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아일랜드 위클로웨이 5일 차
글렌멜류어~모인(≈22km)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자고 있는 룸메이트들을 위해 최대한 조심조심 짐을 쌌다. 나머지는 그럭저럭 말랐는데 두터운 등산양말은 여태 축축했다. 어쩔 수 없었다. 가방에 대충 널고 가기로 했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고선 일찌감치 택시를 기다렸다.
8시 40분, 택시가 왔다. 약속보다 5분 일찍 오셨다. 반가운 아침 인사를 나눈 뒤 곧장 글렌멜류어로 출발했다. 기사분 말씀이 글렌다락이 원래 습해서 다른 지역보다 비가 더 자주 온다고 하신다. 이제 막 학기가 시작해서 거리에 사람이 더 없을 거라고도 하셨다. 때마침 길 건너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눅눅한 글렌다락을 벗어나고 있었다. 드라이빙 풍경이 시골의 정취를 잔뜩 풍겼다. 작년 렌터카 여행으로 다녀온 폴란드 자코파네 풍경이 문득 떠올랐다. 한국에 있을 아내 B를 생각하며 아주 잠시 감상에 젖었다.
15분 남짓을 달려 도착, 서로의 행운을 빌며 헤어졌다. 택시가 떠나자마자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가방에 커버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9시, 오늘도 길은 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랏, 갑자기 오른쪽 발목 뒤편이 아프다. 삐거나 그럴만한 일은 없었는데 도통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게 온종일 길을 못살게 괴롭혔다. 점점 제대로 걷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었다. 예정된 길은 계속 나아가야만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길마저 막혀있었다. 벌목 중이니 돌아가라는 표지였다. 덜렁 안내표 하나만을 믿고 확인할 수 없는 길을 올라야 했다. 당연하게도 물어볼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해쳐진 숲이 나왔다. 벌목된 숲의 끄트머리에 임시로 만든 진흙길이었다. 보기보다 상당히 가팔랐다. 길이 아닌 길로 등산 아닌 등산을 했다. 원래라면 사람이 다닐 일이 없는 곳이다. 땀이 비보다 더 쏟아졌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은 있었다. 구불구불 오르는 임도를 가로지르는 방향이었다. 원래의 길보다 질러가는 지름길인 게 분명했다. GPS가 분명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9시 반, 원래의 위클로웨이 길인 임도까지 올랐다. 발목의 상태를 부여잡으며 겨우겨우 다 왔는데, 또다시 오르막이어서 난감했다. 바닥만 보고 걸었다. 걸음 따라 머리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안경에 습기가 찬다. 눈에 뵈는 게 점점 없어졌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온몸은 폭우처럼 축축했다. 길이 잠시 평평해질 때마다 안도했다. 숲에서 야생동물소리가 나는 것만 같아 바짝 긴장이 됐다. 쭉 뻗은 자갈길 임도 그 아래로 글렌멜류어 마을이 보였다. 참다 참다 우비를 벗었다. 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빨지 않은 옷에서 쉰 내가 났다.
다시 비가 내린다. 주섬주섬 우비 입느라 길을 잠시 놓쳤다. 임도에서 깊은 숲길로 빠졌다. 갑작스레 미지의 세계로 들어섰다. 초록색 습기를 통과하는 그 길은 음산하면서도 신비로웠다. 그리고 꽤나 미끄러웠다. 그 구간이 그리 길지 않아 아쉬운 마음마저 들었다. 금세 임도로 들어섰다. 비는 또 그쳤다.
10시 20분. 벌목이 한창인 숲, 그쳤던 비가 와락 내린다. 부서진 나무 조각 벌판을 지나 열심히 길을 올랐다. 완만한 경사도 정도껏, 이토록 계속되면 결국 힘에 부치고 만다. 어느새 또 잦아든 비. 올 거면 차라리 계속 오지. 내내 비는 약 올리듯 반복됐다. 그칠 때면 햇빛까지 났다. 하지만 완전히 그치지는 않는다. 결코 방심할 수가 없었다. 우비를 벗었다 입었다 반복했다. 땀 때문에 더 곤욕이었다.
아래서 본 언덕들 중 그 어딘가를 지금 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정보를 종합해 보건대 지금 걷고 이곳의 이름은 아마도 슬리브메인(Slievemane). 10시 55분, 드디어 정상에 다다랐다. 더 이상의 오르막은 앞서 보이지 않았다. 뒤로부터 왼편으로 펼쳐진 시야가 넓고 시원했다. 숲에서는 옅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초록 들판 군데군데 햇빛도 더러 비친다. 저쪽은 햇빛, 여기는 차가운 그늘. 뭔가 억울했지만 어쩌랴, 먼발치 햇빛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젖었던 몸이 식으며 잔뜩 추워졌다. 부지런히 걸어 몸을 다시 데워야 했다. 마음과 달리 몸은 잘 나아가지 않았다. 발목은 여전했고 조금씩 더 절뚝였다.
