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아일랜드 위클로웨이 6일 차
모인~다잉카우(≈14.0km)
다리가 좋지 않았다. 오른쪽 발목보다 왼쪽 무릎이 더 말썽이었다. 아무래도 절뚝거리느라 무리를 했나 보다. 욱신거리는 고통에 자주 깼다. 결국 여섯 시에 완전 눈이 떠졌다.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삼십 분을 더 미적거렸다.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가 신선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그렇지 못했다. 공기가 차가웠다. 이불속을 떠나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굳은 결심처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커튼을 열어젖히니 파란 하늘이 새어든다.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날씨가 부디 변덕 부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건조기 덕에 빨래가 말끔히 다 말랐다. 여기저기 던져둔 짐들을 모아 꼼꼼히 가방을 챙겼다. 물을 끓여 커피도 마셨다. 어제 삶아 놓은 계란과 준비된 시리얼로 아침을 챙겨 먹었다. 여유만 된다면 여기 하루 더 묵고 싶었다.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이 새들과 함께라면 온종일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주인장 아저씨는 약속보다 15분 늦게 오셨다. 굿모닝 인사가 이토록 무심하고 다정할 수가! 늘 봤던 것처럼 차에 짐을 실었고, 항상 그랬던 듯 목적지로 향해갔다. 어제의 픽업 장소까지는 딱 15분이 걸렸다.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졌지만, 마치 내일 또 만나리라는 듯 당연한 뉘앙스의 인사였다. 미소가 났다. 그래, 다음이 있다면 이 숙소는 꼭 다시 묵고 싶다.
길은 바로 시작됐다. 시골 농장 사잇길이었다. 하지만 얼마 걷지도 못하고 길을 멈춰섰다. 발목이 아파 결국 신발을 벗어 확인을 해야 했다. 두 겹으로 신었던 양말 중 두터운 울양말 하나를 벗었다. 스패츠도 벗어 발목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했다. 그랬더니 한결 나은 것도 같았다. 그것도 잠시였다. 이젠 왼쪽 무릎이 아파왔다. 통증은 조금씩 심해졌다. 그에 따라 걸음도 점차 더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일랜드의 여유로운 시골 정취가 느껴지는 길이었다. 나뭇잎 사이의 햇빛이 생기로웠다. 어디선가 나는 새소리가 경쾌했다. 10시부터 길은 숲으로 이어졌다. 약간의 오르막, 담을 넘어 계속 간다. 좁은 길을 통과하다 거대한 말과 바로 맞닥뜨렸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어찌할 바가 없어 기다렸다. 가만히 눈인사를 했더니 착하게도 길을 비켜줬다. 곧 드러난 초원. 그 위로 풀 뜯어먹는 말들이 꽤나 많다. 아, 이 큼지막한 똥들이 다 너희들 거였구나! 웅덩이 같던 그것들을 잘 피해서 걸었다. 신기하게도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내 똥과는 질과 양이 달랐다.
비 없는 하늘이 반갑다. 만연한 빛이 눈 부셨다. 어제와 다른 날씨가 풍경을 완전히 달리 놓았다. 그동안과 아무리 같은 길이 아닐지언정, 이토록 분위기가 달라질 순 없었다. 역시 날씨에 따라 풍경도 변한다. 하물며 마음에 따라서 길의 감정도 바뀐다. 이 길을 걸은 모두가 얼마나 또 다르게들 느낄까. 개개인의 차이뿐 아니라 날씨와 계절, 몸의 상태나 동행 여부에 따라 아주 천차만별일 것이다. 무엇이든 한 번 경험했다고 아는 게 아니듯, 이 길도 마찬가지다. 이 날 이 순간 이 상태로 걷는 일개의 '나'인 경험이 결코 이 길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런 감각을 걷는 내내 잊지-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눈앞에 보인 저 언덕을 넘나 했는데 옆의 샛길로 빠진다. 다 좋은데 너무 진흙이고 똥밭이었다. 뭔가를 비스듬히 넘어가는 것 같긴 했다. 그래도 크게 가파르진 않아 다행이었다. 시야가 트여있는 편이어서 오히려 걷기 좋은 편이었다. 철책을 넘어 고사리밭 언덕을 비껴간다. 그늘에서 쉬던 양이 발걸음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갔다. 다리라도 다친 건지 절뚝이는 모양새가 마치 꼭 나 같았다. 같은 처리라 더 속상하고 미안했다. 소리 내어 사과했다. 이 마음을 받아주었을까. 이미 풀 숲으로 사라진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11시. 고사리 언덕은 이미 다 지나온 듯했다. 갈림길의 표지판 아래 큰 바위가 있어 겸사겸사 좀 쉬어 가기로 했다. 걸어갈 방향에 양의 무리가 잔뜩 길을 막고 있었다. 그들이 비켜주길 기다리며 간식을 꺼내 먹었다. 구름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먼 풍경을 바라보며 쌕쌕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무릎의 통증이 생생했다. 내 몸이 일으키는 반응에 이토록 예민했던 적은 없었다. 고통마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지 않은들 다른 방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지나갈 감각에 밀려 지금의 시간을 빚지고 싶진 않았다. 이 길에서의 순간은 평생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소중하게 여겨야 했다. 그러려고 부단히 애썼다.
