다. 가벼운 그들과 달리 이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땀범벅에 숨이 가득 찼다. 그래도 아직까진 오를 만하다, 그런 착각의 생각을 끊임없이 주입해야 했다.


도로를 오르다 길은 숲으로 빠진다. 평탄한 길에 산림욕을 즐기듯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비탈진 진흙길 오르막이 숨 막히게 지그재그로 이어졌다. 끝날 듯 끝나지 않아 더없이 힘에 겨웠다. 금세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아무리 버거워도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속도도 되도록 늦추지 않았다. 나는 기계다. 나는 기계다... 중얼거리며 같은 간격으로 꾸역꾸역 올랐다. 거친 숨에 땀이 바닥으로 뚝뚝뚝 떨어졌다.

<가파르고 깊숙한 숲길을 지나 점점 높은 곳으로>

12시, 그 길을 다 올라 여덟 번째 마을 La Faba에 도착했다. 이 높은 곳에 진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bar가 하나 열려있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깔리무초를 시켰다. 전망대처럼 확 트인 곳에 앉아 붉은 수혈을 맞았다. 태양열을 채운다. 눈을 감고 광합성을 하려 했다. 땀이 식으며 추워졌지만, 햇빛 쬐길 포기하지 않았다. 높은 곳의 신선한 바람이 상쾌했다. 모조리 빠져나갔던 힘이 얼마간 다시 차올랐다. 서늘하니 소름이 돋을 때쯤에야 어쩔 수 없다는 듯 겨우 일어났다.


어차피 길은 계속 오르막이었다. 마지막 마을 La Laguna de Castilla을 지나자, 능선을 따른 오솔길로 이어졌다. 더 이상 머리 위를 뒤덮은 숲도 없었다. 어느덧 훤한 풍경이 저만치 아래로 흘러 지난다. 도통 이 길의 끝에 마을이 있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헛헛하고 적막했다.


높이 오를수록 깊이 들어갈수록, 날씨가 점차 흐려졌다. 급기야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안개마저 짙어갔다. 길은 결코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영겁의 시간이 육십 분의 일초 단위로 흘렀다. 훌쩍훌쩍. 우는 건 아니었다. 눈꺼풀에 맺힌 땀을 훔치고 자꾸만 흐르는 콧물을 들이켰다. 힘들긴 힘들다. 꾹꾹 지르밟듯 앞으로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죽은 고사리 밭 사이사이를, 좀비처럼 파김치가 되어 올랐다.

<오세브레이로 마을과 성당 그리고 엘리아스 발리냐 신부님>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오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다다르는 길. 통과하는 나무숲 어디선가 아코디언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순간 비현실적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안개와 버무려져 더없이 몽환적이다. 전통의상을 제대로 차려입으신 한 연주자가 그 길의 가운데 서 계셨다. 어찌할 줄을 몰라 가벼운 목례만 하고 곁을 스쳐 지나쳤다. 약간의 기부금이라도 냈으면 좋았을 텐데, 한참 지나고 나서야 후회했다. 그땐 그럴만한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었다.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낯선 익숙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먼 과거에 기적이 일어났다는 성당 Santuario de Santa María a Real do Cebreiro에는 산티아고 길을 정비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엘리아스 발리냐 삼페드로(Elías Valiña Sampedro) 신부님의 동상과 무덤이 있었다. 아주 잠시만 둘러봤다. 붉은 초와 짙은 조명을 뒤로하고 공립 알베르게로 우선 향했다. 무엇보다 당장 지쳤고 또 추웠다.

<잠시 하늘이 갰다. 공립 알베르게에서 바라본 늦오후의 전망>

1시 50분, 체크인을 완료했다. 씻고 빨래하고 짐까지 정리하고 나니 순식간에 3시였다.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맥주로 입가심도 했다. 성당을 두 번 정도 다녀왔다. 몇 안 되는 상점들도 모두 구경해 본다. 이제 막 도착해 식사를 하고 계신다는 어제의 그 한국 분과 연락이 닿아 잠시 자리를 함께 했다. 밤은 금방 찾아왔다. 누가 고지대 아니랄까 봐 칼같이 추운 바람은 눈뜨고 코 베일만큼 매서웠다.


산티아고까지는 이제 일주일 남았다. 이게 무슨 심보인지, 빨리 끝났으면 하면서도 한편으론 섭섭했다. 여차저차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순례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이따금 믿기지 않는데, 그마저 이렇게 끝나간다니. 다 걷고 나면 이 모든 기억과 과정과 상처와 감정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길 위에 선 지금만이 유일한 진실인 양, 매 순간을 감사히 소중히 오롯이 여겨야 했다. 그러니 매일밤 잠들기 전 어떻게든 이 기록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사실 그건 아주 필사적일 만큼.


앞으로 남은 프랑스길에서 여기보다 높은 곳은 더 이상 없다. 그래, 오르느라 고생했다. 힘들었어도 뿌듯함이 있다. 이곳 풍경이 참 좋다는데, 잔뜩 흐린 날씨 탓에 야경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별도 없이 잔뜩 낀 안개에 밤은 온통 춥기만 하다. 얼른 잠에나 들길 바랐다. 하필이면 침대가 출입구 바로 옆이라 어쩔 수 없이 수선스러웠다. 침낭을 한껏 끌어올려 스스로의 온기를 최대한 채웠다. 눈을 감고 그릉그릉, 소음과 상관없이 바람처럼 금방 잠들 수 있었다. 하긴 그럴 만큼 피곤했다.



2024.10.27.

걷기,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

28일 차(누적거리 613.16km)

오늘 하루 48,163보(28.9km)







*어느덧 2025년 한 해의 마지막 주가 되었네요. 아직 남은 3일 동안 모두 부디 건강한 마무리를 지으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도 이 여정을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닿았다면, 구독라이킷으로 따뜻한 발자국을 남겨 주세요. 큰 힘이 된답니다. 해가 바뀌어도 비수기 3편, 산티아고순례길-프랑스길b월/수/금 오전 8시마다 업로드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올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에 올 해의 마지막 글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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