오늘도 핸드폰이 터지지 않는 구간이 꽤 많았다. 다행히 AllTrails 어플의 위성 GPS는 그나마 잘 잡혔다. 안내표지를 놓치는 경우도 왕왕 있어 길의 방향을 잡는데 상당히 도움이 됐다. 그러니 위클로웨이에서 GPS는 필수품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특히 나처럼 완전한 이방인에게는 더 그렇다.
도로를 걷다 숲으로 빠지고 다시 도로로 나오는 그런 길이 반복됐다. 어떻게든 걸어갔다. 그러다 결국 11시 40분께 어느 숲의 입구에서 더 이상 걸을 수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발목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결국 길을 멈추고 신발을 벗어던졌다. 질척거리는 바닥이지만 바닥에 널브러지듯 누웠다. 몸 상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그저 난감할 따름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겸사겸사 점심도 여기서 해결을 한다. 불안한 마음으로 일단 허기를 채웠다. 조심스레 발목을 이리저리 돌려봤다. 발을 앞쪽으로 당기는 건 괜찮은데 뒤로 밀었을 때가 찌릿찌릿 너무 아팠다. 무리해서일까. 삐끗한 적은 없기에 고통의 연유를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지. 할 수 있는 거라곤 발목의 근육을 최대한 풀어주는 것뿐이었다. 안티푸라민을 꺼내 덕지덕지 발랐다. 오늘의 목적지까지 어떻게든 걸어가야 했다. 마음을 아주 단단히 먹었다.
20분 정도를 쉬었을까, 다시 걸으려니 통증이 더 심했다. 신발을 신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기어코 걸어간다. 절뚝절뚝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얼마간은 오르막이었다. 대체로 평지여서 다행이었다. 산의 중간쯤 허리를 통과하는 길이었다. 요령이라도 생긴 건지, 걸을수록 통증이 그나마 덜 느껴지긴 했다. 그렇다고 상태가 나아진 건 또 아니었다. 지금 당장보다 앞으로의 일정이 더 걱정됐다. 적어도 CTC까지는 꼭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장담할 수가 없었다.
비박용 브러셔 갭 헛 ‘Mucklagh Hut’을 통과한다. 그 짧은 거리를 걷는데 15분이나 걸렸다. 숲의 내리막 중간 즈음이었다. 의자와 테이블까지 있어 자리가 꽤 근사해 보였다. 그치만 밤엔 얼마나 무서울까. 현재의 나로선 숲에서의 나 홀로 비박은 꿈도 못 꾸겠다.
여기까지 왔다는 건 이제 12km가 남았다는 이야기다. 오늘의 숙소는 종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주인장과 미리 픽업 장소와 시간을 정해두었다. 약속이 4시니 대충 시간당 3km씩은 가야 했다. 평소라면 괜찮지만 지금은 발목이 문제였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최대한 힘을 내보는 수밖에 없다.
언덕 사이로 내려가는 좁은 오솔길에서 건장한 청년 셋을 마주한다. 첫째, 둘째 날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주 오는 사람들뿐이다. 위클로웨이는 정방향보다 더블린으로 향하는 역방향을 더 많이 걷는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니 일면 타당성이 있어 보였다. 스쳐 지나며 반가운 응원을 나눴다. 그러고 보니 어제, 오늘은 길에서 사람을 거의 못 봤다. 어제는 세 명, 오늘은 이들을 포함해 고작 다섯 명이 다였다.
도로로 나서다 또 길을 잘못 들어 한참 돌아갔다. 표식은 잘 되어있는데 자꾸만 정신을 놓는 게 문제였다. 발목이 심각해졌다 괜찮아지길 반복했다. 비도 여전히 오다 말다가 반복됐다. 파란 하늘이 간간이 보여 더 약이 올랐다. 걸어도 걸어도 길이 줄지 않는 것만 같아 더없이 낙담했다.