15분을 쉬는 사이 똑독한 양들이 알아서 모두 길을 터주었다. 다시 출발한다. 5분쯤을 걷자 농장 길에서 빠져 숲길로 든다. 햇빛에 남겨진 나뭇잎 그림자가 이뻤다. 아마도 오늘이 위클로웨이에서 경험한 가장 좋은 날씨가 아닐까 싶었다. 숲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농장 사잇길로 길은 길게 길게 이어졌다. 직접 여닫아야 하는 농장문을 여덟 개 정도 지난 것 같았다. 게 중엔 기울어지고 부서져 잘 열리지 않는 문들도 있었다. 킷캣을 하나 까먹으며 당 충전도 했다. 12시 15분쯤일까, 어젯밤 묵었던 숙소 근처의 길목을 통과했다. 그건 티나헬리(Tinahely) 인근을 지나고 있다는 뜻이었다. 다리와 도로를 건너 다시 숲이다. 초입에 벤치가 있어서 이참에 쉬어가기로 했다. 점심으로 삶은 계란 두 개와 에너지바를 먹었다. 무릎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길은 계속 나아가야 했다. 더 이상 무를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12시 반, 다시 걷는다. 약간의 계단에 절망했다. 마을길을 올라 다시 농장 사잇길을 이었다. 곳곳에 소와 양이 잔뜩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똥들은 이번엔 모두 소들의 것이구나. 잘못 밟았다간 발목까지 푹 잠길지도 몰랐다. 조심조심 걸었다. 검고 거대하기에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구슬 같은 양똥이었다. 흙과 똥이 거의 반반이었다.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만 잊고 흙처럼 밟을 수밖에 없었다. 흙과 감촉마저 비슷했다.
산보다는 농장과 언덕이 많았던 오늘의 길. 그런 동물들이 이제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얀 씨앗이 바람 따라 폴폴 날렸다. 햇빛에 반짝이며 멀리멀리 떠내려갔다. 마지막 농장을 빠져나오자 길은 도로로 합류한다. 차선 없이 좁다란 시골 도로길이었다. 높다란 고사리가 사방으로 솟아 있었다. 대체로 지루한 이런 길이 계속 됐다. 절뚝임은 더 심해졌다.
2시쯤 앉을만한 벤치를 겨우 만났다. 뮬리나커프(Mulinacuft)라는 동네였다. 가방을 던지고 몸을 뻗었다. 제대로 좀 쉴 필요가 있었다. 그간 봐왔던 것 중에 가장 마을다운 분위기였다. 지나가는 차들마다 손을 들어 내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고통을 잊게 만드는 그 반가움에 따스한 힘이 불현듯 솟았다. 그런 아일랜드인들의 친절함이 참 좋았다. 더블린부터 지금까지, 사람에 대한 기억은 모두 그랬다. 고개를 올려 가만히 햇빛을 쬤다. 푸근히 포옹을 받는 것만 같아 마음이 한껏 푸짐해졌다.
30분간 따사로이 쉬었다. 쉬는 건 좋은데 쉬고 나면 무릎이 더 아팠다.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찌저찌 도로길을 따라 걸었다. 오늘의 종점 다잉카우(The Dying Cow)까지는 25분이 더 걸렸다. 길의 끝이 펍이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여기서 오후 4시 숙소 픽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 내일 이틀간의 숙소는 위클로웨이 끝점 근처에 위치한 B&B로 잡아두었다. 모든 차량 이동을 서비스해 주시기로 했다. 위클로웨이 패키지라는 명목으로 모든 식사도 제공해주는 조건이었다. 아직 시간이 넉넉히 남았다. 위클로웨이 트래커들의 성지 다잉카우에서 멋들어진 기네스 한 잔을 빼놓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작은 공간 안에 정말 많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자, 사람들의 추억이었다. 근사했다. 술이 금지되던 시절, 소가 아프다는 거짓 핑계로 이곳에 모여 맥주를 마셨다 했다. 다잉카우란 애칭은 거기서 나온 이름이었다. 원래 이 bar의 이름은 Tallon's Pub이라나 뭐라나. 한참을 기다려 나온 바텐더는 백발 지긋한 할머니셨다. 여쭤보진 않았지만 어쩌면 저분이 Tallon이실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기네스 한 잔을 시켜 시원하게 들이켰다. 안성맞춤 목 넘김. 원래 좋아하지 않던 기네스를 본토에서 아주 제대로 사랑하게 됐다. 아일랜드에서 먹는 기네스 생맥주가 다르긴 진짜 다르다. 여길 떠나면 다시 맛보지 못할 맛이었다. 이것 때문이라도 아일랜드에 다시 오고 싶을 것 같았다. '기네스 먹으로 아일랜드 간다.'라는 속담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나직한 이 공간에 큰 배낭을 멘 세 명의 트래커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오늘 걷는 사람이라곤 단 한 명도 못 만났는데 여기서 이렇게 한꺼번에 만나게 됐다. 말 많은 프랑스 청년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낸다. 다리 문제를 이야기하니 특별 처방법이라며 무언가를 알려준다. 무릎을 톡톡톡 두드리는 식의 마사지였는데 딱히 소용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꼭 써먹어보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건 선의 거짓말이었다. 비박을 하며 걷는다 했다. 자유로운 행색마저, 그들이 멋져 보였다. 근데 맥주 대신 차를 마시더라. 의아해 물어보니 꾹 참은 기네스는 완주한 뒤 원 없이 먹을 거란다. 바보들. 다잉카우의 기네스를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안타까움에 속으로만 끌끌 혀를 찼다.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일찍 픽업을 오셨다. 'KIM, Korean' Pub 안으로 오셔서 내 이름이 적힌 쪽지를 보여주신다. 인상이 좋으신 아저씨와의 어색한 첫인사. 잘 통하지 않는 대화를 드문드문 나누며, 오늘과 내일 이틀간의 숙소로 향한다. 가다 보니 위클로웨이의 종점인 클로니걸(Clonegal)도 지난다. 한참을 달려간 곳은 아주 근사한 2층 주택이었다. 기다리시던 아주머니께서 호탕한 악수를 청하셨다. 안내를 받아 올라간 2층 방은 정말인지 깔끔했다. 와, 이런 게 진짜 B&B지! 아일랜드 진짜 가정집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이틀 간의 아침, 저녁 식사와 점심 도시락까지 포함된 위클로웨이 패키지를 운영하셔서 내겐 더없이 좋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다 빨았다.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한동안 좀 쉬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편하다. 깨끗이 씻고 누운 내 몸은 풍경보다 더했다.
6시 반,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드렸다. 들어올 때만 해도 무섭게 짖던 검은색 강아지 데이지가 이제 순하게 손길도 받아줬다. 방으로 올라와 아무 노래나 틀어놓고 이제 누워 쉰다. 내일은 25km의 긴 여정. 대신 무거운 가방은 놓고 갈 수 있었다. 익히 경험한 연박의 장점이었다. 왼쪽 무릎의 상태는 심각했지만 진통제를 먹는 것으로 처방을 대신했다. 안티푸라민은 내일 떠나기 전 바르기로 했다. 방이 너무 깔끔해 냄새라도 밸까 왠지 조심스러웠다. 예의상 꾹 참았다.
내일이면 위클로웨이가 끝이 난다. 아직은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귀찮아서 AI에게 맡긴 추천곡 리스트가 다 좋았다. 감정보다 시간에 집중했다. 무릎에게 조금만 더 힘내달라 부탁했다. 잠이야 또 잘 자겠지만, 아무래도 내일의 길이 걱정됐다.
2024.08.29.
걷기, 위클로웨이 6/7
26,014보(18.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