1시 50분.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깊은 숲의 느낌이 음침했다. 저 멀리 노루들이 눈치껏 도망간다. 어디선가 푸드득 새가 날아올랐다. 비가 와서인지 정말 진창길이었다. 여기저기 벌목 현장이 많았다. 장비가 움직이며 우지끈 소리를 냈다. 곳곳에는 인부들의 차가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드디어 슬금슬금 내려가는 길. 진흙 임도는 자갈길로 바뀐다. 2시 50분, 숲이 끝나자 시골길로 들어선다. 서서히 마을로 다가서는 분위기가 있었다. 숲을 벗어나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고사리 도로길. 간간이 오르막까지 있어 더 힘이 들었다. 막바지라 생각하니 왠지 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마을은커녕 사람도 차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막상 원래 오늘 길의 종점인 모인 삼거리는 너무나 '그냥 길'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지도상에도 딱히 지표라고 할만한 게 없어서 픽업 장소를 정할 때도 애를 먹었었다. 결국 여기서 위클로웨이 1km 정도를 더 걸어가야 하는 곳을 픽업장소로 정했다. 거기에 그나마 이름이 붙은 작은 다리가 있었다. 투혼을 발휘했다. 꾸역꾸역 3시 50분에야 겨우 도착했다. 후아~ 크게 숨이 터져 나왔다.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다 걸어왔다. 완전히 안심이 됐다. 어느새 하늘도 완전히 갰다. 세리모니처럼, 반짝반짝 나뭇잎이 빛나고 있었다.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4시 50분에야 픽업이 됐다. 아무것도 없는 작은 다리에 기댄 채 1시간을 기다렸다. 무뚝뚝한 느낌의 아일랜드 아저씨였지만, 이런저런 말에는 츤데레 감성이 잔뜩 묻어 있었다. 숙소로 가는 한적한 시골길이 이뻤다. 도착한 곳은 농장 안에 있는 작은 시골집이었다. 이 건물을 통째로 나 혼자 쓰는 거였다. 비싸긴 비쌌다. 이만하면 충분히 이해가 됐다. 픽업·드랍은 물론 무료 세탁기에 조식도 제공이 됐다. 사실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여기도 운 좋게 잡은 거였다. 와이파이는 안되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찌 됐건 하룻밤 원 없도록 편히 지낼 수 있게 됐다.
숙소 이용에 대한 설명을 다 한 뒤 떠나시려던 아저씨, 갑자기 뒤를 돌아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신다. 원한다면 근처 마을 티나헬리(Tinahely)에 데려다주실 수 있단다.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러니 6시에 데리러 오겠다 하신다. 서둘러 짐을 풀고 샤워부터 했다. 개운했다. 게다가 오늘은 손빨래를 안 해도 됐다. 구식이긴 해도 건조까지 되는 세탁기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온종일 고생한 낙이 있다. 얄밉다고 해야 하나, 발목도 걸을 때에 비하면 훨씬 괜찮아져 있었다.
말끔한 몸으로 바깥의 테라스에 앉았다. 소와 양을 구경하며 빛이 저무는 걸 낙낙히 구경했다. 아저씬 정확히 6시에 다시 오셨다.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티나헬리는 생각보다 큰 마을이었다. 한 시간 반 뒤에 만나기로 하고 우린 쿨하게 헤어졌다. 추천해 주신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기네스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식사를 다 마치고선 동네도 찬찬히 둘러봤다. 낮동안의 고생이 무색할 만큼 발목은 걸을만했다. 슬리퍼를 신고 있는 지금 돌이켜보니, 등산화의 문제였나 싶기도 했다. 내일 걷는 동안 지켜보긴 해야겠다. 어쩐지 티나헬리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슈퍼가 두 개나 있어 간단한 장도 봤다. 먹거리에 슬쩍 맥주 두 병도 끼워 넣었다. 오늘 밤은 와이파이 대신 맥주다. 푸짐하게 숙소로 돌아왔다.
웬걸, 어플로 도보수를 확인해 보니 31km나 걸은 것으로 나와 있었다. 발목이 아팠던 게 영향을 미친 걸까, 원래의 거리보다 무려 9km를 더 걸은 셈이었다. 길을 두 번 놓치고 티나헬리를 좀 돌아다녔다고 해서 그만큼 될리는 없었다. 발목 문제를 떠나서라도 힘들만했다. 녹초가 된 이유가 있었다. 아픈 오른쪽 다리를 덜 쓰느라 왼쪽을 더 무리했던 건지, 밤부턴 무릎이 쑤시기 시작했다. 이제 옛날 몸이 아니란 게 절실히 느껴졌다. 40을 넘긴 나이가 이럴 때 확 실감이 난다. 일단은 안티푸라민을 잔뜩 발랐다.
아침으로 준비된 재료 중 계란은 삶고 치즈는 안주로 먹었다. 건조기는 부지런히 돌아갔다. 밤이 되자 사방은 온통 어둠이었다. 이 황량한 농장에 혼자 있으려니 약간은 무서우면서도 희한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나직한 노래를 틀고 커튼을 굳게 닫았다. 난방이 없어 꽤나 춥지만 이불속은 세상없이 따뜻했다. 탁자의 조명까지 끄고 나니 칠흑도 이런 칠흑이 따로 없었다.
아저씨께서는 내일 8시 45분에 데리러 와주시기로 했다. 오늘 멈춘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내일의 길은 다시 시작된다. 건조기 시간을 길게 맞춰뒀다. 달그락달그락 그 소리가 자장가처럼 점점 멀어져 갔다. 기다림 없는 잠이 매일같이 쏟아졌다. 전에 없던 숙면이 걸을수록 점점 더 깊어진다. 아무리 노곤해도 그것만큼 좋은 것이 또 없었다. 밤은 짧았다. 오늘은 꿈마저 고요했다.
2024.08.28.
걷기, 위클로웨이 5/7
40,749보(31.0km)